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없고, '국민' 없고, '조국' 없고…조롱만 남았다 [이슬기의 정치 번역기]
정당 이름과 거꾸로 가는 원내 3당 행보에
가까이서 지켜봐도 이해할 구석 없는 요즘 정치
"이번엔 진짜 최악"…최악 기록 쌓이는 22대 국회
최근 우리 정치권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민주가 없고, 국민의힘에는 국민이 없다"는 말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던 상황에서, 조국 전 대표가 수감되면서, "조국 없는 조국혁신당"까지 완성됐기 때문입니다.
조국 전 대표의 수감으로 이제 국회를 이끄는 3개의 정당은 "민주 없고, 국민 없고, 조국 없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원내 주요 3개 정당이 이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죠.
조국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 14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고, 16일 수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력 정치인이 '자녀 입시 비리'라는 도덕 문제로 수감되면서 "맑은 사람이 돼 돌아오겠다", "건강을 챙기고, 깊은 성찰을 한 후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동료 의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안아주는 모습은 '위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 조국 전 대표의 편에 서서 "빈자리가 큰 것 같다.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이재명 민주당 대표), "정치 환경이 조 전 대표가 2년을 살게는 안 만들 것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반드시 사면되고 복권된다"(박지원 민주당 의원)고 동조하는 민주당도 비판의 대상이 되긴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8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3 명에 대한 첫 탄핵 심판 첫 변론 준비 기일은 민주당이 '법'을 어떻게 대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며 검사 3명을 탄핵하는 초유의 일을 벌였는데, 막상 탄핵 심판이 시작되자 대리인도 선임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재판은 3분여 만에 종료됐습니다.
이러니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과 대장동 사건 등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을 향한 무차별적 탄핵 소추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겁니다. 탄핵으로 '지휘라인'을 업무 배제해, 이 대표에 대한 수사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도록 하려 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민주당의 행보는 오직 이재명 대표와 권력을 향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선거법 1심 선고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은 뒤, 비명계를 향해 나온 "움직이면 죽습니다.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입니다"라고 했던 최민희 민주당 의원의 말 그대로입니다. 11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 대표의 재판이 열릴 때마다 '우르르' 몰려가 눈도장을 찍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이 지지자들에겐 좋게 보이는 걸까요.
그런 이 대표와 나란히 '닮은 꼴' 행보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윤 대통령인 탄핵 심판 사건 관련 서류를 수령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지난 16일부터 관련 서류를 송달했으나, 관저에서는 대통령의 '수취 거절'로, 대통령실에선 '수취인 부재'를 이유로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대표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사건의 '항소장 접수 통지'를 받지 않고 버티다 송달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 송달을 받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국민의힘은 '계엄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도, 수습 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당내 갈등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 14일 탄핵안 표결에서 찬성 의견을 밝힌 의원들에게 "'배신자'라고 속삭이고 가더라"라는 한 의원의 증언은 학교에서 문제시되는 '왕따'를 떠오르게 합니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라는 의원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당내 갈등이 극에 달하며 비공개 의원총회 녹취록까지 공개되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계엄 사태에 대해 '국민'과 완전히 동떨어진 인식도 들켰습니다. "(탄핵 반대해도) 1년 뒤에는 '의리 있어'(라고 하며) 다 찍어주더라"(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라는 발언이나 "계엄 당시 국회 경내로 들어가다가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로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심한 욕설과 테러 위협으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사정도 있었다"(나경원 의원)는 발언은 불필요한 논란을 사며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때론 이해하기 힘든 정치인의 언행을 국민의 언어로' 번역해 드리겠다는 게, 이 코너의 취지였는데 요즘 한국 정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번역기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의 명언과는 다르게, 한국 정치는 가까이서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비극'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서 지켜보아도 요즘의 한국 정치는 이해할 만한 구석이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오랫동안 정치권에 몸을 담았던 이들도 이런 정치 상황에 '무력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매번 국회가 새로 문을 열 때마다 '이번 국회는 최악'이라는 평가가 잇따랐지만, 이번엔 정말로 최악이라고들 합니다. '이제는 정말 이 바닥을 떠나야 하나'하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집니다.
22대 국회는 정치의 실종, 극단화로 각종 '최악' 기록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 사상 초유 야당의 단독 예산안 삭감 의결과 셀 수도 없는 상임위 단독 의결, '툭'하면 탄핵에 난무하는 증인 고발까지. 22대 국회는 얼마나 더 많은 최악의 기록을 남겨야 이 폭주의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을까요.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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