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특임단’ 대테러 임무 최정예 ‘한국의 델타포스’… ‘특전사’ 유사시 적 후방 투입해 게릴라·심리전[Who, What, Why]

정충신 기자 2024. 12. 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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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 비상계엄 투입 특수부대들
<font color=#3D46A8>707특임단</font>
조직규모·개인신원 2급 비밀
아프간 샘물교회 피랍 등 투입
<font color=#3D46A8>특전사</font>
요인 암살·납치 등 주요 임무
강릉 무장 공비 침투사건 활약
<font color=#3D46A8>방첩사</font>
보안사→기무사→방첩사
군내보안·정보 담당하는 조직
비상계엄이 선포된 4일 새벽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단 부대원들과 제1공수특전여단 요원들이 무장한 채 국회 진입을 시도하면서 국회 보좌진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당시 서울 여의도 국회와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됐던 계엄군에 어떤 부대가 동원됐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8일 현재까지 확인된 계엄군 투입 부대는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예하 707특수임무단(특임단)을 비롯해 제1공수특전여단, 중앙선관위 등에 진입한 제3·9공수특전여단과 국군방첩사령부 등이다. 경기 이천에 있는 707특임단과 1·3·9공수특전여단, 경기 과천의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특수임무대는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에서 대테러 임무 등을 수행한다. 특히 707특임단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신속하게 작전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기동성을 갖춘 특수부대다. 방첩사는 최고의 정보력을 보유한 군정보기관으로, 정치적 사건 등에 연루돼 정권 교체기마다 부대 명칭이 바뀌는 고난을 겪고 있다.

◇707특임단은 대테러 임무 국내 제일 특수부대 ‘한국의 델타포스’ = ‘백호부대’로 알려진 707특임단은 국가전략 차원의 임무와 더불어 핵심 대테러 대응 임무를 수행하는 국내 제일의 특수부대다. ‘한국의 델타포스’로 불리며, 유사시 적 지도부를 참수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1981년 설립 당시 역할은 특전사령관 등 요인 경호였지만 점차 대테러 작전 등 영역을 확대했다. 전시에는 ‘X파일’이라고 비밀작전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한다. 2007년 분당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선교하러 갔다가 탈레반에 납치됐던 사건을 비롯해 2023년 무력 충돌 사태가 발생한 북아프리카 수단에 체류 중이던 우리 국민 철수작전에도 투입돼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707특임단 탄생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끈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인 12·12사태가 계기가 됐다. 전두환과 하나회의 반란에 저항하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하나회 소속인 제3공수특전여단장 최세창 준장이 휘하의 제15대대(대대장 박종규 중령)를 동원해 습격 제압하는 하극상이 발생, 정 특전사령관은 총상을 입은 채 신군부에 사로잡힌다. 이후 특전사령관이 된 박희도 당시 1공수특전여단장이 무장병력이 없는 무방비 상태의 사령관은 하극상이 일어났을 경우 쉽게 제압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특전사 내에서 인원을 차출해 특전사령관의 친위대인 707특수임무대대를 창설하게 된다.

707특임단 요원은 정예 특전사 대원 중에서 선별한 인원으로 부사관 등 간부로만 구성된다. 기수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특전부사관 후보생 100∼200명 중에 4∼7명 정도가 뽑힌다. 707특임단의 정확한 임무와 조직 규모, 대원 개개인의 신상 등은 2급 비밀에 해당되는 보안사항이다. 707 대원들은 모두 복면을 하거나, 얼굴을 알 수 없게 위장크림 등으로 신원 노출을 막는 게 기본이다.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요원들이 4일 새벽 국회 내부로 진입한 모습. 연합뉴스

◇‘검은 베레’ 특전사는 6·25전쟁 시기 켈로부대 등 유격첩보부대서 유래 = 사실 대한민국 최초의 대테러부대는 1978년 창설된 특전사 제606부대다. 606부대는 평소에는 대테러훈련을 했고, 예하 팀들이 몇 개월씩 교대로 돌아가면서 청와대에 파견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를 맡았다가 1980년 606부대가 27부대로 개칭됐다. 이후 대테러임무는 707특임단으로, 대통령 경호임무는 27부대로 각각 특화돼 분화·발전했다. 국내의 무장인질극 사건도 1990년대 이후로는 경찰특공대가 전담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707특임단이 전담했던 해상대테러도 1993년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이 창설되면서 임무가 이관됐다.

특전사는 ‘유사시 적진에 깊숙이 침투해 게릴라전, 심리전, 수색·특수정찰은 물론 요인 암살과 납치, 주요시설 폭파 등 특수작전’이 주요 임무다. 특전사 유래는 6·25전쟁 기간 주한 유엔군 유격부대(UNPFK)의 제8240 유격첩보부대(켈로(KLO)부대와 각종 유격대를 통합한 부대)에서 활약한 장병들을 소집하고 백문오 대령을 초대 지휘관으로 해 1958년 4월 1일 창설된 제1전투단이다. 1958년 10월 제1공수 특전단으로 부대명을 개칭했다. 특전사 하면 대부분이 12·12 내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여했던 공수부대를 떠올리는 이유가 바로 이 제1공수 특전단 때문이다.

특전사 부대 단위는 군단이며, 특전사령관 역시 군단장으로 분류된다. 1997년 제11·13공수특전여단이 창설되면서 현재 예하 부대로 6개의 공수특전여단과 1개의 국제평화지원단을 포함해 7개 여단을 갖추게 됐다. 특전사는 창설 이후 여러 대간첩 작전에 투입돼 무장 공비를 사살하는 공과를 남겼다. 1996년 강릉 무장 공비 침투사건에서 활약했고, 베트남 전쟁에도 공수특전대원으로 참전했다.

◇방첩사는 보안사-기무사-안보사 등 정부 바뀔 때마다 명칭 변경 = 이번 계엄 사태에 연루된 방첩사는 1948년 창설된 국방경비대의 육군정보처 특별조사과에서 출발했다. 이후 특무부대, 방첩부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1977년 국군보안사령부로 확대 개편됐다. 보안사는 12·12 군사쿠데타의 주축 역할을 했고, 그 결과 대통령을 2명이나 배출했다. 군내 보안과 정보수집을 앞세워 군 안팎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지만, 1991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이후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기무사는 다시 문재인 정부 때 해편된 뒤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사)로 개편됐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방첩사로 바뀌는 등 정권 교체 때마다 부대 명칭도 바뀔 정도로 변화가 많았다.

특히 방첩사는 이번 계엄 사태뿐 아니라 2018년 ‘계엄 문건’ 파동에도 크게 휩싸인 적이 있다. 그해 7월 이철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군인권센터는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방안’이란 8쪽짜리 문건을 공개했는데, 이게 ‘계엄 문건’ 파동의 시작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지시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서 친위쿠데타 음모를 꾸몄던 것처럼 몰아갔지만 당시 내란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기무사는 군사안보지원사로 명칭을 변경한 뒤 윤석열 정부에서 2022년 11월 방첩사로 거듭났지만 이번에는 비상계엄의 중심에 서게 됐다.

비상계엄 당시 국회 진입 부대를 지휘했던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사실상 명령에 저항한 707… 유혈사태로의 확산 막았다”

“시·분·초단위로 작전 훈련
제대로 수행했다면 큰 피해”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됐던 707특수임무단(특임단) 대원들이 계엄에 사실상 저항하면서 유혈사태로의 확산을 막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8일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707특임단 197명은 지난 3일 UH-60P 헬기에 탑승해 제1공수특전여단 277명과 함께 국회에 투입됐다. 임무는 국회 본관과 의원회관 봉쇄였지만, 이날 대원들은 물리력 사용을 자제하고 천천히 이동했다. 소극적으로 저항하면서 사실상 작전 수행을 거부한 것이다. 일부 요원들은 창문을 깨고 국회 본관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이들 역시 적극적으로 물리력을 사용하진 않았다. 김현태 707특임단장(대령)도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국회 출동 및 창문을 깨고 들어가라는 지시도 다 내가 했다. 대원들이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707특임단 등 특수부대는 평소 모의 현장에서 작전을 어떻게 수행할지 시·분·초 단위로 연습한다. 만일 대원들이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했다면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던 것으로, 실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계엄군 등장에 당시 국회 본관에 있던 일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과 보좌진이 계엄군의 총부리를 잡아끌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것. 군인은 총기를 목숨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겨야 하며 어떤 순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절대 원칙이 있다. 총부리가 잡힌 군인이 “이러지 마시라”며 뒤로 물러나면서 상황을 피했지만, 이 같은 절대 원칙에 의거해 총기를 사용하거나 휘둘렀다면 사태는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 게 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국군방첩사령부 요원들도 국회와 중앙선관위에 출동하기는 했지만,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의 지시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은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이 지휘한 선관위 출동팀은 선관위에 진입하지 않고 전산실 서버 확보와 관련해 법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팀장 4명과 법무장교 8명이 참여했는데, 논의 끝에 사령관 명령을 이행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정 1처장은 방첩사 요원들에게 비무장 사복, 원거리 대기, 선관위 진입 강하게 통제 등의 지침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선관위로 이동한 요원 110명 중 단 1명도 선관위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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