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낳은 아이 3명 품은 외국인 부부, 세상을 밝히다[고맙습니다]

2024. 12. 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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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가르쳐준 천사에게 <상>
2007년 필자(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호주 시드니 인근 글렌브룩에 있는 피터 아저씨(〃 세 번째) 댁에 방문해 아저씨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소피는 무엇을 새기고 싶어?”

금박 책갈피에 정성스레 전통문양을 새기는 소피에게 내가 물었다. “‘복(福):fortune’을 새겨서 간직하고 싶어요. 버려질 뻔했던 제가 좋은 아버지에게 입양된 것도 복(福)이고, 저에게 삶을 선물해주신 양아버지의 복(福)도 빌어드리고 싶어요. 그분이 제게 주신 사랑을 저도 베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소피의 진심 어린 문장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래전, 아이는 친부모에게 버려졌다. 그러나 복지회에 등록된 아이를 이역만리 호주에서 날아온 한 부부가 부모를 자처하며 데려가 사랑으로 키워주었다. 양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속에 장성한 아이가 어느덧 어른이 되어,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후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피터 아저씨가 계셨다.

피터 아저씨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92년 여름,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광화문 인근에서 책을 사고 서대문 집으로 돌아오던 중, 뭔가를 찾아 헤매는 한 외국인을 보게 되었다. 그분에게 다가가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어본 결과, 당일 밤 비행기로 출국하기 전, 꼭 처리해야 할 은행업무가 있어 은행을 찾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재빨리 가까운 은행을 찾아드리긴 했는데, 문제는 토요일 12시 마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은행에 도착했을 때 현관 셔터는 반쯤 내려져 있었고, 나는 은행직원에게 통사정하여 그분의 일 처리를 도와주었다. 일 처리를 마친 뒤, 그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게 도와준 성의에 답하고 싶다며 거액의 달러를 내밀었다. 그러나 대가를 바라고 도와드린 일이 아니었으므로, 더군다나 누구라도 그 상황에 있었다면 기꺼이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극구 사양했다. 그분은 어떻게든 나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했고, 시간이 괜찮다면 머물고 있는 숙소에 가족들이 함께 있으니 점심을 같이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그분이 아내와 함께 한국 아이들을 입양하기 위해 호주에서 오셨고, 가족과 함께 머물던 숙소가 서대문 우리 집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신학대학의 게스트하우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사모님과 함께 피부색이 다른 어린아이들 3명이 함께 있었다. 길에서 만난 고마운 학생이라며 가족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신 피터 아저씨는, 축복과도 같은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파란 눈의 외국인 부부 얼굴에는, 연신 따뜻한 미소와 기쁨이 가득해 보였다.

빨간 김치찌개의 매운맛에 놀라고, 된장찌개 맛보기를 두려워하다가도, 유일하게 입에 맞았던 잡채와 불고기를 맛있게 드시며 그렇게 피터 아저씨 가족들과 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 외국인 부부와의 만남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동네 산책을 할 때마다, 나의 발걸음은 그분의 가족이 머물렀던 신학대학 건물에서 잠시 멈춰지곤 했다. 그분은 도움을 주었던 나를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하시겠지만, 10시간 가까이 먼 곳에서 날아와 마음으로 아이들을 품은 그분의 뜨거운 사랑이 생각나, 자꾸만 그곳을 서성이게 되었다. 입양된 아이들 중에는 평생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도 있었다. 온전하게 자식을 키우는 일도 힘든 일인데, 장애아를 포함하여 3명씩이나, 그것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보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랴….

아이들 셋을 안았을 때,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시며 웃음 짓던 피터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저씨께서 가르쳐 주신 주소로 항공우편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으며, 아이들로 인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피터 아저씨의 가족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달려가 그곳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매년 붉은 벽돌건물을 푸른 담쟁이잎이 덮는가 싶더니, 가을 낙엽이 지는 노을 진 저녁에는 풍광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추운 겨울이 와도 그곳으로 달려가면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의 온기(溫氣)가 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랑으로 자식을 품고 싶었던 외국인 부부와 누군가의 돌봄과 사랑이 절실했던 아이들. 세상에서 더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결합으로 가족이 된 그들이 머물던 곳이었기 때문이리라.

고미령(청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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