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곧은 소리] 폐허가 된 국민의힘, 보수정치는 살아날 수 있을까
자체 지도자 못 키우고 용병으로 대선 치르는 안이함으론 민주당 상대 안 돼
(시사저널=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타이태닉'이 떠오른다. 초호화 유람선 타이태닉호(號)는 암초에 부딪혀도 끄덕없다고 장담했지만 북해 빙산에 충돌한 지 불과 2시간40분 만에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운명의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이후 국민의힘이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심기일전이나 쇄신 같은 희망적인 단어보다 침몰, 붕괴, 폐족과 같은 절망적인 단어들이 다가온다. 국민의힘은 지금 세 개의 암초에 부딪혀 물이 차오르는 난파선 형국이다. 세 개의 암초란 '지도자 부재''대통령 멘털' '당원의 노쇠화'를 말한다.
첫 번째 암초는 국민의힘의 본질적 문제로 '지도자 부재 현상'이다. 명색이 대한민국 보수를 대표하는 거대 정당이 자체적인 대선후보를 내세우지 못하고 '외부 용병'으로 연명해 왔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보수진영의 허약한 인물난을 말해 준다.
2022년 대선 때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검찰 출신을 불러들이지 않았던가. 하늘이 도왔는지 0.73%포인트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중령급'이라 했던 부장검사에서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이 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년이었다. 당연히 취임식 다음 날부터 모든 것이 삐그덕거렸다. 제1야당 대표와 1년이 넘도록 대화 한 번 안 하는 것은 물론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사건이 터졌는데도 누구 한 명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는 이상한 정치가 펼쳐졌다.

윤 대통령, '정치 초짜' 바닥 드러내
그러다 이 정권 최대의 문제였던 '김건희 리스크'가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삼켜버리는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엉뚱한 일에만 몰두했다. 정치 초짜 용병의 한계가 너무 일찍 드러났다.
한동훈 대표체제가 붕괴된 뒤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당 안팎의 중진들을 보면 한결같이 탄핵 반대파들로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스처조차 없다. 리더십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정치집단 같다. 권성동, 오세훈, 홍준표, 권영세, 나경원, 윤상현, 김기현…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국민의힘은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
12월 중순 현재 차기 주자 지지율을 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50%를 넘나들며 독주하는 가운데, 홍준표-오세훈-원희룡-안철수는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두 자리 지지율을 유지하던 한동훈을 주저앉혀, 있는 자산마저 내다버린 모양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이재명한테만큼은 권력을 상납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친윤계가 그 일을 앞장서 해낸 꼴이다.
국민의힘이 지도자 인물난을 겪고 있는 이유는 평소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여 단련시키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 인사를 그때그때 영입해 단번에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한탕주의가 깔려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기문, 윤석열 등이었다. 반면에 민주당은 위기에 처할수록 똘똘 뭉쳐 자체 전사를 발굴하고 육성해 승리하곤 했는데 대표적 인물이 노무현, 문재인이었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민주당은 힘들게 내부에서 답을 찾는 반면 국민의힘은 편하게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 해왔다.
이번 탄핵 정국을 계기로 국민의힘은 내부에서 답을 찾고 내부의 인재를 소중히 여기고 내부의 지도자를 키우는 데 역점을 두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때 당의 최고 정책·전략 기구였던 여의도연구원이 제자리를 찾고 시대 흐름에 걸맞는 당의 체질 개선과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를 가동하길 바란다.
두 번째 암초는 국민의힘 1호 당원인 대통령의 멘털 즉, 그의 자질과 심리 상태다. 오래전부터 여권 내부에서는 '대통령이 좀 이상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김건희 여사 문제와 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탄식이 나왔다. 여권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부상한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잉방어에 나섰다.
일부 보수언론은 한 칼럼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을 무모하게 감행한 진짜 이유는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즉, 지난 10월 김건희 특검법 국회 표결에서 여권 이탈표가 여럿 나온 이후 당내에 특검 찬성 기류가 확산되면서 또다시 12월10일 김건희 특검법 국회 표결이 다가오자 12월3일 서둘러 계엄을 결행했다는 것.
단결력·전투력·자금 동원력 민주당에 밀려
윤 대통령의 멘털과 관련해 또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끊임없는 뺄셈정치다. 돌이켜보면,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현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2년7개월 동안 당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과 권한대행까지 포함해 11명째 갈아치웠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이준석 대표 사퇴 파동→권성동 대표 직무대행→주호영 비대위원장→권성동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정진석 비대위원장→김기현 당대표→윤재옥 비대위원장 권한대행→한동훈 비대위원장→황우여 비대위원장→한동훈 당대표→현재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까지 한시도 바람 잘 날 없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설이 나돌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특히 김기현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안철수·나경원 등을 주저앉히며 윤심 논란은 극에 달했다.
윤 대통령이 유아독존적인 독선의 길을 걸어온 데는 당내 중진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당의 원로나 당내 주류인 친윤계 의원들이 일종의 자문단이나 멘토단을 형성해 직언을 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을 비롯한 일부 중진이 대통령의 멘털 문제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며 개헌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진정성이 떨어진다.
그마나 쓴소리를 했던 한동훈 전 대표가 퇴장한 지금, 누가 윤 대통령의 민심 역행을 막을 수 있는지 답답한 상황이다. 앞으로 명태균의 황금폰이 열리고, 김건희 특검법이 작동하면 계엄 사태와 내란죄 이상의 일들이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덮칠 수 있다.
세 번째 보이지 않는 암초는 국민의힘 당원들의 노쇠화 아닐까. 진보적인 당원과 보수적인 당원들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주당 당원들은 국민의힘 당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 동원력과 전투력, 단결력이 매우 강하고,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 외부 후원 세력과의 연계성도 탄탄하다. 무엇보다 민주당 당원들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SNS 전파력이 강하고 빠른 데 비해, 국민의힘 당원들은 고령층을 중심으로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로 요즘 같은 신기술 경쟁 시대에 불리한 인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계엄 정국과 탄핵 정국 이후 12일간 국민의힘 당원 8000여 명이 탈당했고, 영남에서도 2000명 이상이 빠져나갔다. 국민의힘이 거듭나고 보수정치가 살아나려면, 당원들의 인적 구성과 여론 주도 방식이 현대화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타이태닉호가 침몰하게 된 진짜 이유는 사실 암초가 아니라 사전 경고 무시였다는 게 훗날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는 빨간 경고음이 사방팔방에서 들려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금 폐허 속에서 재기하느냐 마느냐의 나락에 빠져 있다. 사활 여부는 경고음을 직시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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