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 6시간 비상계엄 파동 미스터리] 미국도 "尹, 상황 오판"… 우크라이나 "韓 여행 위험" 경고
“에이 설마. 가짜 뉴스겠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12월 3일 밤, 송년 모임에서 기분 좋게 한잔 걸치고 귀가하던 회사원 A씨는 조금 전 헤어진 친구로부터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연락을 받고 “장난치지 말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포털 뉴스를 검색하던 A씨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기억도 희미한 어린 시절, 그러니까 민주화 이전 군사독재 시절에 있었다고 부모님께 전해만 들었던 일이 서울 도심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헬기에서 내린 공수부대원 등 무장 정예 병력 280명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했고, 여의도 일대는 군 장갑차와 경찰 차량, 인파가 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불안해진 시민의 검색 폭증으로 12월 4일 오전 0시 무렵 네이버 카페가 먹통이 되고 네이버·다음 뉴스의 댓글 창이 한때 막히면서 시민의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여기에 ‘불시 검문·체포’ 등 가짜 뉴스까지 퍼지면서 새벽 시간 혼란은 극에 달했다.
사태의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령 선포였다.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23분쯤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대통령실 대다수 참모는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긴급히 호출받은 국무위원들이 개의(開議) 정족수인 11명을 간신히 넘긴 상태인 오후 10시쯤 국무회의 심의가 시작됐다. 일부 장관이 반대했지만, 윤 대통령은 흥분 상태에서 계엄 선포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후 담화에서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계엄군 일부, 창문 깨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
비상계엄은 10·26사건 이튿날인 1979년 10월 27일 신군부가 정권을 잡기 위해 선포해 439일간 시행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한 시간 만에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다. 박 총장은 3일 오후 11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발표했다.
계엄이 선포되자 사정 기관은 물론 각급 부처에 ‘비상 대기’와 ‘긴급 소집령’이 떨어졌다. 서울지방경찰청은 4일 오전 1시부로 산하 31개 경찰서에 ‘을호비상’을 발령했다. 을호비상은 경찰 비상근무 중 두 번째로 높은 단계다. 군경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사이, 여의도에선 계엄을 해제하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3일 오후 11시쯤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공지했다.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국회 표결을 위해서였다. 계엄 해제를 요구하기 위한 요건인 ‘재적 의원 과반 찬성’을 위해선 최소 151명의 국회의원이 시급하게 본회의장에 모여야 했다.
비슷한 시각, 국회 본청 앞에서는 의원·보좌진과 계엄군 간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국회에 추가로 도착한 계엄군이 국회를 에워싸고 각 출입문을 통해 내부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국회 관계자 등이 극렬히 저항했다.
저항이 거세자 일부 계엄군은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창문을 깨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계엄군이 본청에 진입하며 국회 안에서 계엄군과 국회 직원 및 보좌진이 대치했다. 국회 당직자와 보좌진이 본청을 지키는 사이 4일 오전 1시 본회의에서는 재적 의원 300명 중 재석 190명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4시 27분쯤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 담화를 통해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만이었다.
한동훈 "윤 대통령 직무정지 필요"
K팝·드라마·방산의 성공으로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난 ‘비상계엄 소동’은 6시간 만에 끝났지만, 여파는 컸다. 스웨덴 총리실 대변인실은 4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12월 3일 밤 동안의 상황 전개를 면밀히 주시해 왔다”며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및 부처 장관의 방한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크리스테르손 총리는 5~7일 방한해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다.
미국 국무부의 이인자인 커트 캠벨 부장관은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심각한 오판(badly misjudged)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에서 계엄법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 깊고 부정적인 울림이 있다”고 언급했다. 일국의 고위 외교 당국자가 동맹국 정상의 결정에 대해 ‘오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주한 일본 대사관은 한국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주의를 당부했고,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이스라엘도 한국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향후 정치·외교의 공백이 만들어낼 혼란이다. 대통령실 주요 참모와 국무위원들이 사의를 표하면서 일시적인 행정부 공백이 불가피해졌고, 여권 분열 가속으로 ‘제2의 분당(分黨)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고, 즉시 수락됐다.
비상계엄 선포의 위법 논란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헌법(제77조)이 비상계엄 요건으로 규정하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을 때는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通告)해야 한다’는 계엄법(제4조)도 지켜지지 않았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는 계엄 포고령 내용은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한 헌법(제77조)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6일 여당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혀 탄핵 정국이 본격화됐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정국이다.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모두 국회를 통과했지만, 각각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과 파면 결정으로 엇갈린 운명을 맞았다.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처리되고 헌재가 이를 송달받으면 윤 대통령의 직무집행이 정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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