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고 거부할 '용기'···계엄 속에 빛난 '군인의 품격'
비상계엄 수사 및 윗선 파악 결정적
신뢰도 하락 가운데서 시민 응원과
"군 정치 관여 안돼" 자성 목소리도
“시민들만이 계엄을 막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계엄 준비를 물밑에서 반대했을 많은 군인, 현장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한 젊은 군인들도 숨은 기여자가 아닐까요.”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A 씨는 이달 3일 발생한 초유의 비상계엄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돌아다니는 한 젊은 군인의 사과 영상을 봤다며 “젊고 계급이 낮은 군인들이 무슨 잘못이 있냐”고 힘주어 말했다. 해당 영상에는 계엄군으로 국회 인근으로 출동했던 한 군인이 한 시민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12·3 비상계엄 수사와 국회의 현안질의 등이 2주 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일부 군인들의 양심선언과 증언, 그리고 용기 있는 사과도 잇따르고 있다.
‘군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철석같은 신념이 무너진 12월 3일, 일부 ‘정치군인’들의 오판으로 확대된 비상계엄 정국 속에서도 군인의 용기와 품격을 잃지 않았던 군인들이 있었다.
비상계엄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내부에서도 선거관리위원회 장악 등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달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에 나선 윤비나 방첩사 법무실장은 “법무관들은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하더라도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범죄 혐의를 특정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위법한 증거 수집행위가 된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반대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의로운 직원에 대해서 경의를 표한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직접 병력을 운용한 특수부대 지휘관들의 입에서도 사과와 함께 양심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대통령께서 비화폰으로 직접 전화를 해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 끄집어내라’고 했다”라고 폭로했다.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제707특수임무단장은 이달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영관급 장교임에도 이례적으로 개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으로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면서 “707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 당한 안타까운 피해자다”고 말하며 통한의 눈물을 보였다.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모습을 보인 이상현 제1공수특전여단장도 연이은 발언을 경청하며 끝내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서울경제신문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김 단장과 이 여단장도 역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했다는 내용을 국회에서 증언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국회 장악 지시에 대한 증언을 한 곽 사령관과 김 단장을 공익 제보자로 지정할지 검토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번 비상계엄에 연루된 군인은 일반 병사 포함 1500여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지휘관에 해당하는 고위급 군인들은 계엄 가담의 경위를 막론하고 법의 심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 곽 사령관 등은 내란죄 피의자로 구속돼 조사받고 있다.
군 전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은 가운데 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역 간부 B 씨는 “군이 정치에 관여한 것은 백 번 잘못한 일이지만 명령에 살고 죽는 젊은 간부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많은 군인이 계엄군으로 동원돼 출동은 했지만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현명한 판단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부 C 씨는 “지휘관들의 그릇된 판단으로 부하들이 국민적 비난을 받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면서 “계엄을 실질적으로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윗선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하고 앞으로 군이 정치에 관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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