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통할 거야!" 조롱을 트렌드로 만든 어느 디자이너의 본질
임선옥 디자이너의 다른 길
소재 하나로 사계절 옷 만들어
국내 첫 제로 웨이스트 브랜드
패션의 지속가능성 꾸준히 탐구
세계에서 찾는 디자인 스튜디오
대한민국 패션대상 최고상 수상
해외로 향하는 파츠파츠의 새 길
# 패션산업은 욕망을 먹고 자란다. 매 시즌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SPA 브랜드의 등장 이후 패션의 주기는 더 빨라졌다.
# 1998년 서울컬렉션으로 데뷔한 임선옥 디자이너는 일찌감치 다른 생각을 품었다. "언젠가 사람들이 옷 사기를 두려워하는 때가 올 거야." 끝없이 만들고 버려지는 패션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2011년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지향하는 브랜드 '파츠파츠(PARTs PARTs)'를 론칭한 이유다. 그의 통찰은 맞아떨어졌다. 패션 업계에서도 이젠 제로 웨이스트가 대세가 됐다.
# 임 디자이너는 최근 '2024년 대한민국 패션대상'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국내 최초로 제로 웨이스트를 패션에 도입한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를 서울 종로구 부암동 파츠파츠 디자인 랩에서 만났다.
![임선옥 디자이너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해 왔다.[사진|파츠파츠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17/thescoop1/20241217124851461bcod.jpg)
인공지능(AI)이 패션산업까지 파고들었다. 몇몇 명령어만 입력하면 AI가 다양한 소재와 패턴을 조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샘플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AI가 열어젖힌 셈이다. "AI가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엔 의견이 분분하지만, 디자이너도 새로운 시대에 '그들만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인 건 사실이다.
임선옥(62) 디자이너는 "그럴수록 디자이너는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면서 "인문학적 소양, 패션산업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 그리고 디자인을 하는 '선한 의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패션의 본질적 가치를 탐구해온 디자이너다. '제로 웨이스트'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해 왔다. 2011년 론칭한 파츠파츠(PARTs PARTs)는 그의 내재된 철학이 표출된 브랜드다.
파츠파츠는 '네오프렌(neoprene·합성고무)'이란 단일 소재를 사용하고, 디자인을 부품처럼 구조화해 버려지는 폐원단을 최소화하고 있다. 입고 버리는 옷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막대한 폐기물이 발생하는 게 패션산업의 폐단이란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행보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해온 임 디자이너를 만났다.[※참고: 전세계 탄소배출량 중 패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 10%(UN·2018년)에 달하고, 매년 생산한 섬유의 85%(WEF ·2020년)가 버려진다.]
✚ "디자이너는 기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해오셨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브랜드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일 텐데요.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 성향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싶어요. 늘 완벽하게 완성된 것보다 버려진 것들, 미완의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예컨대 옷을 만들고 나면 바닥에 버려진 부속품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이 있어요. 그건 제 역량을 넘어선 흥미로운 발현이었죠. 버려지는 것들을 늘 관찰했고, 옷을 만들 땐 소재 하나하나 남김없이 쓰려고 해왔어요."
제로 웨이스트는 콘셉트가 아니다. 그가 삶 속에서 추구해온 본질이다. 이 때문에 브랜드 '파츠파츠'를 다듬는 덴 시간이 필요했다.
✚ 파츠파츠에 앞서 1996년 '이고(Ego)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나요.
"그땐 그저 행복하게 디자인을 했어요. 깊은 고민을 하기보단 제가 만들고 싶은 옷, 미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옷을 만드는 데 집중했죠. 하지만 이내 '이렇게 지속할 순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진|파츠파츠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17/thescoop1/20241217124854310wuts.jpg)
✚ 이유가 있었나요?
"매년 패션 컬렉션에 참여하려면 50여개 복종服種을 만들어야 하고, 30여개 이상의 재료가 필요했어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뿐더러 단기간에 소진하지 않으면 재료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죠. 신진 디자이너일 땐 그저 즐거워서 (디자인을) 했지만 더는 지속할 자신도, 그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어요."
✚ 그래서 파츠파츠 브랜드를 론칭한 후엔 '네오프렌'이란 단일 소재만 사용하신 건가요? 왜 네오프렌이었나요?
"네오프렌은 내구성과 항상성이 뛰어난 소재에요. 두께만 조절하면 여름옷부터 겨울옷까지 만들 수 있죠. 하나의 소재로 사계절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관리가 쉽고 옷의 형태가 잘 유지돼 오래 입을 수 있죠. 봉제가 아닌 접합 방식으로 만들어 옷을 분해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재조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찾던 '지속가능한' 소재였죠."
하지만 시장은 파츠파츠의 본질적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한가지 소재로 만든 옷이 팔리겠어"라는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계절마다 새로운 옷을 팔아야 하는 게 패션산업의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 파츠파츠가 처음 나왔을 때 시장의 반응은 어땠나요?
"반발이 심했어요(웃음). 다른 패션 브랜드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자 했지만 누구 하나 인정하지 않더라고요. 뭐, 좌절하진 않았어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긴 시간을 파츠파츠를 다듬는 데 썼죠."
✚ 패션산업은 욕망을 먹고 자라는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어떻게 확신하셨나요?
"언젠가 사람들이 옷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는 때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장기적으로는 라이프스타일도 달라질 거라고 예상했죠. 그때 단 하나의 옷을 사야 한다면, 우리 옷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죠."
그의 생각대로 세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제로 웨이스트는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환경은 모든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됐다. 한발 앞서간 파츠파츠는 세계에서 찾아오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발돋움했다.
2019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제로 웨이스트 워크숍'이 대표적이다. 이 워크숍은 파츠파츠의 철학을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패션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다. 올해엔 연세대·수원대 등 국내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 드렉셀대 학생들이 참여했다.
지난 4일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2024년 대한민국 패션대상'에서 임선옥 디자이너가 최고상을 수상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브랜드로서 한국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해외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질 것이란' 믿음이 맞았네요.
"지금도 10년 전에 구입한 옷을 수선해 달라고 가져오시는 고객들이 있어요. 그럴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오랜 시간 질리지 않고 계속해서 입을 수 있는 옷이라면 우리가 추구해온 길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파츠파츠는 세계에서 찾아오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발돋움했다.[사진|파츠파츠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17/thescoop1/20241217124855848tegr.jpg)

✚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더 많은 고객에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하이엔드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합리적인 가격대의 범용적인 라인을 확대할 계획이에요.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생산량이 뒷받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시장을 넓혀야겠죠."
✚ 해외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2025년 목표를 글로벌 시장 다변화로 잡았어요. 네오프렌은 니트나 캐시미어처럼 흔한 소재가 아닌 만큼 유럽 등 성숙한 시장에 먼저 진출해서 저변을 확대해볼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필요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싶지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요?
"'나다움'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엔 너무 많은 자극이 있지만 '내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한다면, 꼭 소비해야 할 곳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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