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무겁다”는 한덕수, 양곡법에 첫 거부권…6개 법안 조목조목 반박

강윤서 기자 2024. 12. 1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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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탄핵 가결 이후 처음, ‘권한대행 거부권’ 자체는 20년 만
‘野 강행’ 양곡법 포함 농업 4법·국회법·국회증언감정법 등 6개 재의요구
野 “한덕수, 거부권 행사 시 응분의 대가 치를 것…김건희 특검법 공포해야”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 ⓒ대통령통신사진기자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6개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 후 처음인 건 물론, 2004년 고건 전 총리 이후 20년 만이다. 야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 한 대행마저 탄핵하겠다고 압박했지만, 한 대행은 각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한 권한대행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어느 때보다 정부와 여야 간 협치가 절실한 상황에서 국회에 6개 법안 재의를 요구하게 돼 마음이 매우 무겁다"면서 "과연 어떠한 선택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인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고민과 숙고를 거듭했다"며 비교적 자세를 낮추면서 운을 뗐다.

이어 "각 법안들에 영향을 받는 많은 국민들과 기업, 관계부처의 의견도 어떠한 편견 없이 경청했다"면서 "국회의 입법권과 입법 취지는 최대한 존중돼야 하지만 정부가 불가피하게 재의요구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6개 쟁점법안을 하나씩 꼽으며 거부권 행사 이유를 하나씩 설명했다. 6개 쟁점법안은 △양곡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등 농업4법과 국회법·국회증언감정법이다. 앞서 야당은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해당 6개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이번 달 6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여당은 해당 법안들에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양곡법, 쌀 공급과잉 구조 고착화…쌀값 하락 심해질 것"

한 대행은 먼저 양곡관리법 등을 포함한 농업 4법에 대해 반박했다. 해당 법안은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한 대행은 "농업농촌의 발전과 농업인들의 소득을 보장하고자 하는 국회의 입법 취지는 충분히 존중한다"면서도 "해당 법들이 시행되면 시장 기능을 왜곡해 쌀 등 특정 품복의 공급과잉이 우려되고, 막대한 재정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선 "고질적인 쌀 공급과잉 구조를 고착화해 쌀값 하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그뿐만 아니라 쌀 생산 확대로 시장 기능 작동이 곤란해져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막대한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정부가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 재의결을 통해 부결, 폐기된 바 있다. 이와 관련, 한 대행은 "이번에 다시 정부로 이송된 해당 개정안은 재의 요구 당시 정부가 이의제기한 '남는 쌀 의무 매입에 대한 우려사항'이 보완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양곡의 시장가격이 일정 가격 미만인 경우 정부가 그 차액을 지급하도록 하는 양곡가격안정제 도입 규정이 추가됐다"고 지적했다.

한 대행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반대한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해당 법안은 채소, 과일 등 주요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하락하였을 때 정부가 생산자에게 차액 지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 개정안 또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농산물 가격안정제가 시행될 경우 농산물 생산이 가격안정제 대상 품목으로 집중되어 농산물 수급 및 가격이 매우 불안정해질 것"이라며 "또한 과도한 재정부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미래 농업농촌을 위한 재원배분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어업재해대책법과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에 대해선 "국가가 재해복구비 외에 생산비까지 보상하는 것은 재난안전법상 재해 지원의 기본 원칙에 반하며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 문제 및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대통령통신사진기자단

韓, 자세 낮추고 거부권…野 "내란 수괴 뜻 따르나" 반발

한 대행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선 "국회 의결이 늦어져 국민 피해가 생길 것"이라며 반박했다. 해당 법안은 11월30일이 지나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및 상임위원회가 예산안 및 세입예산 부수 법안의 심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헌법상 국회는 회계연도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한 대행은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가 헌법에서 정한 예산안 의결기한 12월2일에 구속받지 않고 예산안 심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원활한 예산집행을 위해 국회가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헌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개정안이 시행되어 헌법이 정한 기한 내에 예산안이 의결되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없어지면 예전과 같이 국회의 의결이 늦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께 돌아간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두고는 "중요한 안건심사와 청문회에까지 동행명령 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헌법상 비례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하여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어떤 이유로도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 등에 거부할 수 없도록 하여 헌법상 권력분립원칙에 반하여 개인정보결정권 등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대행은 해당 6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뒤 "정부는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있는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가 재의 요구하는 법안들에 대해 국회에서 다시 한번 심도 있게 논의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 해달라"며 마무리했다.

한편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한 대행의 거부권 행사 전망이 나오는 것에 대해  "한 대행은 내란 수괴의 뜻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며 "윤 대통령의 직무 복귀를 원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란 사태를 지속시키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도 즉시 공포해야 한다"며 "만약 한 권한대행이 탄핵 민심을 무시하고 권한을 남용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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