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동굴서 나온 아이에 총질을…제주 비상계엄 46일의 비극
[헤럴드경제(제주·서귀포)=박준규 기자] “유튜브로 설쌤(설민석) 4·3사건 영상을 보고 왔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까 더 뜻깊어요.”
지난달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만난 이유빈 양(18)은 제주도 여행이 처음이라고 했다. 비행기를 타본 것도 태어나 처음이다. 무엇보다 2006년 태어난 그는, 60여년 전 이 섬에서 벌어진 4·3사건의 비극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었다. 영상으로 예습했다지만 역사의 현장을 두 발로 밟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속솜허라. 동굴에서 아버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에요.
‘작별하지 않는다’ 中
속솜하다는 제주말로 ‘숨죽이다, 말없이 가만히 있다’는 의미다. 제주 사람들은 4·3사건의 비극을 수십 년 ‘속솜’했다. 정부가 국가권력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게 2003년. 일이 터지고 55년이 지나서다.
‘빨갱이’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군경 토벌대는 중산간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처형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양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화산섬에 형성된 굴로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목시물굴(제주 조천읍 선흘리 산26번지)은 중산간 마을인 선흘리 주민들이 은신한 자연굴 세 곳 중 하나다. 끝에서 끝이 100m쯤 되는데 여기서 최대 200여명이 지냈다.
동굴 입구는 두 곳, 양 대표의 안내로 굴 안에 들어가 봤다. 입구는 무척 작았다. 바닥에 눕다시피 한 자세로 몸을 일자로 만들어야 간신히 몸이 들어갔다. 이런 상태로 2~3m를 더 나아가니 조금씩 천장이 높아졌다. 하지만 허리를 잔뜩 숙이지 않으면 바위에 머리를 찧었다. “야 차라리 네발로 기어가는 게 편해.” 동행한 학생들이 서로 훈수를 두며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굴 안을 가득 울렸다.
엉거주춤 자세로 10m쯤을 더 이동하자 어느 새 높고 넓은 공간이 나왔다. 1948년의 11월에 여기에서 주민들이 숨죽여 있었다. 양성주 대표는 “자연굴은 사시사철 내부온도가 15도쯤으로 일정해서 겨울철에도 지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빛이 차단된 환경에서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동굴 바닥엔 그 당시 주민들이 가져와 쓰던 깨진 그릇과 가죽조각 등이 일부 남아 있다.
안타깝게 이곳의 존재는 군인들에게 발각됐다. 먼저 잡힌 다른 마을주민을 군인들이 지독하게 고문하자, 굴의 위치를 실토한 것이다. 토벌대는 굴 입구로 수류탄을 까 던지면서 나오라고 소리쳤다. 아이와 노인을 포함한 40여명이 먼저 밖으로 나왔는데 군인들은 그들에게 총질을 했다. 남은 주민들은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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