[위기를 기회로 ①] 석탄발전 막 내린 영국‥"어떻게 가능했나" 가봤더니
지난 9월 30일, 영국에서 주목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영국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입니다. 영국 노팅엄셔에 있는 56년간 가동된 '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가 그 주인공입니다. 문을 닫은 뒤 이제 앞으로 2년에 걸쳐 해체 작업이 이뤄집니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나라입니다. 석탄이라는 에너지원을 활용해 산업을 부흥시켰고, 이어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습니다. 1882년 세계 최초의 석탄 화력발전소 '홀본 바이아덕트' 발전소가 설립된 곳도 다름 아닌 영국 런던입니다.
142년의 석탄 발전 역사가 막을 내린 겁니다. 마이클 생크스 영국 에너지안보탄소중립부 부장관은 "한 시대의 종말"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렇게 영국은 주요 7개국, G7 중 석탄 발전을 중단하는 첫 국가가 됐습니다.
대기가 정체되는 겨울이면 석탄 화력발전소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습니다. 1990년 영국 전기 공급량의 80%를 차지하던 석탄화력은 지난해 1%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빈자리는 재생에너지들이 메웠습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영국의 전체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절반에 달할 정도입니다.
'석탄의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거듭난 영국, 지난 수십 년간 영국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직접 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북해에 인접한 스코틀랜드 북동부 지역. 기자가 방문한 날도 어김없이 거센 바람과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시간당 평균 10킬로미터의 강한 바람이 지나는 곳입니다. 이런 질 좋은 바람을 이용해 영국은 현재 1.47기가와트(GW)의 해상풍력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2012년과 비교해 4배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통상 1기가와트가 대형 원전 1기 규모에 해당하므로 적지 않은 규모임을 알 수 있죠.
영국 스코틀랜드 북동부 지역에는 국가전력망에 연결된 단지 중 세계 최대 규모의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 단지가 있습니다. '킨카딘' 단지. 이곳에서 나오는 전력은 일반 가정으로 공급이 되는데, 매일 5만 5천 가구가 사용 가능한 전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연간 9만 4천 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하고 있습니다.
Q. 부유식 해상풍력이란? 부유식 해상풍력은 고정식과 달리 바다 위에 떠서 풍력 발전기를 돌리는 형태입니다. 고정식과 비교해 깊은 바다, 심해에도 설치될 수 있어 더 강력하고 안정적인 풍력 자원을 활용해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해상풍력으로 대표되는 재생 에너지는 기존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생태계에 위기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킨카딘 단지를 개발한 '플로테이션 에너지(Flotation Energy)'의 기술은 석유와 가스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플로테이션 에너지의 공동 창립자, 앨런 매카스컬은 세계적인 석유 기업 BP에서 20년간 일한 석유산업 전문가입니다. 석유산업에서 배운 기술로 지난 2018년 해상풍력 전문기업을 차렸습니다. 앨런 매카스컬은 "해상풍력 산업에서는 석유·가스 산업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 기술과 역량이 친환경 미래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부유식 해상풍력 민관 협력 프로그램에는 'BP'와 '쉘(Shell)'처럼 세계적인 개발사 17곳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영국 북해 인근 지역에서 석유와 가스 산업이 쇠퇴하고 있던 상황에서 해상풍력이 이들 업체의 새로운 활로로 떠오른 겁니다.
[르우벤 에이켄/스코틀랜드 국제개발청 총괄이사] "기존의 석유 산업에서 가지고 있던 역량들을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를 통해서 재생에너지, 특히 부유식 해상풍력 분야에 저희가 잘 적용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굉장히 크고 복잡한 하부 구조물 등 심해에 설치되는 것들이 기존 석유 가스 산업 기술들인데, 이런 기술들이 특히 부유식 해상풍력 산업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앞으로 이것이 전 세계 흐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코틀랜드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찬반으로 나뉘는 주제가 아닙니다. 영국 정부는 2008년 '기후변화법'을 만들어, 탄소 감축을 법으로 의무화시켰습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100% 감축'이라는 넷제로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겁니다. 해당 법은 당시 찬성 460표, 반대 단 3표로 하원을 통과해 심의 과정을 거쳐 여왕 재가까지 얻었습니다.
기후변화법에 따라 영국 정부는 탄소예산에 대한 계획을 정기적으로 수립하고 있습니다. 탄소예산은 계획 실행 12년 전에 결정됩니다. 정부와 기업에 충분히 대응할 시간을 주어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또 독립적인 정부 자문 조직 '기후변화위원회'도 출범시켰습니다. 정부가 계획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를 모니터링하고,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정당 간 이견으로부터 중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안전장치 역할도 합니다. 긴 호흡의 구속력 있는 정부 지원이 재생에너지 육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겁니다.
[맷 웹/기후변화 싱크탱크 'E3G' 책임자] "정부의 정당과 상관없이 기후변화법이라는 법적인 제도를 통해서 일관적인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또 국민들은 '정부가 이것을 반드시 달성할 것이다'라는 신뢰를 가지고 진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고요.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든지 간에 이 법을 폐지할 수 없습니다."
[토니 퀸/OREC 기술개발 디렉터] "영국 정부가 하는 역할은 탈탄소화 과정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저희가 진행할 프로젝트에 대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검증 과정을 통해서 해상풍력 발전 분야의 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고요. 물론 그 과정에서는 해상풍력 터빈이 규모가 더 커지면서 기술 발전과 함께 비용이 더 하락하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이 순항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변화가 모두에게 좋을 순 없습니다. 문을 닫은 석탄 산업의 노동자들은 당장의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석유나 가스 같은 전통 에너지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하는 과정에서 희생과 고통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의로운 전환'이란 개념입니다. 재생에너지에 왜 정의냐고요? '정의로운 전환'은 사람을 향한 겁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등을 보호하고, 그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는 정책 방향입니다. 국제 사회의 합의입니다. (출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급속한 에너지 전환을 추진 중인 영국은 어떨까요? 영국 정부는 석유·가스 산업 중심지인 영국 스코틀랜드 에버딘 지역을 '에너지전환지구', ETZ(Energy Transition Zone)로 지정했습니다. 지난 2021년 영국과 스코틀랜드 정부가 총 8천400억 원을 투입해 추진한 겁니다. ETZ에서는 펀드를 운영하며 재생 에너지 관련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제공합니다. 480만 파운드가량의 지원금이 들어가고, 이를 통해 1천만 파운드의 민간투자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기존 석유·가스 산업 인력을 대상으로 700여 가지의 에너지 관련 교육을 제공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OREC과 같은 국책연구소를 짓는 데도 이 같은 원칙이 통용됩니다. OREC은 탄광과 조선 등 쇠퇴하는 전통 산업이 자리 잡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블라이스라는 지역에 연구소 한 곳이 세워지기도 했는데요. 인구가 줄던 이 지역은 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관 산업의 공장과 인력 교육 기관들이 들어서면서 다시 활기를 찾고 있습니다.
[토니 퀸/OREC 기술개발 디렉터] "저희 고객사 중에 한 곳이 인근에 공장을 짓고 있고요. 이런 식으로 기업들이 이곳에 와서 함께 일을 함으로써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일자리 측면에서는 새로 짓고 있다던 그 공장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170명을 고용을 했는데, 앞으로 3년~5년 사이에 5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갈등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지역 주민의 반대가 있습니다.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세워지는 지역의 어민들은 여전히 공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지어지는 과정에서 어업이 제한되면 결국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정부 주관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엘스패스 맥도널드 / 스코틀랜드 어민협회(SFF) 대표]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어민의 생계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공존을 위한 방법은 해상풍력 발전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어업 커뮤니티가 참여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지를 선정할 때 중요한 어장 부지가 해상풍력 발전단지로 선정이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어민들의 목소리가 초기부터 반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42년 만에 전환기를 맞이한 영국.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은 그 과정이 절대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결단 그리고 지원, 또 기업의 꾸준한 참여로 비로소 이루어낸 겁니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40% 줄여야 한다고 약속한 상황인데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부 에너지 정책 기조에 따라 왔다 갔다 하며 에너지 전환의 큰 흐름에서 비껴서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더 늦기 전에 '진짜' 실행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취재: 김세영·방송기자연합회 공동취재단 자료 제공 및 지원: 방송기자연합회·에너지전환포럼
김세영 기자(threezero@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669696_29123.html
Copyright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
- 헌법재판관 후보자들 "탄핵심판 신속해야"‥"형사재판 기다리면 혼란"
- 민주 "국민의힘, 계엄 국정조사 참여 않고 시간 끌기"
- 석 달 전부터 계엄 준비‥"북파공작원 40명 훈련"
- [단독] "탈북자 조사실에서 체포 요인 심문"‥정보사, 서울 시내에 비밀심문실 마련
- 학적사항에서 번호 알아내 "남친 있냐" 연락‥법원 "정직 징계 정당"
- '내란·김 여사 특검법' 31일까지 버티기?‥"즉각 공포가 사는 길"
- "법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은 필요없다"‥대구 광주 부산 대전에서도 집회
- 상속세 감세 '올스톱'‥내년 상반기 유산취득세 전환 중심 논의
- "대통령 구속하라"‥밤샘 트랙터 시위에 시민들 동참
- [속보] 공조본, 계엄국무회의 참석 김영호 통일부 장관 어제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