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투톱 독일·프랑스, 총리 불신임에 내각 붕괴…'리더십 실종'
![2022년 10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23/joongangsunday/20241223130920620ewzb.jpg)
숄츠 총리는 지난 2021년 12월 이른바 ‘신호등 연정(Ampelkoalition)’을 꾸려 내각을 출범시켰다. 숄츠 총리가 속한 사회민주당(SPD)은 중도 우파인 자유민주당(FDP), 좌파 녹색당(grune)과 손을 잡았다. 경제적으로는 사민당의 중도진보와 자민당의 자유주의를 절충하고, 사회문화적으로는 진보적인 경향을 보이는 조합이다. 이들 정당의 상징색인 빨강, 노랑, 초록에서 신호등 연정이란 말이 생겼다.
3년간 잘 굴러가는 듯했던 신호등 연정이 붕괴한 1차적 원인은 경제 때문이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전 발발, 러시아의 원유 및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물가상승에 시달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산 전기차가 급성장하면서 독일 차가 휘청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민당 노선에 충실한 숄츠 총리는 독일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과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는 정책을 쓰려 했다. 그러나 자민당 출신의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이 건전 재정과 기업 감세를 주장하며 맞섰다. 숄츠 총리는 처음에는 린트너 재무장관과 타협을 시도했지만, 결국 해임했다. 그러면서 연정도 붕괴했다.
프랑스도 경제 문제로 인해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지난 9월 취임한 미셸 바르니에 총리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사회복지 지출 감소를 기조로 하는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예산안은 원내 1당인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과 3당인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반발을 샀다.
바르니에는 이런 상황에서 설득보다 권한 행사를 택했다. 지난 2일 프랑스 헌법 조항을 발동해 직권으로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 법안인 사회보장 재정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러자 야권 역시 바르니에 총리에 대한 불신임을 통해 입법을 무산시켰고, 내각이 붕괴됐다.
불신임안 가결로 바르니에 총리는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1958년) 이후 최단명 총리가 됐다. 일각에선 바르니에 총리의 운명을 예견된 것으로 평가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가 주도하는 중도연합(앙상블)은 지난 7월 조기 총선에서 대패해 원내 2당으로 주저 앉고, 신민중전선이 1당을 차지했다. 통상적으로는 1당이 추천한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는데 마크롱 대통령은 관례를 깨고 중도 우파 계열인 공화당 출신의 바르니에를 총리로 발탁했다. 이에 분노한 신민중전선이 시시콜콜 딴지를 걸었음은 물론이다. 신민중전선은 내친김에 마크롱 대통령의 하야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과 프랑스의 리더십 위기는 경제정책을 둘러싼 연정 내부 혹은 야당과의 갈등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저에는 기성 정당 등 사회 엘리트들이 추진하던 정책에 대한 노동자·서민층의 반감도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그동안 이민자 수용 정책을 펼쳤는데, 대중 사이에선 이민자가 들어오면서 일자리를 빼앗기고 치안이 불안해진다는 불안감이 널리 퍼졌다.
엘리트들이 추진한 ‘다양성’ 정치와 ‘정체성’ 정치에 대한 환멸도 크다. 독일의 신호등 연정은 진보적 사회문화 정책 기조 아래, 성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도록 한 성별 자기결정법을 입법했다. 이 법에 따라 독일인은 언제든 ‘남자, 여자, 다양성, 기재 안함’ 중 하나로 성별을 정할 수 있게 됐다. “여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법” “성별 사기”라는 비난이 잇따랐지만, 숄츠 총리는 “이 법으로 독일이 더 현대적인 나라가 됐다”며 옹호했다. 현재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독일대안당은 다음 총선 이후 이 법을 폐지하려고 벼르고 있다.
유럽의 중심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의 정국 혼란으로 트럼프의 EU 압박에 대한 대응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총선은 내년 2월로 예정돼 있어,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불가능하다. 프랑스도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와 신임 총리에 대한 불신임 위협으로 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싱크탱크인 외교협회의 마티아스 마티 선임 연구원은 “독일과 프랑스의 상황으로 유럽에 리더십 공백이 생김에 따라, 개별 유럽국가들이 (EU를 제치고) 도널드 트럼프와 직접 협상을 하려들 것”이라며 “유럽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할 상황에서 분열이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