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AI시대 전략] AI가 노벨 물리학상·화학상·의학상 받는 시대 다가온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2024. 12. 1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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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백질 구조 AI가 발견해 직접 신약 개발하는 시대 올 듯
수억개 방정식 동시에 풀며 스스로 HBM 반도체 도면 설계할 수도
검색·추천·생성을 넘어 과학·공학에서 AI가 노벨상 주인공 된다

지금까지 인공지능(AI) 발전은 사용자가 외부·가상 현실과 다양한 감각을 통해 상호작용 하도록 지원하는 ‘멀티모달 생성형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래에는 유튜브 동영상들이 인간이 제작하는 것보다 인공지능이 만드는 것들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면 인간의 의식도 인공지능에 의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인공지능의 역할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자연과학의 발견에도 사용할 수 있다.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단백질의 발견이나 설계에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다. 단백질은 인간 세포 내에서 거의 모든 주요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 분자다. 효소, 신호 전달, 구조 형성, 면역 반응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어 단백질 분석과 발견 그리고 설계는 생물학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목표 중 하나이다. 단백질은 크게 1차 구조인 아미노산부터 시작해서 최종인 4차 구조 단백질의 형태로 구성된다. 단백질은 아미노산 서열에 따라 ‘독특한 3차원 구조’를 형성하며, 이 구조가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한다. 따라서 단백질에서는 ‘구조가 곧 기능’이다. 인공지능이 이 구조를 예측할 수 있다.

그래픽=양인성

단백질은 20개의 표준 아미노산이 조합되어 만들어진다. 아미노산의 순서와 개수, 그리고 3차원상의 접힘(folding) 과정이 단백질의 다양성과 기능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이런 3차원 단백질 구조의 발견에 인공지능이 사용된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단백질 구조를 정확히 예측하면 그 기능을 이해할 수 있고, 신약 개발이나 단백질 공학에 직접 적용이 가능하다. 단백질 공학이란 유전자 재결합을 이용해 유용하거나 가치 있는 새로운 단백질을 개발하는 공학 분야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인공지능 자신이 신약 개발이나 단백질 공학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구글 딥마인드 CEO이자 공동 창립자인 영국인 데미스 허사비스가 단백질 구조 생성 인공지능인 ‘알파폴드(AlphaFold)’를 개발한 공로로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알파폴드를 사용해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으로 사용하고, 아미노산 사이의 거리와 뒤틀림을 예측해 마침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그려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에서 사용하는 ‘경사 하강법’을 이용해 신경망에서 예측한 아미노산의 거리와 뒤틀림을 가지는 가장 안정적인 단백질 구조를 탐색하는 데도 성공했다. 경사하강법은 인공지능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최적화 기법이다. 세계 단백질 공학 시장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올해 기준 34억달러(약 4조9000억원) 정도의 시장 규모를 가지며, 오는 2032년에는 93억달러(약 13조3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의 역할은 자연과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학에서도 필수 도구로 사용될 전망이다. 최근 인공지능 수퍼컴퓨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설계에도 인공지능을 적용해 보고 있다.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포함한 인공지능 반도체를 설계하고 성능을 예측하는 과정에서 수백억 개의 미분 방정식을 동시에 풀어야 한다.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해서도 길게는 수개월 동안 계산한다. 막대한 고급 인력, 소프트웨어와 컴퓨터가 필요하다. 이 예측 과정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면 개발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생성형 인공지능이 반도체 설계 도면 자체를 직접 만들 수 있다. 배치도와 연결망도 그린다. 마지막으로 최종 설계 단계에서 필요한 최적화 과정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다.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설계 튜닝과정으로 보면 된다. 이 작업도 ‘강화 학습’이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이 도울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반도체 구동을 위한 소프트웨어도 초거대 언어 모델(LLM) 기반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서 코딩을 하기도 한다.

지금 컴퓨터 없이는 반도체 설계를 전혀 못 하듯 앞으로 인공지능 도움 없이는 반도체 설계를 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정, 설계 전문가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반도체 설계자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1990년대 초 필자가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레이저를 이용해 반도체 안에서 일어나는 전자파 현상을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 단위로 측정했었다. 같은 연구실 동료 학생들은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해 다양한 물리적, 화학적 현상을 시간도 멈춘 짧은 시간 속에서 관찰했다. 이러한 공로로 지도 교수인 제라르 무루는 20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무루 교수의 연구를 오랜 기간 동안 가까이 지켜보면서 그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연구는 무엇보다도 원천적이고 도전적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추종적이고 단기적 연구는 노벨상 대상이 아니다. 복제와 개선 연구는 더더욱 아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는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의학상도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 자신이 받을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본다. 이제 인공지능의 적용 범위가 검색과 추천 그리고 생성을 넘어서 과학과 공학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는 모험과 창조의 공간이다. 그래서 과학과 공학에서도 인공지능은 효율적이며 필수적인 도구이면서 동시에 협력과 공존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목적’으로 쓰이고, 인공지능을 ‘인간이 소유’하며 ‘인간을 위한 도구’로 쓰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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