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양곡법 시행되면... “쌀 과잉 생산 부추기고 매년 혈세 1兆 더 들어”

유진우 기자 2024. 12.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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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평년 가격 이하면 정부가 차액 보전해야
“쌀 생산 쏠림... 수급 불균형 초래”
5년 뒤 보육료 예산보다 재정 더 필요
“가공식품 수출 확대, 고품질 쌀 보급 등 근본적인 해결 방안 필요”

쌀 먹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생산량은 줄지 않아 쌀이 남아돌고 있다. 이 가운데 야당은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을 다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이 지나치게 많이 생산돼 쌀값 하락이 우려될 때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본회의에서 폐기됐다가 지난달 다시 통과됐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는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내용뿐 아니라, 기존에 없던 ‘양곡 가격 안정 제도’까지 추가됐다. 쌀값이 평년 가격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보전하게 하는 제도다.

용인시 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미곡종합처리장 저온창고에서 직원이 수매 후 보관 중인 쌀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19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가뜩이나 심각한 쌀 과잉 생산을 촉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쌀값 하락에 가속이 붙어 정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농가 입장에서는 매년 소득이 보장되는 쌀농사를 그만둘 이유가 없어진다. 결국 쌀 편중 현상이 심해져 자율적인 농작물 수급 기능이 약해지고, 농업 균형 발전에도 해를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 ‘하루 밥 한 공기 반’ 쌀 소비량 역대 최저

쌀 생산량은 2019년 374만톤(t)에서 2021년 388만톤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다시 370만톤 정도를 기록했다. 5년 동안 쌀 생산량은 소폭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소비량이 더 급격히 줄었다. 쌀 생산이 과잉이라는 의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81킬로그램(kg)이었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매해 줄어 지난해 56킬로그램에 그쳤다. 18년 사이 30% 넘게 줄었다. 하루 소비량으로 치면 154.6그램(g)에 그쳤다. 공깃밥으로 한 공기 반 분량이다. 196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저치다.

먹지 않아 남아도는 쌀은 지금도 정부가 매입한다. 정부가 사들인 쌀은 전국 창고 3436동에 나눠 보관하다 저소득층이나 취약 계층에게 정부 양곡으로 판다. 지난해 정부는 쌀 매입에 9916억원을 썼다. 보관 비용은 2019년 905억원에서 작년 1187억원까지 뛰었다. 이미 쌀 매입과 보관에 1조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최명철 식량정책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쌀 산업을 소비자 수요에 맞는 고품질 쌀 적정생산 체계로 개편하는 내용의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급 불균형으로 농산물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쌀 가격을 보장하면, 쌀 생산 쏠림이 심해져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 등 악순환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가격 보장 대상에서 빠진 품목들은 생산이 줄어, 가격 상승 위험이 커진다.

승준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곡물경제연구실장은 “(개정안에는)쌀값 보전 기준 가격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쌀 (과잉 생산) 문제는 가공식품 수출 확대, 고품질 쌀 보급 같은 신규 수요 창출 등을 통한 더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개정안 시행 시, 농림부 연간 예산 16% 넘게 소모

농림축산식품부는 새 양곡관리법이 도입되면 2030년 쌀 초과 생산량이 63만톤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년 정부가 이 쌀을 사들이는 데 들어가는 재정은 약 1조4000억원 수준으로 예측된다.

이 추세라면 2030년에는 쌀 매입비와 보관비로 3조원 이상이 들어갈 전망이다. 올해 농식품부 예산 18조30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전체 예산 16.4%에 해당한다.

보건복지부는 출산·양육으로 인한 소득 감소 보전을 위해 부모 급여 지원 예산으로 2조8887억원을 책정했다. 국내 영유아 보육료 지원에 책정한 총 예산도 2조6731억원으로 3조원에 못 미친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 교수는 “가격 지지나 정부 매입 같은 식으로 예산이나 정부 재고에 부담을 가중하는 정책은 지속 불가능하다”며 “쌀과 같이 과잉되는 품목을 정부가 마지막 수요자가 돼 계속해서 사들이는 것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차원의 쌀 수급 안정화 대책 모색을 위해 경기 김포시 양촌미곡종합처리장을 방문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

농촌은 점차 고령화되고 있다. 농사를 짓는 농업인 가운데 59%는 65세 이상이다. 고령화 농촌에서는 노동력이 덜 드는 벼농사를 선호한다. 현재 국내 전체 경지 면적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6%에서 벼를 재배한다. 벼농사는 모내기부터 수확까지 기계화율이 99%에 달한다. 반면 밭은 기계화율이 작물 재배 단계에서는 10%대로 떨어진다.

이 때문에 쌀은 넘치지만, 나머지 곡물을 합치면 국내 곡물 자급률은 21%에 그친다. 빵과 면 주재료인 밀은 고작 1.3%다. 쌀 자급률이 100%를 넘어 110%에 달하지만, 콩과 밀 같은 주요 곡물조차 여전히 수입에 의존한다.

전문가들은 남는 쌀에 무조건 보조금을 줄 게 아니라, 벼 재배 농지에 콩 같은 전략 작물을 심을 경우 보조금을 지원하는 식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이번 개정안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는 이런 우려에 대해 “식량 위기 시대에 꼭 필요한 사회적 비용”이라며 “쌀을 포함한 16개 작물에 대한 가격안정제 도입 연구 결과, 기준 가격을 실질 평년 가격으로 하고 차액 85%를 보전하는 경우 연평균 1조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이날 임시국무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안건을 올려 심의할 예정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총리 시절 양곡법 개정안이 시장 논리에 위배된다며 줄곧 반대입장을 밝혔다. 다만 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16일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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