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의 바다 스토리 <8>] 바다 위에서 시차 때문에 생긴 해프닝
평생을 살면서 많은 것을 극복하며 살았다. 여러 번 반복하면 익숙해져 쉽게 해냈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몇 번을 넘어지면서 곧잘 타게 됐다. 그렇게 어렵던 수영도 몇 번 반복하면서 가능해졌다. 탁구도 자세를 교정하면서 정상 수준에 올랐다.
수십 번 반복해도 극복되지 않는 하나는 외국 출장을 다닐 때 겪는 ‘시차’다. 런던이나 뉴욕 출장을 가면 보통 일요일에 도착한다. 수요일이 돼야 겨우 밤과 낮에 몸이 익숙해진다. 월요일 회의에 가면 오후 4시만 돼도 잠이 쏟아진다. 우리나라는 오전 3시쯤이기 때문이다. 몸은 한창 자야 할 때라 잠이 오게 된다. 현지 사람은 오후 5시쯤에 자꾸 저녁을 먹자고 한다. 잠이 쏟아질 때라 나는 손사래를 친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오후 8시부터 자면 오전 1시면 잠이 깬다. 그럼, 오전 7시까지 일을 한다. 아무리 누워도 잠이 오지 않으니까. 오히려 일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해 겨우 현지에 생체리듬이 적응한다. 금요일 밤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면 한국에서도 3~4일은 헤매게 된다. 이런 시차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알려준 수단을 이용해 봤다. 비행기에서 술을 마시고 당일 밤잠을 잘 자는 것,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오후 10시까지 깨어 있기 등 별의별 수단을 동원해도 쉽지 않았다. 이제는 아예 시차 적응을 포기했다.
이렇듯 내 몸의 시차 적응이 느린 것은 배에서 느린 시차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 서부까지 배로는 15일이 걸린다. 시차 10시간을 서서히 줄여나간다. 하루에 30분, 혹은 1시간씩 시차를 줄이면 현지 시각에 맞출 수 있다. 비행기를 타면 10시간의 비행 뒤 바로 시차가 10시간이 나지만, 항해할 때는 경도 15도를 이동할 때마다 1시간씩 변한다. 이렇게 시차를 맞춘다. 하루에 30분 혹은 1시간의 시차 적응은 식은 죽 먹기다. 이런 생활을 10년을 했으니, 생체리듬이 아주 느리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 갑자기 10시간의 시차에 몸이 적응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배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때는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삼등항해사일 때 나는 밤잠이 많아 너무 힘들었다. 오후 10시가 되면 잠이 와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갈 때는 오후 8시에 시간을 30분씩 앞당긴다. 그럼 8시가 8시 30분이 된다. 당직 시간 4시간이 3시간 30분으로 주는 셈이다. 졸음도 잘 견딜 수 있고, 당직 시간이 줄어 기분이 좋았다. 매일 밤 짧은 당직이 재미있었다.반면 미국 서부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너무 힘든 야간 당직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잠은 쏟아지는데, 30분 더 늘어난 4시간 30분 당직을 서야 했기 때문이다.
선박에서 시간 변경은 삼등항해사가 담당한다. 삼등항해사는 시간 변경을 발표하고 선교에 있는 ‘마스트 시계’의 시간을 바꾼다. 그러나 개인 시계는 선원이 알아서 수정해야 한다. 한 번은 오전 8시에 당직 교대를 하러 갔는데, 당직사관이 웃으면서 아직 7시인데 교대하겠냐고 했다. 아차 싶었다. 전날 1시간 늦춰진 것을 내 개인 시계에 반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닙니다”라고 다시 방으로 내려와 1시간을 더 있다가 당직 교대를 섰다.
선박에는 식사 교대라는 게 있다. 오후 7시 일등항해사의 식사를 위해 삼등항해사가 대신 자리를 맡아 주는 것이다. 그럼, 오후 7시부터 7시 30분까지 식사 당직을 선다. 이후 삼등항해사는 30분을 쉬다가 자기 당직 시간인 오후 8시에 선교에 올라간다. 30분 시간을 당기는 날이 문제다. 삼등항해사는 죽을 맛이다. 오후 7시에 식사 교대를 서면 30분 뒤 바로 현지시각으로 8시가 돼 연달아 당직을 서야 하기 때문이다.
선원이 아니었다면 이런 시차는 그냥 극복하기 어려운 생체리듬 현상으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원 생활을 하며 겪은 시차로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겼다. 이를 칼럼으로도 소개할 수 있느니 정말 고마운 선원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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