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범 “나는 콘셉트가 없는 사람…‘내추럴’ 지향한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으로 아빠 역 도전

(시사저널=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류승범이 생애 첫 아빠 역에 도전했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은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엄마가 가족들과 합심해 악당들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이야기다. 드라마 《허쉬》 《슈츠》를 통해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인정받은 김정민 작가가 크리에이터이자 각본가로 참여한 작품이다.

류승범이 연기한 백철희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빠이자 언제나 영수(배두나 분)가 먼저인 로맨티스트다. 매사에 어수룩하고 허술하지만 삶의 전부인 영수와 가족을 건드린다면 무자비한 응징도 망설이지 않는 역할이다. 류승범은 백철희라는 캐릭터에 대해 "실제로 아버지가 돼선지 개인적으로 신선했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10세 연하의 슬로바키아 아내, 4세 된 딸을 두고 있다.

ⓒ쿠팡플레이 제공

9년 만의 인터뷰다. 소감이 어떤가.

"저는 체감을 못 했다. 그간 공식적인 인터뷰는 안 했지만 활동은 틈틈이 해서 개인적으로는 크게 특별한 게 없다."

《가족계획》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본을 받았을 때 캐스팅 명단을 봤다. 백윤식, 배두나의 이름이 적혀 있더라. 제가 데뷔 때부터 굉장히 좋아하는, 사심을 품고 있는 배우들이다. 그분들의 이름을 보고 사실 대본을 넘기기 전부터 끌렸다. 대본을 읽어보니 가족에 관한 얘기더라. 저도 지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부성이나 모성이 다가왔다. '이 인물은 왜 가족을 만들고 싶어 하나' '왜 그에게 가족이 절대적인가' '인간에게 가족을 만드는 게 왜 절대적인 걸까' 하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아시다시피 제가 초보 아빠다. 아빠라는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결혼 후 아빠 역할은 처음이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어찌 보면 결혼 이후 캐릭터의 영역이 확장된 느낌이다. 실제로 아빠가 된 뒤 배우로서 공감할 수 있는 영역도 확장됐다고 본다. 배우로서 플러스 된 느낌이다, 예전에는 아빠 역할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이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때가 된 것 같다. 자연스러운 것 같다. 확장된 것이 배우로서는 좋다."

류승범이라는 배우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연기다. 상대역을 맡은 배두나도 비슷한 유형의 배우다. 두 사람의 호흡은 어땠나.

"데뷔 시기나 활동 시기가 비슷해 사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작품을 함께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장에서의 애티튜드,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내가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다. 작품에 대한 통찰력도 놀라웠다. 대화를 하다 보면 다른 레벨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두나씨가 맡은 역할이 감정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다. 표현하면서 드러내는 건 오히려 쉽다. 근데 두나씨가 드라이하게 천천히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훌륭한 배우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제작발표회에서 "가족들에 대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차 있다"는 말을 했다. 극 중 캐릭터 철희와 실제 모습의 싱크로율은 어느 정도인가.

"아빠라는 포지션으로 봤을 때 이 역할이 궁금했다. 아빠로서 극 중 캐릭터와 실제 저의 공통점도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하는 작품이다. 요즘은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독립도 빨리 한다. 10대 때는 예민할 때라 반항하고 싶고 친구들이 더 중요하다. 그럴 때일수록 기족 구성원이 각자 포지션에서 단합하면 온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 집에 싱글 친구들이 놀러오면 '따뜻하다' '집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저희가 결코 잘해 놓고 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따뜻하다는 말을 듣는 게 결국 가족의 온기인 것 같다."

결혼 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사람이 바뀌니 배우로서도 바뀐다. 사실 저는 한결같은 사람은 아니다. 가정을 가지니 또 변하더라. 거기다가 아이를 가지니 크게 변하더라. 일단 고백하자면 나로부터 벗어났다. '내'가 아닌 '우리'가 됐다. 저는 유달리 저만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그때는 제가 에고이스트(Egoist·이기주의자)인 줄 몰랐다. 그때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답이 없었던 거다. 그 안에서 못 벗어났으니까."

지금은 답을 얻었나.

"물론 지금도 답은 없다. 예전에는 답을 찾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신경 써야 할 게 많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방황할 시간이 없다. 아이가 있는데 어디 처박혀서 정신적 고뇌를 할 수 없지 않나. 그런 시간과 스페이스가 없다. 그래서 안정감이 생기는 것 같다. 사람이 단순해지니까 편안해진다."

득도한 느낌이다(웃음).

"저는 계속 변하는 사람이다.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기도 했고, 또 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사는 환경에서도 지냈다. 자연 속에서 살기도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 모든 변화가 자연스러웠다. 굳이 저를 설명하자면 저는 콘셉트가 없는 사람이다. 내추럴하다.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고, 또 자연스럽게 변할 것이다."

열 살 연하의 슬로바키아 출신 아내와 결혼했다. 현재 어디에 살고 있나.

"슬로바키아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다. 오히려 멀리 사는 게 일할 때 도움이 되더라. 한국에서 3주 촬영을 하고 2주 동안 가족이 있는 곳에 간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리셋이 된다. 시간의 절차가 필요 없다. 비행기가 한참 가기도 하고 아예 다른 환경으로 들어가니까 새로운 환경의 전환이 쉽다. 한국에 갈 때는 (내 일상이 한국에 없으니) 연기라는 미션만 가지고 가니까 쉽게 몰입되더라. 삶과 일이 공간적으로도 분리되어 있어서 좋은 작용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해외에 계속 거주할 생각인가.

"지금은 딸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곳에서의 모든 것이 안정적이다. 지금 좋으니까 그대로 유지하는 중이다. 아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계획을 짜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중이다. 하지만 여지를 두고 싶다.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배우 활동에 대한 계획도 궁금하다.

"여러모로 콘텐츠 제작 상황이 안 좋다고는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 완전히 열려 있는 상태이고, 더불어 다양한 역할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배우로서 좋은 시기를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제 삶이 온전히 배우로서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호기심이 많아서 사적으로도 하고 싶은 걸 많이 했다. 오늘 촬영 끝나면 뭐 하지 하고 작품 하면서도 딴생각을 했다. 한데 지금은 심플하다. 육체도 마음 상태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지금, 좋은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

류승범 하면 패션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좋아하는 스타일은 무엇인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스타일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 화려한 걸 좋아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스타일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옛날 옷들을 계속 입는다. 옷이나 물건을 살 때도 나만의 키워드가 있다. '평생 쓸 수 있나?' '평생 입을 수 있나?' 등을 고려한다."

《무빙》에 같이 출연한 류승룡 배우가 류승범에 대해 "연예인 같다" "신기했다" "강렬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제가 한 10년을 여기 안 살았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을 오며 가며 볼 기회가 적었다. 익숙한 배우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신기하다는 분들이 꽤 있으셨던 것 같다. 모르겠다. 제 생각이 아니니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류승룡 선배님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마지막 촬영 때 시집을 주시더라."

'배우들의 배우'다.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비결은 무엇인가.

"유행을 좇지 않는 것. 저를 좋아한다고 저를 따라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건 제 겉모습만 좋아하는 거다. 나는 누구를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만의 유니크함을 가지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날 좋아한다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 안을 들여다봐주시길 바란다. 누굴 따라 하면 결국 2인자다. 내가 조금 못났더라도 내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