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배달인데요. 짜장면 다 불어요”…2년차 순경의 기지가 만든 ‘교제폭력’ 현장검거 [플랫]
“저기요, 짜장면 배달되나요?”
지난 1일 밤 10시37분, 경찰 112센터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주인공은 겁에 질린 목소리의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다짜고짜 짜장면을 시켰다. 수화기 너머로 윽박지르는 듯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지금 어디 전화하냐?” 경찰 신고를 의심한 남성의 고성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겼다.

발신지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모텔이었다. ‘짜장면 배달’ 전화 내용은 곧장 발신지 인근인 강북경찰서 번동파출소로 접수됐다. 2년차 팀 막내인 윤현성 순경(30)이 사건을 넘겨받았다. 예사롭게 넘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윤 순경은 18일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112로 신고된 녹취록을 듣자마자 긴급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즉시 출동했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신고자는 정확한 객실 호수를 말하지 못했다. 신고 기록에 남은 건 모텔 위치뿐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5층짜리 건물이었다. 당장 인명피해가 발생할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에서 모든 객실을 탐문·수색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윤 순경이 기지를 발휘했다. 그는 피해 여성의 전화가 ‘중국집 배달’이었다는 점을 떠올렸다. 짜장면을 시켰는데 아무 것도 오지 않으면 신고자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판단도 들었다. 그는 “지금 상황이 어떤지, 피해자 안전이 확보됐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더 큰 피해가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위치를 유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순경은 경찰 업무용 휴대전화로 전화를 하면 상대 휴대전화에 ‘010’으로 시작하는 개인 번호가 뜬다는 점을 이용했다. 신고 접수 8분 후인 오후 10시45분쯤 윤 순경은 다시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남성이 받았다. 윤 순경은 “저 배달인데요. 지금 짜장면 다 불어요. 배달할 거 많은데 다 밀리고 있어요. 빨리 몇호신지 말씀해주세요”라며 시간을 끌었다. 수화기 너머 남성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배달이 맞냐” 의심하고, “너 이 XX 죽여버리겠다”며 협박도 했다.
윤 순경은 굴하지 않았다. 끈질기게 “카드예요, 현금이에요?” “배달을 시켜놓고 주소를 말 안 하면 어떡해요”라며 위치를 캐물었다. 집요한 추궁에 남성은 마침내 모텔 객실 번호를 말했다.
📌[플랫]“교제폭력은 여성을 폭행·살해하면 ‘용서받을 수 없음’을 보여주지 못해 나타난 결과”
최초 신고 후 10여분 만인 오후 10시48분, 윤 순경을 비롯한 출동 경찰관들이 객실을 찾아내 진입했다. 윤 순경은 즉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했다. 피해 여성은 방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이후 경찰 조사에서 “남성에게 머리채를 잡혔다”는 등 폭행 피해를 진술했다.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연인 관계인데 술이 들어가서 약간 실랑이가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순경은 “교제폭력 사건은 항상 있었는데 최근 들어 중요도가 커지면서 현장에서도 더 많이 긴장하고 있다”며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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