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 기사에 예산 못 쓴다?…카이스트신문의 십시일반 사연

배한님 기자 2024. 12. 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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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발행된 카이스트신문 호외 1면. /사진=카이스트신문


KAIST(카이스트, 한국과학기술원) 재학생·졸업생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을 규탄하는 학내 움직임을 기록한 학보 발행을 위해 자비 모금을 진행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 카이스트 예산으로 정치적 내용을 담은 기사를 내보내기 곤란하다는 학교 측 입장 때문이다. 카이스트뿐만 아니라 GIST(지스트, 광주과학기술원)·DGIST(디지스트, 대구과학기술원) 등 다른 과학기술원(과기원)과 포항공대(포스텍) 학보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카이스트신문은 지난 9일 학내 시국선언을 담은 특집 '호외' 4000부를 발행했다. 창간 후 첫 지면 호외 발행이다. 총 8매로 발행된 호외에는 카이스트 교수 시국 성명서·카이스트 학부 총학생회 성명문 및 시국선언문·카이스트신문 기자단의 대통령 퇴진 촉구 성명 등이 담겼다. 시국선언 발표 당시의 상황이나, 학내에 붙은 대자보의 모습, 카이스트가 위치한 대전시 내 촛불시위 현장 스케치 등도 다뤘다.

호외는 카이스트신문 예산이 아닌, 전현직 카이스트신문 기자단 58명이 모은 100만원으로 인쇄됐다. 카이스트신문에 배정된 예산을 이미 소진했으며, 과학기술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광혁 카이스트신문 편집장은 "학교 본부에서 호외 발행을 '승인'하는 조건 두 가지를 내걸었다"고 설명했다. 조건은 '본 발행이 학교 본부와 무관하고 신문 내용이 본부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1면에 게재할 것'과 '기자단 사비로 예산을 마련할 것'이다. 이 내용은 호외 1면 상단 '알립니다'에 명시됐다. 정 편집장은 "이번 호외는 반드시 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학교에서 돈을 못 준다면 사비로라도 인쇄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호외를 온라인으로 찍는다면 모르겠지만 종이신문으로 찍게 되면 돈이 필요한데, 학교 예산을 쓰게 될 경우 이 내용이 카이스트 구성원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디"며 "이 경우 학교라는 곳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게 될 수 있어 스스로 돈을 마련하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수님들의 성명도 '교수협회'로 나간 게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카이스트 전현직 기자단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라도 호외를 찍게 된 것은 학내 움직임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아울러 지난 2월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발생한 졸업생 강제 퇴장 사건 당시를 반성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학내 분위기를 기록해야 한다는 카이스트신문 기자단의 뜻도 모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 편집장은 "카이스트신문 이름으로 나가는 신문인데 학교 본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점은 아쉽고 이로 인해 신문이 발행되기까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카이스트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기술원 및 과학기술특성화대학 학보사도 들끓는 학내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움직였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R&D(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스트의 '지스트신문'과 디지스트의 '디지스트신문 DNA'는 총학생회 등 학생들의 성명문 등을 실었고, 학보사 명의의 별도 성명도 발표했다. UNIST(유니스트, 울산과학기술원)와 KENTECH(한국에너지공과대)도 총학생회에서 규탄 선언문을 냈지만, 학보사가 없어 신문으로 남기지는 못했다.

포스텍도 학부 및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계엄 규탄 성명문과 퇴진 요구 시국 선언문이 나왔고, 이를 '포항공대신문' 온라인판에 실었다. 다만, 정치적 중립성 유지를 요구하는 포스텍 학교 본부 측과 학보사 기자단 간 입장 차이로 학보사 명의의 별도 성명문은 내지 못했다. 이재현 전 포항공대신문 편집장은 "이번 문제로 저는 편집장 자리를 내놓은 상태"라며 "이후에도 다른 기자들이 포항공대신문 명의로 성명을 낼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배한님 기자 bhn2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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