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를 지켜야 한다” 갈림길에 선 중국 경제[특파원리포트]
경제 버팀목 수출, 美·EU 관세 공격에 불확실성 커져
내년 트럼프 취임 시 미·중 갈등 폭발, 대외환경 악화
3천조원 부양책 성과 미지수, 내년 양회까지 지켜봐야
[이코노미스트 1765호(2024.12.16~22)에 게제된 기사입니다.]
[베이징=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중국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 이곳 랜드마크 오피스빌딩인 ‘왕징 소호’는 평일 점심시간에도 인적이 드문 모습이다. 왕징 소호에 입주한 한 한국인 주재원은 “건물은 큰데 지금은 사무실이 절반 가량 비어있는 상태”라며 “임대료가 예전보다 낮아졌는데도 들어오려는 회사들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전했다.
베이징 최대 번화가 싼리툰은 주말에만 반짝 사람들이 몰릴 뿐 평일에는 한산한 분위기를 풍길 때가 적지 않다. 도심 곳곳에서는 임대 문의를 받는 사무실이나 점포를 쉽게 볼 수 있고 리노베이션한다며 아예 문을 닫은 곳들도 적지 않다.
베이징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 중국인은 “임대료를 낮춰도 입주하려는 사람들이 없어 점포를 놀리느니 인테리어를 다시 하거나 개보수 명목으로 재정비하는 곳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십여년간 고속 성장을 이어가던 중국 경제가 저성장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높은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았던 다른 국가와는 달리 중국은 지독한 수요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는 경제성장률 5% 달성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뒤늦게 경기 진작용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5%의 성장률을 지켜야 한다는 ‘바오우’(保五) 특명이 떨어진 것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 디플레이션 심화에 휘청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대까지 두자릿수 성장세였다. 봉쇄 조치 여파가 컸던 2020년(2.2%), 2022년(3.0%)을 제외하면 5% 이하로 내려간 적도 없다. 작년에도 5.2%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정부 목표치(약 5%)를 웃돌았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중국은 지난 3월 열린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함께 열리는 최대 연례 행사)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지난해와 같은 약 5%로 제시했으나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각각 4.8%, 4.9%로 예상했다. 이마저도 최근 부양책이 나온 이후 소폭 상향 조정한 수치다. 경제 회복 노력을 기울여도 5% 달성은 힘들단 이야기다.
중국의 주요 경제 지표를 살펴보면 납득이 간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중국의 소매판매는 전년동기대비 3.5% 증가에 그쳤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크게 불거졌던 지난해에도 연간 소매판매는 전년대비 7.2% 늘었는데 이보다 더 많이 낮아졌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니 물가 또한 저점에 머물고 있다. 올해 1~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불과 0.3% 올랐다.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 소비 심리도 크게 위축된 영향이 크다.
지난달 진행된 중국 최대 쇼핑 시즌인 솽스이(11월 11일, 광군제) 때를 보면 중국 소비 부진을 알 수 있었다. 광군제를 주도했던 중국 대기업 알리바바는 매년 광군제 전야제를 성대하게 치렀지만 올해는 이를 생략했다. 광군제가 끝난 후 매출액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던 알리바바와 징둥닷컴은 2~3년 전부터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씨티그룹은 이번 행사 기간 알리바바의 총거래액(GMV)이 전년동기대비 3~6% 증가한 것으로 추정했다. 매년 10% 이상 성장세를 보이던 추세를 보면 탐탁잖은 수준이다.
중국 겨냥한 트럼프 행정부 출범, 내년이 더 문제
극심한 내수 부진에도 올해 3분기까지 중국 GDP는 전년동기대비 4.8% 성장했다. 이는 수출 증가세가 중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 수출액(달러화 기준)은 올해 3월에 전년동월대비 7.5% 감소했다가 4월 1.5%로 반등한 후 11월(6.7%)까지 8개월째 증가세다.
저가 경쟁력을 무기로 삼은 중국의 공산품들이 해외로 팔려나가면서 제조업체들도 그럭저럭 선방하고 있다. 올해 1~10월 중국 산업생산은 전년동기대비 5.8% 늘었는데 이는 작년 연간 증가폭(4.6%)을 웃도는 수준이다.
중국 제조업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또한 10월과 11월에는 모두 50을 넘어 경기 회복 국면임을 나타냈다. 적어도 제조업 쪽에서는 당장 위기의 그늘이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과 갈등을 지속하면서 대외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이차전지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고 반도체 같은 첨단 제품에 대해선 대(對)중 수출 및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EU 또한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대폭 올린 바 있다.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미·중 갈등은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중국산 제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고 취임 당일 관세 10% 인상을 예고했다.
당분간 미·중 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크지 않다. 최근 만난 한 중국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는 미국 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대외적으로 돌리는데 주력하고 있고 그 대상이 중국”이라며 “당분간 미국과의 관계는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은 첨단 제품 제조에 필요한 갈륨·게르마늄과 드론 핵심 부품의 대미 수출을 제한하고 미국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 대상으로 반독점법 조사에 들어가는 등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주요 수출국 중 하나인 미국의 관세 위협을 막기엔 부족하단 의견이 많다.
“통화정책 큰 효과 없어, 추가 경제 전략 살펴야”
대내·대외 이중고를 겪게 된 중국은 뒤늦게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월말 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중국 경제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며 적극적인 부양책을 지시한 것이 결정적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9월 은행의 지급준비율(RRR)을 0.5%포인트 인하해 이를 통해 시중에 1조위안(약 197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정책금리인 7일물·14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및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도 내렸고 10월엔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부동산 분야에선 ‘화이트리스트’로 꼽히는 프로젝트에 올해 총 4조위안(약 790조원) 대출을 지원키로 했다.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10조위안(약 1974조원) 규모의 재정 투입 정책을 발표했다.
일련의 부양책을 합하면 금액으로만 15조위안(약 2961조원), 3000조원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만큼 지금 중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엄중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만 중국 정부의 대책이 경제 회복으로 이어질진 미지수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소비가 위축된 상태에서 돈을 푸는 정책이 효과를 내기 힘들 것이란 이유다.
이상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경사무소장은 “대출 증가율이 계속 내려가는 상황에서 통화 공급량을 늘린다고 경제 주체들이 이를 다 흡수해 파급력이 발생할지 의문”이라며 “통화정책이 실물 경제에 반영되는 시차를 통상 6개월 정도로 보기 때문에 올해 경제성장률에 온전히 담기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걷히려면 내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기 트럼프 행정부 체제에서 대중 정책 방향이 결정되고 중국도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면서 경제 정책을 세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 정치·경제 전문가인 이철 박사는 “중국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확인하기 전까지 뚜렷한 대응을 내놓기가 애매한 상황”이라며 “중국의 4중전회(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가 열리고 내년 3월 양회를 준비하면서 전략을 수립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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