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도전 나선 윤이나에 골프 실력보다 더 필요한 한 가지
오구 플레이 징계 이어 또 퍼트 탭인 논란…LPGA에선 안 통해
(시사저널=성호준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오래전 얘기다. 미국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 A의 룰 관련 논란이 일었다. A 선수가 파 5홀에서 2온(2타 만에 그린 위에 공을 올리는 것)을 하려고 그린이 비워지기를 기다리던 중 연습 도구인 얼라인먼트 스틱을 휘둘렀다는 신고가 LPGA 경기위원회에 들어갔다. 신고자는 동반 경기자인 B 선수의 캐디였다. 경기 중 연습 도구를 쓰면 첫 번째 위반은 2벌타, 두 번째부터는 실격 처리된다.
A는 경기위원회에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경기위원회는 양쪽의 말이 엇갈리고 증거가 없을 경우 선수의 양심을 존중한다. 결과적으로 A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투어에서는 '억하심정도 없는데 B 선수의 캐디가 아무 죄 없는 A를 모함했을 리가 없다. A 선수가 얼라인먼트 스틱을 휘둘렀을 것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A가 양심을 속였다고 본 것이다. 이후부터 캐디들은 A와 말을 섞지 않았고 A가 지나갈 때 얼라인먼트 스틱을 꺼내 땅을 내리치면서 조롱도 했다. A는 캐디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윤이나에 대한 호오 극명하게 갈려
윤이나가 내년 미국 LPGA투어로 간다. Q시리즈(LPGA투어 출전 자격 확보 대회)에서 위기도 있었지만 4라운드 10언더파 62타를 치는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반등해 5라운드 합계 15언더파 공동 8위로 합격했다. 골프 팬들은 윤이나의 미국 진출에 대한 기대가 크다. LPGA에서 일본과 태국세에 밀리던 한국의 자존심을 윤이나가 살려주기를 원한다.
반대 의견도 있다. '국내 여자골프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3년 출전 정지 징계를 반으로 줄여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 대한 의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윤이나는 2022년 오구 플레이 논란으로 3년간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윤이나는 흥행 카드였다. 2024년 KLPGA는 윤이나 드라마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윤이나는 KLPGA투어에서 롱게임이 가장 뛰어난 선수다. 화끈한 공격력에 걸출한 외모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반면 골프에 진지한 사람들은 룰을 어긴 사건 때문에 윤이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동료이자 라이벌인 KLPGA 선수들도 대부분 윤이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윤이나에 대한 호오(好惡)는 극명하게 갈렸다.
게다가 윤이나의 경기는 매번 드라마틱했다. 윤이나는 21개 대회에 참가해 14번은 톱10에, 8번은 3위 안에 들었다. 윤이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팬들은 그가 우승 경쟁을 하는 대회에 몰입했다. 윤이나가 연장에서 패한 지난 7월 롯데오픈 때 네이버 중계에는 무려 4만5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형 정치적 사건에 그러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양쪽으로 나뉘어 옹호와 비판을 쏟아냈다.
일부 팬은 마음속으로 윤이나가 됐고, 다른 일부 팬은 이예원이나 박현경, 이가영 같은, 윤이나의 상대 선수가 됐다. 어떤 이는 규칙을 잘 지키지 않은 빌런을 상대하는 선한 선수의 투쟁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고루한 룰에 희생된 예쁘고 뛰어난 어린 선수를 구원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느 편에 서든 다들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지켜봤다. 윤이나가 떠난다면 KLPGA의 윤이나 드라마는 막을 내리고 관심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이나에게 한국에 남아 달라고 하기는 어렵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듯, 스포츠 스타들은 한 고지에 오르면 더 높은 산을 보고 달려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 스타들의 숙명이고 본능이다. 그걸 막을 명분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윤이나가 LPGA 진출을 서두르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한국에서 룰 문제 때문에 윤이나는 적대적인 동료들과 함께 바늘방석 위에서 경기를 했을 것이다. 짐을 벗어버리고 더 큰 무대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경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윤이나가 LPGA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면 그 영향은 여자골프 전체의 인기를 높이고 KLPGA투어에까지 전파될 것이다. 박세리가 그랬다.
실제 윤이나는 외국에서도 통할 실력을 가지고 있다. 2024년 KLPGA투어에서 기록한 평균타수 1위, 평균거리 2위, 그린적중률 2위 등 각종 기술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고쳐야 할 것은 있다. 2022년 윤이나의 스코어카드 고의 오기는 정직을 강조하는 골프에서 매우 큰 죄였다. 그럼에도 선처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사건 당시 10대의 어린 나이였고 그냥 넘어가라는 주위 어른들의 조언이 있었다고 했다. 윤이나는 복귀 후 첫 라운드를 마친 후 "선수로 살아갈 기회를 다시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해서 개인의 성과보다는 골프 발전을 위해 힘쓰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눈물도 흘렸다.
미국에선 부정행위 발각되면 선수생명 끝
그러나 복귀 후 3번째 경기에서 논란거리가 다시 나왔다. 4월20일 넥센 세이트나인 마스터즈 2라운드 2번 홀에서 윤이나의 6m 버디 퍼트가 홀 바로 옆에 멈췄다. 뒤이어 파 퍼트를 시도할 때 그의 퍼터에 볼이 닿지 않았다. 윤이나는 다시 스트로크를 해 볼을 홀에 넣었다.
어린아이도 실수하지 않을 법한 탭인을 프로선수가 넣지 못하는 경우가 투어에서도 의외로 종종 일어난다. 퍼트가 아쉽게 홀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에다, 너무나 쉬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대충 치다 그런 실수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스윙이고 당연히 한 타로 친다.
윤이나는 당초 이를 부정하려고 했다가 입장을 바꿨다. KLPGA 조정이 치프 레프리(경기위원장)는 "윤이나가 경기하는 동안 4번 홀 퍼트 헛스윙 동영상을 보고 검토해 스윙할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고, 윤이나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KLPGA에 의하면 윤이나는 처음엔 "바람에 균형을 잃어 스윙처럼 보였을 뿐이지 볼을 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다가 결국 이를 인정했다.
만약 스코어카드 사인 후 이것이 알려졌다면 실격 사안이다. 스코어카드 고의 오기로 징계를 받았다가 경감받고 나온 세 번째 경기에서 생긴 일이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경기 중 경기위원회가 지적해 교정해준 건 오히려 윤이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물론 윤이나가 속이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귀 후 성적을 내야 한다는 초초함에 무의식적인, 혹은 습관적인 판단을 했을 거다.
골프는 정직을 모토로 하며 높은 윤리 기준을 요구한다. 미국은 골프의 고향인 스코틀랜드보다도 룰에 엄격하다. 고의 부정행위가 발각되면 선수생명이 끝나는 일이 허다하다. 서두에 쓴 A 선수의 경우처럼 동양 선수와 같은 이방인에겐 특히 더하다. LPGA 선수와 캐디, 경기위원회에서도 윤이나 사건을 잘 알고 있다.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윤이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윤이나의 스코어카드 고의 오기 사건은 양형 기준 5년 정지 이상이었다. 윤이나가 국내에서 3년 정지를 받고, 그것도 절반으로 경감된 건 그의 스타성, 그러니까 흥행 때문이었다. LPGA투어는 미국의 넬리 코다 대신 이방인이 스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윤이나가 세계랭킹 1위가 되기를 빈다. 그럴 자질이 있다. 그러려면 골프 규칙 관련 유혹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윤이나는 한 타가 아쉬워 부정행위를 할 필요가 없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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