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기술혁신, 제도부터 바꾸자
지금 기술혁신에서 미국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서민 경제는 어렵다고 하지만 전기차나 로봇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중국과 경쟁 분야가 겹치는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어려움에 처해 있다.
유럽은 어떤가? 제조업 강국 독일이 전기차 대응에 늦어서 '유럽의 병자'로 변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GDP를 비교하면 지난 10년간 보면 미국은 지난 2013년 약 16.7조 달러에서 2023년 약 26.9조 달러로 두배 정도 증가한데 비해 유럽은 약 17.5조 달러에서 약 17.9조 달러 증가에 그쳤다.
주식 시가총액은 더 차이가 난다. 미국은 2013년 19.8조 달러에서 2023년 약 42.0조 달러로 급격히 증가했지만 유럽은 약 8.5조 달러에서 약 9.0조 달러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유럽의 자기 성찰을 들어보자.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024년 9월 'EU 경쟁력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EU의 글로벌 경쟁력이 '실존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전략 부재, 노동·인구 문제, 정치·행정 이슈, 기술혁신 등 다양한 관점을 제기하고 과거 마셜플랜의 2배에 버금가는 대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제안하였다.
필자는 여기서 유럽의 연구·개발(R&D) 패러독스라고 볼 수 있는 부분에 주목한다. 유럽이 R&D 투자를 많이 하고 연구 성과도 우수함에도 막상 글로벌 테크기업은 드물다. 즉 R&D가 경제적 기술혁신으로 잘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유럽은 구글에 검색을 의존하고 홧츠앱에 메신저를 의존한다.
미국은 어떤가? 구글, 홧츠앱, 이베이, 페이팔 모두 유럽 출신 이민자가 창업한 기업들이다. 남아공 출신인 일론 머스크, 미국 테크기업들의 인도계 CEO들까지 포함하면 미국에서 해외 출신들이 미국의 기술혁신에 큰 역할을 한다.
드라기 전 총재는 EU 혁신시스템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EU 회원국간 연구협력과 산학 협력의 미흡, 규제 과잉과 복잡성, 투자와 재정 지원 부족(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약 2.2%로, 미국(3.4%)이나 중국(2.4%)에 비해 낮은 수준), 기술사업화 시스템의 비효율성, 인재 및 교육 시스템의 한계, 벤처 생태계의 미흡, 기업가정신 부족 등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런 내용은 어디서 들어본 것 아닌가? 바로 한국이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R&D 투자비율이 더 높기까지 하다. 코리안 R&D 패러독스는 유럽과 판박이다. 한국, 유럽 모두 인재가 미국으로 떠나고 있다. 예산으로 R&D 투자를 늘릴수록 미국에 인재를 공급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아닌가?
미국의 국가혁신시스템은 전세계의 인재와 돈을 유인하는데 있어서 경쟁력이 있다. 국가혁신시스템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지만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아세모글루 등의 주장을 보자.
이들은 국가 간 경제적 번영의 차이를 정치·경제적 제도 관점에서 특히,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를 국가혁신시스템에 적용해보면 한마디로 기술혁신활동 참가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얻는 시스템인지 아닌지의 여부라 할 것이다. 즉 미국은 기술혁신활동과 관련하여 포용적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그 결과 유능한 인력, 기술, 자금이 미국으로 모이고 미국 내에서 연구성과가 기술혁신,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우리의 과학기술정책도 제도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R&D 투자 증가 등 양적인 정책도 중요하지만 국가혁신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R&D 투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해외로부터 기술과 인재가 오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관련 규제를 개선하고 기술혁신친화적 금융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선제적, 그것도 국내기업만 차별적인 규제를 강화해서 기술혁신이 가져올 혜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약탈적 금융에 기술창업기업을 뺏기도록 방치해서도 안된다. R&D 에 참여한 사람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술혁신 참가자들이 그 과실을 향유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여 R&D 투자가 국가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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