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1위’ 미국은 ‘엎치락뒤치락’···한국은 24년째 삼성 독주[박상영의 기업본색]
※대한민국보다 대한민국 기업이 더 유명한 세상입니다. 어느새 수 십조원을 굴리고 수 만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밖에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상영의 ‘기업본색’은 기업의 딱딱한 보도자료 속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공시자료의 수많은 숫자 안에 가려진 진실을 추적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인공지능(AI) 산업의 부상으로 올해 미국 시가총액 1위 자리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6월 한 달 동안에만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엔비디아 등 3곳이 시총 1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했다. 24년째 삼성전자가 독주하고 있는 한국 증시와 대조적이다.
MS는 올 1월 12일 종가 기준으로 애플을 제치고 시총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동안 굳건히 시총 1위를 지켰던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에 자리를 내준 이유는 스마트폰 수요 둔화와 AI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 때문이다.
MS는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 분야에 발 빠르게 투자했다. MS는 자사 PC 운영체제(OS) 윈도에 버튼 하나로 AI 비서 ‘코파일럿’을 불러올 수 있는 기능도 탑재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시장을 독점했던 MS는 PC 시대의 왕좌를 차지했지만, 2010년대 스마트폰으로의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서 애플에 뒤처져왔다.
그러나 ‘MS의 귀환’도 5개월 만에 끝났다. 지난 6월13일 종가 기준, 애플이 약 5개월 만에 시총 1위를 되찾았다. 음성 비서 ‘시리’(Siri)에 GPT를 결합하는 신규 서비스가 호평을 받은 덕분에 애플 주가는 급상승했다.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6월18일에는 미국 반도체 설계기업 엔비디아가 애플을 제치고 처음으로 시총 1위에 올라섰다. 엔비디아가 만드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가 AI 서비스를 펼치는 데 가장 적합한 덕분이었다. 6월 한 달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가 모두 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한 번씩 시총 1위를 차지한 셈이다.
미국 시총 상위 기업은 산업의 변화를 반영한다. 특히 시총 1위 자리는 산업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 통신인프라 회사인 AT&T와 자동차 제조업 기업인 GM이 시총 1위 자리를 양분했다면, 1970년대 컴퓨터의 등장으로 IBM의 장기집권이 시작됐다. 1990년대에는 산업의 주도권이 컴퓨터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바뀌면서 MS가 시총 1위에 등극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닷컴 버블과 함께 미국에서 ‘셰일 가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에너지 기업 엑손 모빌이 2000년대 시총 1위를 유지해왔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2010년대부터는 애플이 장기간 시총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처럼 미국 증시에서 시시각각 시총 1위 기업이 바뀐 것에 비해, 한국은 삼성전자의 독주가 이어져 왔다. 2000년 이후 24년째(매해 폐장일 기준) 삼성전자는 시총 1위 기업의 자리를 유지했다. 올해에도 삼성전자 시총 규모가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와 상당한 격차가 있는 만큼 이 기록은 25년째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총 10위 기업으로 넓히더라도 변화는 미미한 수준이다. 20년 전인 2004년 폐장 기준, 시총 10위 기업 중 지난해에도 10위권을 유지한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포스코홀딩스 등 3곳이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지난 20년간 시총 상위 10위권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MS가 유일하다.
시총 10위권에 진입한 새로운 기업도 거의 없다. 가장 최근 시총 10위권에 새로 진입한 기업은 2022년 LG에너지솔루션이지만, LG화학에서 물적 분할을 통해 신설된 만큼 새로운 기업의 등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하면 2018년에 시총 10위권에 진입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가장 최근 사례다.
시총 상위 기업군에서 변화가 없는 것은 한국경제의 위기로 읽힐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이 회사의 시총 비중은 13%를 웃돌고 있다. 1년 전에 17%를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시총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와 8%포인트 넘는 비중 격차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잃더라도 이를 대체할 만한 기업이나 산업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의 변화는 경쟁자가 있을 때 가속화된다. 미국의 주력 산업이 빠르게 바뀐 것도, MS·애플·엔비디아가 AI라는 새로운 물결에 올라탈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삼성전자의 독주는 한국경제에도, 기업에도 독이 될 수 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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