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부터 PG사까지 청년 노린 전세사기?

김동인 기자 2024. 12. 16.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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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수백억 원대 전세사기 의심 사건이 발생했다. 유명 부동산 유튜버부터 미지급 사태를 일으킨 PG사까지 얽혔다. 피해자는 대부분 1990년대생 청년이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한 B 다중주택으로 올라가는 길. ⓒ시사IN 조남진

서울시 동작구와 영등포구 일대에서 조직적인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유명 부동산 유튜버부터 780억원대 P2P 미정산 사태를 일으킨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까지 얽혀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 건물은 20여 채, 피해 보증금액은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 피해자들 대부분은 1990년대에 태어난 사회 초년생이다. 〈시사IN〉은 피해 건물 중 한 채인 ‘A 다중주택’의 사례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어느 날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2023년 1월, 당시 스물여섯 살이던 장지원씨(가명)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일대에서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장씨가 방문한 G 공인중개사사무소는 “우리가 전담해서 임차인을 받고 있는 건물이 있다”라며 A 다중주택을 소개했다. 아직 입주민을 받지 않은, 이 지역에서 찾기 쉽지 않은 신축 건물이었다. 중개받은 집의 크기는 20㎡ 남짓(약 6평)으로 넓은 평수는 아니었지만 이전에 살던 곳에 비해 쾌적해 보였다.

집을 소개하며 G 공인중개사사무소는 장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임대인이 법인이라서 안전하다.” 당시는 각종 전세사기 사건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던 때였다. 다세대주택 수백 채를 보유한 악성 임대인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다수 발생했다는 뉴스를 장씨도 들었다. 하지만 강남 지역과 가까운 동작구라는 점, 역까지 걸어서 3분이면 닿을 정도로 위치가 좋다는 점, 그리고 임대인이 이 집을 직접 지은 건설사라는 점 때문에 “전세사기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별다른 의심 없이 임대보증금 1억2000만원, 월세 35만원에 반전세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G 공인중개사사무소 김 아무개 부장이 임차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A 다중주택의 가치를 90억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같은 시기 A 다중주택을 알아보던 임차인은 장씨만이 아니었다. 2023년 1월부터 8월까지 건물 내 총 32개실에 임차인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전세·반전세·월세 등 계약 조건은 각자 달랐지만, 다수 임차인은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법인이라서 안전하다는 설명을 들었고, (대부분) 1억원이 넘는 임대보증금을 내며 입주했다.” 그렇게 모인 임차인들의 보증금 합계는 건물 전체 42억원이 넘었다. 이 돈은 모두 당시 임대인이던 ‘P 종합건설’에 입금됐다.

당초 이 건물에는 46억원이 넘는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G 중개사사무소는 임차인들에게 “이 집의 가치는 90억원이 넘는다. 임차보증금을 받으면 임대인인 P 종합건설이 근저당 설정되어 있는 대출을 갚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을 믿은 임차인들은 ‘만에 하나’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경매 낙찰액으로 보증금 상환이 가능할 테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9월, 그 ‘만에 하나’라고 생각했던 일이 터져버렸다. 경매 물건 확인을 위해 법원 조사관이 방문하면서 임차인들은 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됐다. 당혹스러운 소식은 하나 더 있었다. 임대인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P 종합건설이라는 법인의 주인이 바뀌었다. 원래 P 종합건설은 동작구 일대에서 건설 사업을 하던 이 아무개 부부(부부 모두 이씨)가 운영했다. 그러나 이 건물에 임차인이 대부분 들어찬 2023년 6월, 이씨 부부는 ‘루멘그룹’을 이끌던 김인환씨에게 법인을 넘겼다.

이 김인환이라는 인물은 올해 8월, 780억원대 P2P 대출 상환 지연 사태(이하 루멘 사태)를 일으킨 PG사 루멘페이먼츠의 대표이기도 했다. 김씨는 도주 끝에 붙잡혀 현재 구속기소된 상태다. A 다중주택이 경매에 넘어간 것도, 당시 루멘 사태로 인해 채권자들에게 대규모 손실이 초래되었기 때문이었다(〈시사IN〉 제884호 ‘‘해피머니 문화상품권’이 휴지 조각 된 사연’ 참조).

사회 초년생인 임차인들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일이었다. 이미 구속된 김인환씨에게 사정을 물을 방법도 없었고, 임대인(P 종합건설) 측은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며 책임을 피해갔다. 당장 눈앞에 닥친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 했다. 등기를 일일이 확인하고 각종 부동산 제도를 파악한 뒤에야 상황의 심각성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전체가 거대한 ‘깡통 주택’이었던 것이다.

임대차계약 시 임대인과 중개사무소 측이 약속한 ‘근저당 해결’은 애초 이뤄지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등기상 근저당권은 43억원으로 겨우 3억원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여기에 보증금 총액 42억원을 합치면 모두 85억원이다. 만약 계약 당시 G 공인중개사사무소가 말한 것처럼 건물의 가치가 90억원이 넘는다면, 아슬아슬하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원 경매계에서 책정한 이 건물의 감정평가액은 57억원에 불과했다. 유찰 없이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임차인들의 보증금보다 근저당권이 설정된 43억원을 우선 상환해야 한다. 남는 돈으로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난망한 상황이다.

■ 구독자 58만 유튜버의 중개 조직

임차인들은 A 다중주택을 소개받는 과정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건물 가치가 90억원”이라던 호언장담부터 “임대인이 법인이라 안전하다”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으로 10억~15억원을 감액 등기할 것이다” “채무비율은 40% 중후반으로 예상된다” 같은 설명도 결과적으로 모두 틀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G 공인중개사사무소가 임대차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도 위법이 존재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임차인들은 이 과정에서 대형 유튜버를 필두로 한 불법 중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TV러셀’이라는 부동산 유튜브 채널이 있다. 구독자 수 약 58만명으로 부동산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황 아무개씨는 여타 유명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전세사기 당하지 않는 법’을 설명하기도 했고, 경기도평생학습포털에서 ‘집 보증금 안전하게 지키는 법’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런 황씨가 바로 A 다중주택을 중개한 G 공인중개사사무소의 대표 공인중개사였다.

서울 동작구 상도3동에 위치한 A 다중주택의 모습. 32가구가 임차해 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임차인들이 서명한 임대차계약서에는 TV러셀 황 아무개씨의 직인이 찍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임차인들은 황씨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임차인 대부분은 G 공인중개사사무소 소속 김 아무개 부장을 통해 임대 물건을 소개받았고, 대출해주는 은행(우리은행 ○○지점)도 김 부장이 알선했으며, 실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에도 김 부장이 계약을 진행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확인 결과, 김 부장은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보조원에 불과했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중개보조원은 중개 현장 안내와 사무 보조만 맡을 수 있다. 공인중개사 없이 물건을 설명하거나 계약을 진행하는 일은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대다수 임차인들은 김 부장을 비롯한 중개보조원으로부터 매물을 소개받았고, 가격에 대한 고지도 이들로부터 받았으며, 이들이 계약을 주도했다고 말한다.

당사자인 김 아무개 부장은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시사IN〉과 만난 김 부장은 “(A 다중주택 일대는) 재개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건물의 가치는 90억원이 넘는 게 맞다. 나는 (P 종합건설이 지명한) 임대관리인 자격으로 집을 소개한 것뿐이다. 러셀 대표(황 아무개)와 같이 중개 나갔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에도 러셀 대표가 사무실에 함께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차인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카카오톡으로 임대 매물의 상세한 안내를 한 것도 김 부장이었고, 계약서를 쓸 때에도 G 공인중개사사무소 옆 건물에 위치한 별도 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입회 없이 김 부장과 단둘이 도장을 찍었다는 것이다. 〈시사IN〉은 추가 사실확인을 위해 TV러셀을 운영하는 황 아무개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황씨는 “경찰 조사가 예정되어 있다. (11월26일 현재) 아직 일정은 잡히지 않았으나, 경찰 조사를 받고 난 뒤에 입장을 밝히겠다. 전세사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G 공인중개사사무소 측 설명에 따르면, A 다중주택 계약 이후인 2023년 여름, 황씨는 ‘유튜브에 집중하기 위해’ G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직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의 가치가 90억원에 달한다는 주장도 사실로 입증되기가 쉽진 않다. 실제 A 다중주택이 위치한 신대방삼거리 일대에는 재개발 및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가 여럿 설립되어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동작구청이 수립한 ‘신대방삼거리 북측 도시개발·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A 다중주택은 이 권역에서 비켜나 있다. 감정평가사의 감정 가격과 차이(33억원)가 나는 것을 ‘미래에 대한 기대수익’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90억원이라는 안내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라는 게 임차인들의 주장이다.

■ 다중주택의 함정

설상가상으로, 이 건물은 ‘위반건축물’일 가능성이 크다. 건축물대장을 확인한 결과, A 다중주택은 근린생활시설과 다중주택이 혼재되어 있었다. 다중주택이란 단독주택의 한 종류로, 학생이나 직장인 등 여러 사람이 장기간 거주하도록 마련된 ‘기숙사형 원룸’을 의미한다. 법적으로 19세대 이하만 거주할 수 있으며, 연면적이 660㎡ 이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다중주택에서는 각 호실마다 취사 시설물을 설치할 수 없고, 공동 주방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방문해본 A 다중주택의 구조는 이와 달랐다. 법적으로 만들게 되어 있는 ‘공동 주방’마저 누군가의 원룸으로 탈바꿈되어 있었고, 각 호실에는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겉보기에는 일반 원룸 건물처럼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건물 전체가 불법 시설물에 가깝다.

건축주가 다중주택을 선호하는 이유는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원룸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가구주택에 비해 다중주택은 주차장 규제가 덜 까다롭다. 그래서 좁은 땅에 최대한 많은 집을 확보할 수 있고, 건물에 근린생활시설 공간을 추가해 전체 호실 수를 늘리는 게 가능하다. A 다중주택 역시 법적으로 규정된 19개 호실을 초과한 32가구가 지하층까지 마련돼 있었다.

B 다중주택에 살고 있는 한 임차인의 방. 취사 시설을 설치할 수 없으나, 실제로는 불법 개조된 상태다. ⓒ시사IN 조남진

애초에 다중주택은 전세 임대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불가능한 주거 유형이라서다. 만약 A 다중주택 건물도 월세로 임차인을 모집했다면,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다 해도 임차보증금 피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한 가지 모순이 존재한다. 중소기업취업청년·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입주 주택이 다중주택이라 하더라도 대출받는 게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다중주택을 지어 불법으로 호실을 최대한 늘려놓은 뒤, 임차인에게 (전세자금대출을 활용한) 전세나 반전세 계약을 유도해 전세보증금을 최대한 확보하는 일이 구조적으로 용이했다.

‘A 다중주택’ 임차인들은 이런 위법적 행태와 제도적 허점에 무방비로 노출돼 피해를 입었다. 또 다른 임차인인 권주연씨(가명)는 “원래 월세를 알아보려고 G 공인중개사사무소를 들렀는데 적극적으로 전세를 권유받았다. 전세보증금 대출도 G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우리은행 어느 지점 어느 직원을 특정해서 찾아가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취재 결과, G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찾아가라고 특정한 우리은행 직원은 2020년부터 2023년 7월까지 해당 지점에서 근무 후 올해 연초에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전세대출의 빈틈’을 노린 사건이기도 하다. 위반건축물로 등록되어 있을 경우에는 애초에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이 불가능하다. A 다중주택에 입주하는 이들이 전세대출을 비교적 용이하게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건축물이 사용승인을 받던 시기에는 ‘공동 주방도 있고, 각 방에 취사 시설이 없는 상태’라서 위법 사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후에 이 건물을 불법 개조한 것이 드러날 경우에는 ‘전세대출을 받아서 전세로 입주하는 다음 임차인’을 구하는 게 어려워진다.

다중주택의 또 다른 문제는, 보증금 미반환 사고 또는 전세사기가 발생했을 때, 임차인 간의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중주택 전세사기·사고는 다가구주택과 마찬가지로 임차인의 확정일자 ‘순위’에 따라 돌려받는 금액이 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세 계약 과정에서도 ‘선순위 임차보증금’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보다 앞선 전세 임차인이 많다면,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순위가 그만큼 뒤로 밀려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순위 보증금(나보다 앞선 임차인의 보증금 총합)이 투명하게 공개되었다면 임차인들이 A 다중주택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임차인들은 계약 과정에서 선순위 임차보증금 총합을 제대로 고지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김 부장은 “신축 건물의 선순위 보증금 합계는 그때그때 약간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순위 근저당이 많이 잡혀 있을수록(임차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건물 담보 대출이 많았을수록) 임차인 간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진다. 다중주택은 다가구주택에 비해 더 많은 세대수 확보가 가능해 이해관계가 걸린 임차인의 수도 그만큼 많다. 전체 임차인이 함께 힘을 모아 사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까지 살펴보았을 때는, 이 사건이 안타깝긴 하지만 특정 주택을 둘러싼 비교적 소규모 전세사기 사건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A 다중주택은 빙산의 일각이다.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건물이 20여 채 더 발견됐다. 모두 동일한 임대인으로부터 발생한 문제였다.

■ 다중주택 20여 채 임차인들의 눈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 정문 앞에는 ‘고구동산’이라 불리는 작은 산이 하나 있다. 한강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향할 때 마주하는 상도터널이 바로 이 고구동산을 뚫는다. 중앙대병원에서 고구동산 방향으로 흑석로11길을 따라 올라가면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마주하게 된다. 2022년 8월, 이 계단과 붙어 있는 200㎡짜리 조그마한 땅에 4층짜리 ‘B 다중주택’이 지어졌다. 차량이 접근할 수 없는 이 땅에 건물을 지어올리고 소유한 이는 앞서 문제가 된 ‘P 종합건설’이었다.

중앙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조선경씨(가명·28)는 병원 인근 H 공인중개사사무소를 통해 이 집을 소개받았다. 중앙대에서 공부해 이 지역에서만 수년간 자취 생활을 한 선경씨가 보기에 근처 ‘빨간 벽돌(다가구)’ 집들과 달리 깨끗하고 아늑해 보였다. 2023년 초, 선경씨는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을 최대한 끌어와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이 집을 계약했다. 23㎡(약 7평)짜리 1.5룸에 불과했지만, 집에 대한 만족도가 이전보다 컸다.

하지만 올해 9월 선경씨가 사는 B 다중주택 역시 상도동 A 다중주택과 마찬가지로 경매에 넘어갔다. 같은 건물에 사는 피해자 다수가 선경씨처럼 중앙대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또는 직원들이었다. 선순위 근저당으로 약 26억원이 걸려 있었는데 경매 과정에서 평가받은 건물의 가치는 29억원에 불과했다. 처음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가 “건물 가치가 100억이 넘는다”라고 장담했던 ‘시가’는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A 다중주택과 B 다중주택은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져 있다. 〈시사IN〉이 확인한 결과, A 다중주택으로부터 반경 3㎞ 이내에 위치한 주택 20동(〈그림 1〉 참조, 나머지는 양천구 등 다른 지역에 위치)이 이번 사태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건물들은 대부분 ‘P 종합건설’ ‘G 주택’ ‘H 종합건설’ 등이 소유하거나 소유했던 곳으로(일부는 이미 경매로 매각), 좁은 땅에 다중주택을 활용해 임차인을 대거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특히 이 가운데 P 종합건설과 H 종합건설은 모두 ‘루멘 사태’로 잘 알려진 루멘그룹의 자회사다(〈그림 2〉 참조).

〈시사IN〉은 피해가 확인되었거나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택의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살펴보았다. 동작구와 영등포구 일대에 위치한 총 20개 건물 가운데 6개 건물의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 딱지가 붙어 있었다. 이미 경매가 완료된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건물에 적게는 10억여 원에서 많게는 40억여 원에 이르기까지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다. 이들 건물 상당수가 올해 8월에서 10월 사이에 경매 절차에 넘어간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마다 경매 게시 시점 이후로, 임차인들이 부랴부랴 임차권 등기를 설정해둔 흔적 역시 등기부등본에 남아 있다. 건물당 최소 20가구 이상 산다고 가정하면, 피해 임차인은 최소 400가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이 지역 전세·반전세 보증금이 1억원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체 피해 보증금 규모 역시 수백억 원에 달한다.

■ 부실 건설사를 인수한 까닭은?

어떻게 이렇게 한꺼번에 부실 다중주택이 늘어났고, 동시에 경매에 넘어가게 된 것일까? 책임 소재를 따지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을 둘로 나누어 각각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첫째는 불법 개조를 통해 대규모 깡통 다중주택을 지어 임차인들의 전세·반전세·월세 보증금을 수취한 문제다. 둘째는 올해 갑자기 모든 주택이 일제히 경매에 넘어가게 된 문제다. 각각의 사안은 책임자가 다르다. 첫 번째 문제는 P 종합건설의 이전 소유주로, 집을 직접 짓고 임차인을 받은 이들이다. 두 번째 문제는 P 종합건설을 인수한 이후 이들 주택을 연쇄적으로 경매에 넘어가게 만든 인물이다.

첫 번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대로 P 종합건설은 원래 ‘이씨 부부’의 회사였다. 이들에겐 △다중주택 규제를 우회해 무리하게 호실을 늘리고 위반건축물로 만든 점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을 약속과 달리 선순위 근저당 해결에 사용하지 않은 점 △이를 통해 무리하게 연달아 건축사업을 확장한 점을 따져 물어야 한다. 이는 이들이 ‘임차인을 기망한 전세사기범’인지, 아니면 그저 사업을 제대로 꾸리지 못한 ‘무능한 경영자’인지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된다.

〈시사IN〉은 이씨 부부 중 실질적으로 법인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남편 이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씨는 “(근저당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상환할 계획이 있었지만, 모두 해결하기 전에 법인을 새로운 양수인(루멘 김인환 대표)에게 넘기게 되었다”라고 설명한다. 돈을 다 갚기 전에 회사를 넘겼다는 얘기다. 그러나 임차보증금으로 곧바로 대출을 갚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씨는 “흑석동에 29세대짜리 다세대 주택을 지었다. 그런데 분양이 안 되었고, 사업상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루멘 김인환 대표가 우리가 가진 땅과 건물이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해 회사 인수를 제안했다. 이 제안에 응하면서 회사를 넘기게 된 것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불법 다중주택 구조 변경’에 대해서는 이씨는 이렇게 말했다. “동작구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게 (다중주택으로 건물 허가를 받고 원룸 빌딩으로 구조 변경을) 한다. 그게 현실이다.”

이씨 부부는 ‘전세사기범’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위기에 처한) 회사를 타인에게 넘긴 경영자’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현재 임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보증금 미반환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 부부의 이런 설명에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문제가 된 여러 건물과 관련해, P 종합건설 외에 또 다른 법인이 있기 때문이다. 13쪽 〈그림 2〉에도 등장하는 ‘G 주택’ 법인이다. 〈시사IN〉이 확인한 결과 이씨 부부의 남편 이씨가 이 업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G 주택 법인이 소유한 다섯 개 건물을 살펴보면, 이 중 두 건물은 다세대주택(미분양)이고, 나머지 세 건물은 다중주택이다. 이 중 두 채는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로 표기되어 있다. 부인 이씨는 이와 별개로 다중주택 두 곳을 개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 이 두 곳도 현재 전세보증금 반환이 되지 않아 임차인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태 책임의 또 다른 축은 P 종합건설을 넘겨받은 루멘 대표 김인환씨다. 지난 8월 루멘 산하 PG사인 루멘페이먼츠가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바람에, 크로스파이낸스라는 회사를 통해 P2P 대출을 내어준 채권자들이 손실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루멘그룹은 P 종합건설 외에도 ‘H 종합건설’이라는 건설사를 하나 더 보유하고 있었다. H 종합건설이 보유한 건물 역시 동작구 일대 다중주택으로, 이곳에서도 대규모 보증금 미반환이 뒤따르고 있다. 이들 주택에 대한 경매는 지난 9월부터 진행되었는데, 이는 루멘페이먼츠의 미지급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앞서 P 종합건설의 원소유주였던 남편 이씨는 김인환씨에 대해 “PG 사업으로 자금을 쉽게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루멘그룹 본사. ⓒ시사IN 박미소

하지만 임차인들은 과연 루멘이 내실 있는 기업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애초에 P 종합건설은 자본잠식이 발생해 인수 대상으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P 종합건설의 2023년 재무상태표에 따르면, 그해 자산은 약 383억원, 부채는 약 397억원을 기록해 자본총계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다. 남편 이씨는 “자본잠식은 아니다. 다세대주택을 분양하지 못했을 뿐이고, 시장이 침체됐을 뿐이다”라며 부실기업을 일부러 떠넘긴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임차인들은 애초에 계획적으로 이 법인을 김인환이라는 인물이 부정한 목적으로 떠안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 다중주택 임차인 20명이 사기 혐의로 고소한 고소장에도 “(이 사건은) 임대차계약 승계형 전세사기다. 김인환이 처음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고의가 있었음이 명백하다”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김인환이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부실이 이미 많이 쌓인, 임차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할 것이 예정된’ 건설사를 떠안은 이른바 ‘바지 임대인’에 불과한 것일까? 현재 김인환씨는 구속된 상태라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그가 정상적인 사업가가 아니라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폐쇄된 루멘그룹 홈페이지에 남아 있던 보도자료 사진이 그 증거다. 루멘그룹은 ‘글로벌 핀테크 기업 도약’ ‘동남아시아 투자’ ‘루멘그룹 200여 개 특허 보유’ 등의 보도자료에 김씨가 포함된 사진을 첨부해 놓았다. 그러나 이들 사진에 등장하는 김씨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배경과 인물에 비친 빛의 방향이 서로 달라, 사진이 합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임차인들은 P 종합건설 대표가 김인환씨로 바뀐 후, 건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 임차인은 “올해 1월부터 건물 전체 수도세가 밀렸고, 공용 전기 등 기본적인 관리비가 납부되지 않았던 것이 나중에 확인되었다. 건물을 애초부터 제대로 관리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 폐허가 된 집에 남은 임차인들

11월7일 밤, 중앙대학교 한 강의실에 서로 다른 건물에 살고 있는 피해 임차인 40여 명이 모였다.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1990년대생이었다. 임차인들끼리 각자의 사정과 정보를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겪은 불합리한 경험, 연락이 닿지 않는 임대인(법인), 그리고 각자 건물에 달린 선순위 근저당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한 다중주택 임차인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꺼냈다. “혹시 정화조가 어디에 있나요?”

임대인 법인이 사실상 회사 기능을 상실하면서 건물 관리는 오롯이 거주 중인 임차인들의 몫이 되었다. 서로 존재를 모르고 살던 임차인들은 다중주택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 계단 청소업체와 계약하는 방법, 공용 전기를 납부하는 법, 정화조 청소업체를 부르는 법까지 알음알음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용 전기료 체납 규모에 놀라고, 인터넷 회선이 끊기는 경험까지 뒤따랐다.

한 피해 주택 공용 우편함의 모습. 임대인에게 보내는 각종 고지서와 우편물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시사IN 조남진

이날 현장에서 A 다중주택 임차인들은 B 다중주택 임차인들에게 정화조 위치를 찾는 법을 가르쳐주고, C 다중주택 임차인들은 인터넷 회선 비용 처리 노하우를 알려줬다. 현장에 모인 임차인 가운데 절반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생애 첫 임대차계약이었다. 모든 참석자가 정책자금으로 이뤄진 전세자금 대출(중소기업취업청년, 버팀목)을 받은 반면, 이 중 단 한 명도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는  가입해 있지 않았다. 모두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대상이 아닌) 다중주택 임차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임차인이 살고 있는 각 건물의 근저당 규모를 고려했을 때, 모든 임차인이 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모두 돌려받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 임차인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은 ‘수많은 건물에 걸려 있는 이해관계에 대한 철저한 수사’다. 일부 임차인의 법률대리를 하고 있는 이희우 변호사(법률사무소 중경)는 “(다가구 피해자가 많았던) 수원 전세사기 사건의 경우 특별팀을 꾸릴 만큼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현재 각 개별 고소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동작경찰서에서는 소수 인원(2명)만 배정한 상태다. 지역에 따라, 관할 수사기관에 따라 전세사기 사건을 대하는 적극성이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11월20일, 피해 임차인들이 모인 단톡방에는 이날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이 확정된 180억원 규모 부산 전세사기 사건에 대한 판결문 내용이 공유되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 판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군가에게 맞아 생긴 상처가 아무는 데는 기껏해야 몇 개월이지만, 사기 피해가 회복되는 데는 최악의 경우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중략) 사기는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를 외부에 드러내어 타인으로부터 고통을 이해받거나 위로받는 것마저 어렵게 만든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계속 탓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다 일상생활마저 평소처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피해자가 무너짐에 따라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 역시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결국 사기는 피해자의 자장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한 임차인은 〈시사IN〉에 이렇게 말했다. “머리로는 전세보증금을 모두 못 돌려받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소액 변제금이라도 나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슴이 먹먹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기분이 좋다가도 우울해지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도) 한숨이 나온다.” 대법원이 지적한 것처럼, 피해의 자장에서 겪는 일상은 늘 불안전하다. 부산 전세사기 사건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예상되는 이번 사건은, 〈시사IN〉이 파악한 것보다 더 많은 피해자와 이해관계가 상존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충분한 인력을 통한 수사가 절실한 상황이다. 〈시사IN〉과 만난 또 다른 임차인은 이번 사건을 대하는 임차인들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 전해주었다. “돈을 못 돌려받더라도, 잘못한 사람들은 벌 받게 하고, 바뀔 수 있는 부분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해 여기까지 왔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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