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 김태웅 “다섯 사람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역사 재구성” [김용출의 한권의책]

평민 출신의 공인 지규식 역시 을사늑약에 서명한 다섯 대신 가운데 한 명인 이근택에게 그 집의 식모가 일갈했다는 에피소드를 자신의 일기에 기록한다.

대한제국을 둘러싸고 왜 이처럼 엇갈린 평가가 이어져온 것일까. 대체로 대한제국의 실정을 보여주는 자료에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데다가, 일제가 편찬한 『고종·순종 실록』이 끼치는 부작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특히 『고종·순종 실록』의 경우 일제가 편찬했다는 점에서 찬술 의도와 방식, 내용에 대한 엄밀한 검토와 비판이 이뤄져야 했지만, ‘실록’이라는 주술에 걸려들어 맹목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적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근현대사의 ‘아픈 손가락’ 대한제국을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현명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일 것이다.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역사를 가르쳐온 저자는 책 『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휴머니스트)원에서 대한제국을 관통했던 다섯 사람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대한제국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저자가 역사의 무대로 소환한 첫 번째 인물은 서구 문물을 앞장서서 수용한 대표적 식자이자 국내외 인사와 만나며 광범위한 활동을 벌인 정치인 윤치호다. 그는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국내외 정세와 사회 동향을 상세히 기록한 『윤치호 일기』를 작성했는데, 일제의 정책에 대한 복잡한 시각이나 독립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 등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가다.

저자는 이들 다섯 사람의 기록과 인식을 통해서 대한제국의 수립부터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 러일전쟁과 을사늑약, 헤이그특사 파견과 군대 해산, 의병전쟁과 일제 강제병합에 이르는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비교 서술함으로써 통사적인 면모를 확보했다.
고종은 1897년 10월12일 환구단에서 대위에 오른 뒤 태묘와 사직에 고사를 하고 정전으로 환어해 백관의 축하표전을 받으며 예식을 행하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된다. 하지만 정치인 윤치호는 일기에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오늘 새벽 4시 폐하께서는 천신께 제물을 바쳤고, 6시에 정식으로 황제의 자리에 즉위했다. 12시에 새로운 황제를 감축드리러 궁으로 갔다. 하지만 황제 즉위식은 개최되지 않았다. 고인이 된 명성황후에게 황후의 칭호를부여하는 문제 등과 관련되어 거창한 의식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세차게 쏟아진 비는 이 소극을 더욱 우스꽝스럽게 안타깝게 만들었다.”(141쪽)
1904년 2월, 대한제국의 운명을 가른 러일전쟁이 한반도와 뤼순 등에서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시작으로 발발한다. 전쟁 과정에서 일제는 물적 인적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서 대한제국을 압박했고,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윤치호는 전쟁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든 한국은 부흥할 수 없을 거라고 10월20일 일기에서 적고 있다.

“나는 동향의 평화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이쪽과 저쪽이 서로 합하여 한 나라를 이룸으로써 서로 만세토록 영원할 행복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들어서 이것을 내가 지극히 신뢰하는 대일본제국 황제 폐하께 넘겨주기로 결정한다.”(890쪽)
프랑스인 신부 뮈텔은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 소식을 일반 사람들보다 일찍 알게 되는데, 그는 8월26일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빈 비르브리트씨 덕분에 한국이 병합되고 그 조약이 29일에 공포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협상에서 전 황제와 현 황제가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속국이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은가? 천주님은 이 슬픈 상황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기를!”(896쪽)
우리는 당대를 살아간 다섯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과 기록, 논평을 통해서 편견도 꾸밈도 없는 대한제국의 실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휴머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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