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티어링의 나라 스웨덴의 '명품' 나침반 [21세기 HEAVY D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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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HEAVY DUTY'는 월간<山> 의 필자가 가상의 아웃도어 편집숍 주인이라는 설정으로 진행합니다. 山>
그러니까 실바 나침반을 만든 사람들은 스웨덴에서 오리엔티어링 선구자로 통하는데, 오리엔티어링이 인기 스포츠로 인정받는 나라에서 실바의 나침반 가격은 상식적인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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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HEAVY DUTY'는 월간<山>의 필자가 가상의 아웃도어 편집숍 주인이라는 설정으로 진행합니다. 수록된 제품 소개 기사는 편집숍 주인이 튼튼Heavy Duty하고 좋은 아웃도어 장비를 손님에게 추천하는 콘셉트로 작성됐으며 업체로부터 제품을 협찬받거나 비용 지원을 받은바 없음을 밝혀둡니다.

가게에서 한참동안 물건을 구경하던 손님이 한 구석에서 소리를 질렀다.
"와! 이 작은 게 3만 원이나 하네! 저건 6만 원이고. 투명한 티타늄으로 만들었나?"
나는 손님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가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 살펴봤다. 손님은 나침반을 손에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놀라셨군요. 이건 '실바Silva'에서 만든 나침반이에요. 스웨덴에 본사가 있죠. 오래된 브랜드에요.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입니다."
손님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또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요, 나침반 하나에 3만 원이면 너무 비싼데요. 요즘 나침반 쓰는 사람도 얼마 없을 텐데."
손님은 나침반을 내려놓고 다른 물건을 둘러봤다.
나는 손님들의 저 비명에 익숙하다. 실바의 나침반 가격을 보고 놀라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님들의 반응을 이해한다. 그들은 대체로 나침반의 기능만 따져 값어치를 매겼을 것이고 이는 상식적으로 타당하다. 그렇다면 실바 나침반은 왜 비싼가? 나도 곰곰이 따져봤다.
우선 실바는 오래된 브랜드다. 1933년 스웨덴에서 만들어졌고(실바는 스웨덴어로 '숲'이라는 뜻이다), 당시 북유럽에서는 오리엔티어링을 군사 훈련에 접목시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 초 오리엔티어링이 대중화되면서 좋은 나침반이 필요하게 됐다. 이때 스웨덴에서 활동한 유명한 오리엔티어 중 한 명인 군나르 틸렌더Gunnar Tillander는 이전까지 불안정하게 움직였던 나침반의 바늘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많은 연구를 기울였다. 결국 나침반 바늘이 들어가는 틀 안에 액체를 채워 문제를 해결했고, 사용자는 이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방향을 감지할 수 있게 됐다(건식 충전 나침반은 방향을 잡는 데 30초, 액체 댐핑 방식은 4초가 걸렸다).
당시 실바 나침반 제작에 참여한 사람은 세 명이 더 있었는데, 그중 비요른 셸스트롬Björn Kjellström이라는 사람은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가 실바와 관련된 사업을 시작한 한편 미국과 캐나다에 오리엔티어링을 소개했다. 그는 1995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오리엔티어링 관련 책을 내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니까 실바 나침반을 만든 사람들은 스웨덴에서 오리엔티어링 선구자로 통하는데, 오리엔티어링이 인기 스포츠로 인정받는 나라에서 실바의 나침반 가격은 상식적인 것일 수 있다. 반면 오리엔티어링 불모지인 한국에서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바가지'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가게에서 실바 나침반을 구매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몇 년 전 딱 한 사람이 나침반을 구매했는데, 그 손님은 오리엔티어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이 실바의 나침반에 별 관심이 없지만 나는 이것을 매우 좋아한다. 기능적으로 우수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나침반의 원형, 근본, 오리지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아웃도어 활동에 진심이었던 창립자들에 대한 공감과 존경심에서 나온 걸까? GPS 전자기기가 점령한 시장에서 끝까지 제품을 생산하는 이들의 뚝심도 내가 실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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