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에 휘둘린 민주당... 北 소행 '계엄' 시나리오 말 바꾸기

우태경 2024. 12. 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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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어준씨가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현안질의에 출석해 “체포되어 이송되는 한동훈을 사살한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고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방송인 김어준씨의 '암살조' 주장에 휘둘리며 망신을 자초했다.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북한이 개입했다는 일방적 주장을 사실 검증도 거치지 않고 생중계하며 여론의 반감을 부추기더니 "상당한 허구"라는 민주당 내부 분석 보고서를 뒤집으며 시치미를 뗐다. 강성 지지층의 반발에 못 이겨 수권정당의 면모를 구긴 모양새다. 탄핵 정국을 수습하는 데 주력해야 할 거대 정당이 되려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신빙성 낮다"→"가능성 배제 않는다" 급선회?

국가정보원 1차장 출신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19일 김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씨의 주장에 대한 '중간 검토 보고서'를 공개했다. 김씨는 앞서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우방국 정보기관으로부터 입수한 제보를 폭로했다. 계엄군이 ①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사살 ②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김씨를 구출 시도하려다 도주 ③북한산 무기를 장착한 북한 무인기 동원 ④북한 군복 매립 ⑤미군 사살 등의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씨는 "제보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정보통' 박 의원과 김병주 민주당 의원에게 사실 확인 책임을 떠넘겼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 전날 벌어진 일이다.

박 의원은 이날 공개한 중간 보고서에서 5가지 주장에 대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평가를 미뤘다. 앞서 1차 보고서에서 ①, ②번은 '판단 유보'로, ③, ④, ⑤번은 '신빙성 낮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것과 확연히 달라진 내용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상사를 잘못 인도하면 안 돼서 초도 보고서는 항상 보수적으로 나온다"며 1차 보고서의 한계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가장 핵심적인 사유로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등장'을 꼽았다. 박 의원은 "노상원을 딱 집어넣으면 (김씨 제보에 대한 판단이) 완전히 달라진다"며 "노상원은 음모론에 심취한 자"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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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1709400000758)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에 출연해 김어준씨의 암살조 주장에 대한 검토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박 의원은 처음에는 김씨의 다섯 가지 주장에 대해 '판단 유보' 또는 '신빙성 낮음'으로 판단했지만, 중간 보고에서 모든 주장에 대해 '가능성 배제하지 않음'으로 판단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캡처

중간 보고서 신뢰성도 의심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①보고서 작성 시점부터 문제다. 1차 보고서는 김씨가 국회에서 증언한 다음 날인 14일 작성된 반면, 중간 보고서는 1차 보고서 내용을 다룬 한국일보 기사가 나온 다음 날인 18일 작성됐다. 박 의원이 김씨의 유튜브에 출연하기 직전에 김씨 주장을 두둔할 논리를 만들었다고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실제 국내 모든 언론이 본보 기사를 인용하며 김씨의 섣부른 발언과 민주당의 경솔함을 지적하며 이번 사건의 문제를 지적하자 박 의원은 돌연 입장을 바꿨다.

심지어 박 의원은 방송 도중 "'김어준 허황된 사실, 거짓말' 이렇게 돼가지고 제가 좀 미안해요"라고 김씨에게 사과하고, 급기야 김씨 제보에 대해 "날것 그대로의 첩보가 제일 중요하다"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②노 전 사령관의 등장 시점도 사실과 맞지 않다. 그는 9일 박 의원이 직접 김씨 유튜브에서 언급하면서 세간에 처음 알려졌다. 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에선 14일 성명을 통해 노 전 사령관을 계엄 사태 기획자로 지목하며 긴급 체포를 주장하기도 했다. 즉, 이미 1차 보고서가 작성되기 전부터 민주당에서 계엄사태의 핵심 당사자로 인지하고 있었던 인물인 셈이다.

③미군 암살 시나리오가 가능한 근거로 중간 보고서에서 새롭게 제시한 사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 의원은 △미군이 5, 6명 근무하고 △노 전 사령관의 비서실장이 해당 부대 실장으로 있고 △노 전 사령관이 예전에 지휘관으로 근무했던 다른 부대를 찾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보사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부대에서 근무하는 미군 수는 그보다 훨씬 적은 규모인 데다 계엄 당일 해당 부대의 경계 태세도 소홀해진 정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연합뉴스TV 캡처

강성 지지층 반발에 태도 표변?

민주당의 입장이 이렇게 급변한 데는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주장에 대해 "상당히 허구가 가미됐다"는 평가가 담긴 민주당 내부 보고서가 본보 보도로 알려지자 지지자들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당은 내부 색출작업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가 버젓이 국회에서 증언하도록 역할을 한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항의가 쏟아지자 이날 "과방위원장을 비난하고 국회를 폄훼하는 시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적반하장식 입장문을 내놨다.

민주당이 논란이 크고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제보를 국민 앞에 공개하며 여론의 혼란을 자초한 것에 더해 자체 평가마저 뒤집으면서 더 큰 혼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사살', '공작'과 같은 자극적인 발언들을 여과 없이 내보낸 것을 놓고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사실 확인도 없이 너무 성급하게 제보를 공개했고, 탄핵 표결 직전에 이를 공개함으로써 제보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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