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대한민국 운명을 권력자의 선의에 맡길 건가
대통령이 권한 무제한 행사하면 나라가 엉망이 되는 비극
(시사저널=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와 상관없이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역대급 대통령'이 되었다. 인사는 선거 때 외쳤던 한마디로 요약된다. "좋아 빠르게 가!" 제아무리 야당이 거세게 반대할지라도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을 비롯한 각종 인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이 총애하는 인물을 사면한 뒤 그가 떨어진 자리에 재공천(서울 강서구청장)하는 데도 스스럼없었다. 이전 대통령들은 임기 중 한두 번 행사할까 말까 했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남들 절반밖에 되지 않는 기간 동안 25번이나 행사했다. 국회 협조를 구할 생각이 없으니 야당 지도부를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제대로 대면한 건 취임 2년이 다 되어서, 그것도 총선에서 참패한 뒤였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계엄령을 끄집어낸 건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다.
공교로운 건 그가 부린 심술이 대부분 헌법이 보장하는 선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진 통치행위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의 인사권, 재의요구권, 사면권, 계엄선포권 등을 보장한다. 대통령실 역시 윤 대통령의 인사 강행이나 거부권 행사가 야당의 반발에 직면할 때마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번 비상계엄은 절차적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연평도 포격과 같은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계엄을 선포했더라면, 혹은 제19대 국회 때처럼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더라면, 비상계엄은 지금보다 큰 힘을 얻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허술한 인물이었기에 망정이지 누구처럼 치밀하고 교활한 인물이었다면 역사는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은 분명 헌법상 명시된 자신의 권한을 행사했을 뿐인데 나라는 엉망이 됐다. 정치는 교착상태에 빠져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대통령 한 명이 고집을 부리면 192석에 달하는 범야권 의석도 무용지물이 됐다. 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우리 대통령의 권한이 얼마나 비대한지를 보여줬다. 한마디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다.
6월 항쟁 이후 나온 '1노 3김', 권한 행사는 자제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탄생했다.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직선제 개헌을 선언한 1987년 6월29일 이후 국회에서는 헌법 개정을 위한 '8인 정치회담'이 구성됐다. 여당인 민정당에서 4명, 야당인 김영삼계와 김대중계에서 각각 2명이 참여했다. 당시 정치 지도자들, 그러니까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1노 3김'은 뒤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헌법 개정의 목표에는 이견이 없었다.
대통령의 임기라든가 권한과 같은 문제에서도 '1노 3김' 사이에 큰 마찰이 없었다. 처음엔 미국과 같은 4년 중임제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협상을 주도하는 이들 모두 이를 반기지 않았다. 대통령을 두 번 하면 이승만·박정희처럼 세 번, 네 번 하고 싶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오랜 독재 끝에 찾아온 민주화였던 만큼 장기 집권 우려를 없애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컸다. '1노 3김'은 모두 대통령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4년 중임제가 도입되면 누군가는 대통령을 두 번 할 수도 있다. 그게 자신이 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손대선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를 공유했다. 언젠가 자신이 그 권한을 쥐게 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6월 항쟁 이후 대한민국은 '헌정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다. 급하게 헌법 개정 초안을 마련해야 했다. 협상에 참여한 이들은 '유신 이전으로만 돌아가면 된다'고 여긴 것 같다. 그래서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을 표본으로 삼았다. 5·16 군사정변 이후 사회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마련한 바로 그 헌법이다. 1960년대라는 시대상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 헌법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보장했다. 대통령이 행정부를 넘어 입법부와 사법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체제가 구축됐다. 이를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르고 있다.
감옥 가는 '불행한 대통령' 끊이지 않는 이유
'제왕적 대통령제'는 오래전부터 크고 작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 나라가 별다른 문제 없이 굴러올 수 있었던 건 '1노 3김'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나름의 역사적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국정을 이끌었던 덕분이다. 이들은 대통령에 올라가기까지 오랜 기간 현실정치에 몸담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정치가 쌓아올린 합의와 관행을 체득했다. 이들이 법률안 거부권, 계엄발동권 등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던 건 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는 정치·사회적 계약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동안 우리 민주주의 체제가 '권력자의 선의'에 기대왔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진 운 좋게도 이 약속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 그 권한의 행사를 절제해 왔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등장한 돌연변이 정치인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정치 입문 전부터 대권주자로 부상했고, 처음 나간 선거에서 대통령이 됐다. 0.74%포인트라는 표차가 말해 주듯 2022년 대선 열기는 너무도 뜨거웠다. 유권자들은 윤석열이라는 인물을 냉철하게 바라볼 기회를 좀처럼 가질 수 없었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는 예측 불가능성으로 점철됐다. 크게는 비상계엄부터 작게는 초등학교 5세 입학과 수능 킬러문항 배제까지, 집권여당과 공무원 집단은 그의 돌출 발언과 즉흥적인 의사결정을 수습하는 데 아까운 역량을 허비해야 했다.
우리는 대통령 한 사람의 개인기에 너무 많은 걸 의존해 왔다. 그런 이유로 퇴임 후 본인이나 자식이 감옥에 가는 '불행한 대통령'도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다음 헌법 개정은 대통령의 그 권한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헌법을 당장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대통령 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 예측 가능한 인물이 앉을 확률부터 높여야 한다. 후보 자격에 관한 공직선거법 개정이 될 수도 있고, 공천 관련 각 당의 당헌·당규 개정이 될 수도 있다. 끊임없이 훈련되고 검증받은 사람만이 권력을 쥘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망나니 같은 대통령은 언제 또 등장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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