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한 군집지성 토론, 다수결 민주주의 한계 넘는다
이준기의 빅데이터

독일 출신의 베르너 사세 함부르크대 명예교수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타협할 줄 오르는 정치인과 지식인을 꼽았다. 사세 교수는 독일에서 한국학 박사 학위를 받고 전남 나주 등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지한파다.
0.7%P 차 이겼는데 제왕적인 전권 행사
사실 교육계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필자도 독서량이 적고, 학문적 호기심도 별로 없으면서 성적에만 관심을 갖는 학생들을 보면 많은 고민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서로 학문적 비평을 하되,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며 타협을 만들어가는 교육 과정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왕정체제를 거쳐 근세에 들어 민주주의를 채택한 많은 국가들은 대의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주권을 갖되 각 개인의 투표권 행사를 통해 대표가 선출된다. 민주주의는 독재를 방지하는 현존 최고의 시스템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그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처럼 야당은 득표율에서 5%포인트 차이를 보였지만 의석수에서는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대통령은 불과 0.7%포인트라는 득표율 차이로 당선되고도 전권을 받은 듯 행동했다. 이런 상황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민주주의 관계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이 자주 부각된다. 예를 들어 딥페이크를 통한 프로파간다는 민주주의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의 알고리즘은 나와 같은 생각의 콘텐트에만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확증 편향을 강화시키고,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증오사회를 부추긴다.
하지만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라 활용 방식에 따라 긍정적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 많이 연구되고 있는 군집지능(Swarm Intelligence)과 최근의 대형언어모델(LLM)의 결합사례를 보자. 군집지능의 대표적 사례로는 물고기 떼의 이동과 벌, 개미의 협업 등이 있다. 군집지능의 핵심은 중앙집권적 지능이 아닌 아주 간단한 분산 지식 시스템의 활용이다. 물고기 떼는 큰 물고기를 만났을 때 무리를 지어 마치 더 큰 물고기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자신을 보호한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물고기가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떼를 이루어 큰 물고기처럼 보일 수 있을까? 이는 각 물고기가 단순한 로직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고기들은 가까운 앞뒤와 옆 물고기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떼 전체의 평균 방향을 따라 이동하며, 가장 밀집된 곳에서는 멀어지려는 세 가지 행동 규칙을 따른다. 개개의 물고기는 단순한 로직을 따르지만, 집단적으로는 자신들을 보호하는 지능적 행동을 구현하는 것이다.
최근 유네니머스AI 연구자들은 이 군집 지성을 집단 간의 소통과 협업, 타협점 도출에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대화적 군집지성은 빠른 그룹 통찰을 가능케 한다(2023)’라는 논문에 따르면 10명 이상의 사람이 모인 그룹에서는 충분한 대화가 힘들게 된다. 몇몇 사람이 대화를 독점하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관자로 토론에 참여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의견을 모으기 위하여 투표나 서베이 등에 의존하게 된다. 여기엔 한계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의 득표율에 의한 단순 통계적 다수결 시스템으로 결정되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으론 전체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학생들 목소리 반영해 미래 교육 설계
위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군집지성과 최근의 인공지능 발달을 이용한 시스템을 선보였다. 먼저 참여자들은 토론이 가능한 작은 집단으로 나뉘어 토론에 참여하게 된다. 예를 들어 1만 명이 참여하는 토론이라면 10명씩 1000개의 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이 연구가 창의적인 것은, 옆 물고기의 행동을 참고하는 간단한 지역 단위의 로직으로 전체적 지능을 구현하는 방식을 전체 토론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각 방에는 인공지능 에이전트(LLM)가 배치되고 이들의 역할은 현재 방에서의 토론 내용과 주요 사항을 옆방의 인공지능 에이전트에 전달하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 인공지능 에이전트들은 각 방에서 한 명의 토론자로 참여하게 된다. 이 방식으로 인하여 전체 그룹의 의견이 각 토론 방으로 전파되고 각 지역 토론 방의 내용은 전체의 내용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참여자들에겐 6명의 공화당 후보를 대상으로 누구를 가장 지지하는지 그리고 그 후보의 장단점이 무엇인가를 토론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단 6분간의 토론이었지만 410개의 논거가 만들어졌다. 참여자들이 생성한 의견은 매우 균형 잡히고 풍부하며, 대규모 실시간 대화에서도 고품질의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연구는 이 기술이 대규모 집단의 실시간 대화를 통해 질적·양적 통찰력을 모두 제공할 수 있음을 입증했으며,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온라인 접촉이 늘어나면서 건전한 토론과 협의를 이루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익명성 뒤에 숨어 악플을 주고받는 것을 토론이라 부를 수는 없다. 프로그램을 통한 조작 가능성은 집단지성 구현을 의심케 한다. 따라서 온라인 환경에서 건전한 협의 문화를 만들고 이를 교육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최근 국제단체인 ‘젊은 층 데이터 집성(Youth Data Collective)’과 루마니아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가능성의 학교(The School of Possibilities)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 시험, 칠판, 선생님 등의 역할을 하는 다양한 인공지능 챗봇과 대화를 나눈다. 예를 들어 시험 챗봇과 대화를 하면서 이번 시험 문제에서 어려웠던 것, 느꼈던 압박감, 불공정성 또는 새로운 문제 등을 제안한다. 교과서 챗봇은 학생들과 대화하며 학습 자료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다. 선생님 챗봇은 학생의 경험을 경청하고 더 나은 교수법에 대한 대화를 학생들과 나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용자는 과거의 학습 경험, 기억, 또는 교육 환경에서의 긍정과 부정적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반영하여 교육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29일자 중앙선데이에 소개된 필자의 칼럼 ‘우버 문제 푼 대만처럼, AI 시스템으로 갈등 해결할까’에 등장한 ‘폴리스(Pol.is)’라는 시스템도 계속해서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 시스템은 디지털 포럼에서 각각의 다른 의견을 그래프로 보여주고 여러 의견 중 내 의견의 상대적 위치를 보여주며, 나와 같은 의견을 갖은 사람들의 상대적 크기를 보여준다. 아직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사람은 관찰자로 참여해 의견 형성과 타협 과정을 그래프를 통한 조감도 형식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대만 사례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됐다. 기후 대비에 관한 토론(오스트리아·2022), 시정에 대한 토론(필리핀·2020~현재), 지방과 도시에 관한 양극화 문제(미국·2018), 에어비엔비 이슈(그리스·2023)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 케이스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https://compdemocracy.org/Case-studies/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현재 민주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학교에서도 디지털을 활용한 토론과 협의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경험과 환경을 통해 학생들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