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곡관리법 또 거부, 농민들은 어디 가서 호소하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 권한대행은 “시장 기능을 왜곡해 쌀 등 특정 품목의 공급 과잉이 우려되며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거부 사유를 밝혔다. 민주적 위임이 결여된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자제해야 함에도 탄핵된 대통령 윤석열과 똑같이 행동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한 대행이 거부한 법안은 기후변화로 더 불안정해진 농산물 가격과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국회를 통과한 민생 법안이다. 정부와 여당은 올해 최저로 떨어진 쌀값을 안정시키는 데 실패했고, 국회 논의에 참여하지도 않고 법안 통과를 지켜보다, 이제 와서 윤석열의 거부권 논리를 재탕하다니 무책임하다.
과잉 생산된 쌀에 대한 정부 매입을 의무화할 경우 쌀 재배 면적이 늘 것이라는 얘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한 대행이 거부한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가격안정법은 지난 4월 윤석열이 양곡관리법을 거부할 때와 달리 쌀뿐 아니라 식량안보 차원에서 꼭 필요한 콩·밀·조 등 주요 곡물에 대한 가격 안정제를 실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농가들이 쌀 재배로 쏠리지 않도록 정부가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경제 관료들이 주문처럼 되뇌는 ‘쌀이 남아돈다’는 프레임은 사실을 호도한다. 한국인이 점점 밥을 덜 먹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면만 본 것이다. 쌀 과잉공급의 큰 원인은 수입쌀이다. 한국은 2015년 쌀 시장 전면개방 후 매년 40만8700t의 쌀을 수입하고 있다. 이는 매년 남아도는 쌀을 상회한다. 한국의 쌀 자급률은 최근 5년 평균 91%로 100%에 못 미친다. 곡물자급률은 주요 국가들 중 최저인 20%에 불과한데, 그 수치라도 떠받치는 게 쌀이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쌀 농가를 더 지원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농정 실패부터 반성해야 한다. 정부는 뜬금없이 기업에 공급할 가루쌀이 대안이라며 가루쌀 농사를 지으면 전량 국가가 매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가루쌀 80%가량은 정부 창고에 남아 있다. 올해엔 공공비축미 제도 근간을 흔들면서 신곡 대신 구곡을 매입하며 농가 쌀보다 유통업자 쌀을 우선 매입했다. 수입쌀을 줄이지 못한다면 일본처럼 수입쌀을 사료용이나 대외 원조용으로 쓰는 방식을 택해도 국내 쌀 농가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대안을 거부만 하겠다면 정부와 여당은 대체 뭘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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