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국방의 조건 "정치중립과 비육사"…적임자는? [취재파일]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4. 12. 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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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으로 육군참모총장, 방첩사령관, 수방사령관 등 별 17개가 구속되거나 직무정지됐습니다. 영관급도 줄줄이 검경에 소환되고 있습니다. 군의 정치 중립 역사가 무너져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찍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바라보는 국내외의 시선은 우려 일색입니다. 군이 유례없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김선호 차관이 장관 직무대행으로 수습에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국회 출근 도장 찍기도 역부족입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어제(14일) NSC를 열고 굳건한 안보태세를 주문했습니다. 군의 혼란이 커서 한덕수 대행의 지시가 공허하게 들립니다. 계엄의 직격탄을 맞은 국방부와 군을 추스를 구원투수, 차기 장관을 속히 뽑아야 합니다. 새 국방장관의 기용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차기 국방장관의 조건은 단순하지만 묵직합니다. 여러 현역 장교들은 군 기강을 다잡을 수 있는 리더십과 한미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군사적 노하우, 무엇보다 확고한 정치적 중립을 차기 장관의 조건으로 꼽습니다. 여기에 더해 비육사 출신이면 금상첨화입니다.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주목할만한 두 예비역 장군이 있습니다. 박한기 전 합참의장, 이승도 전 해병대 사령관입니다.

두 장군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어느 캠프에도 들어가지 않은, 정치 중립의 보기 드문 군인입니다. 박한기 전 의장은 자타공인 한미동맹의 최고 전문가이고, 이승도 전 사령관은 연평도 포격전을 승리로 이끈 실전의 장군입니다. 둘 다 육사 출신이 아니고, 후배 장교들의 신망이 두텁습니다. 한덕수 체제가 적어도 차기 국방장관의 본보기로 삼을 법합니다.

연합사령관 276번 만나 동맹 다진 박한기

2019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박한기 합참의장, 에이브람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박한기 전 합참의장은 ROTC 학군사관 출신입니다. 2017년 8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육군 제2작전사령관을, 2018년 10월부터 2020년 9월까지 합참의장을 역임했습니다.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충분히 입증됐습니다. 눈부신 경력에도 동네 아저씨처럼 소박·소탈함이 몸에 밴 겸손한 장군입니다.

군인 노릇하기 힘든 시절, 합참의장을 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은 남북미의 관계가 좋아서 군 훈련을 줄이거나 없애야 했습니다. 군인은 훈련해야 존재하는 조직인지라 군 수뇌들의 고민이 깊었습니다. 특히 한미연합훈련이 대폭 축소되거나 취소돼 미군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박한기 전 의장은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을 일주일에 두어 번, 총 276회 만나며 한미동맹의 틈새를 다졌습니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한미동맹을 보존하는 데 박 전 의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치하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상대해야 하는 우리 정부로서는 박한기 전 의장이 트럼프 1기의 미군과 일을 해봤다는 점을 무겁게 봐야 합니다. 

주변국의 도발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과 북한의 17차례 33발의 탄도미사일 발사,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인근 영공 침범 등에 맞섰습니다. 남북미의 평화 속 도발들이라 하나같이 까다로웠지만 탈없이 다뤘습니다. 러시아 군용기 영공 침범 때는 우리 전투기들의 360발 기총사격을 명령하는 강단을 보여줬습니다. 2년 동안 사건·사고 없이 합참을 운영한 기록도 박 전 의장이 세웠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승리의 장군, 이승도

201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방위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이승도 사령관

2010년 11월 23일, 6·25 이후 남북의 첫 전면적 교전인 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연평도 포격전이 발발했을 때, 대령 이승도는 연평부대장이었습니다. 주민들을 지키면서 북한군을 때리는 고도로 복잡한 실전 앞에 이승도 전 사령관은 놓였던 것입니다.

북한군 방사포탄 수백 발이 연평도 곳곳에 떨어지는 가운데 이승도 전 사령관은 냉정하게 주민 대피와 대응 사격을 지휘했습니다. 북한군의 진지가 똬리를 튼 무도를 초토화시켰습니다. 북한군의 일방적 선제공격에 해병 2명, 민간인 2명의 안타까운 희생을 낳았지만 무도의 북한군 사상자는 수십 명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연평도 포격전은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북한이 많이 아팠던지 2013년 살포한 대남전단에 이승도 전 사령관을 '역적'이라고 표현하며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승도 전 사령관의 트레이드마크는 직을 걸고서라도 정치 바람을 거부하는 기개입니다. 2020년 당정청이 해병대 공격헬기로 한국항공우주의 마린온 개량형을 강요하자 이 전 사령관은 "마린온 개량형이 아닌, 기동성과 생존성이 우수한 진짜 공격헬기를 원한다"고 소신을 외쳤습니다. 자리 잃을 위험에 아랑곳 않고 해병대와 부하의 안전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계엄 명령에 순종한 육군참모총장, 방첩사령관, 수방사령관과 참 다릅니다.

정치 멀리한 비육사 출신


계엄군이 된 국군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한 차기 장관의 최고 덕목은 정치 중립입니다. 박한기 전 합참의장과 이승도 전 사령관의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이 정치 중립입니다. 어떤 정치 캠프에도 가담하지 않음으로써 전역 후에도 정치 중립을 실천했습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대선 캠프에서 그들을 원했지만 박 전 의장과 이 전 사령관은 고사했습니다. 일자리, 돈과 거리가 먼 정치 중립의 길을 걸은 드문 예비역입니다. 후배 장교들이 두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도 그들의 정치 중립입니다.

둘 다 육사 출신이 아니란 것도 강점입니다. 김용현 전 장관이 경호처장 때부터 '국방 상왕'으로 불리며 육사 출신 위주의 인사를 했다는 것은 군에서 정설로 통합니다. 12·3 비상계엄의 주역들도 하나같이 육사 출신입니다. 국방부는 앞으로 육사 출신들과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 학군사관 출신의 박한기 전 의장, 해사 출신의 이승도 전 사령관같은 인물들이라야 육사 출신들과 견제와 균형의 줄타기를 할 수 있습니다.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정치 중립을 몸으로 보여준 박한기 전 의장과 이승도 전 사령관이라면 여야 모두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국방부와 군 주요 직위자들은 "박한기, 이승도 같은 장군은 정치 중립을 실천했으니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데 적격"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는 박한기, 이승도 두 장군을 보며 차기 장관 후보를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장군이 아니더라도 두 장군에 버금가는 정치 중립의 인재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군과 안보를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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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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