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에 부쳐, 새보수의 첫 걸음은 '배신자 프레임 깨기'

박세열 기자 2024. 12.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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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더러운 장난', 배신자 신화는 허구다

배신자 프레임은 허구이자 만들어진 신화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의도로 만들어진 신화다. 지금부터 그 신화를 깨부숴야 한다.

'배신의 정치'의 근원은 '조폭 정치'(좋은 말로 의리 정치)의 수괴로서 '친박계'라는 전근대적 가신 정치를 창시한 박근혜가 2015년 6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해 내놓은 '배신의 정치'란 말에서 유래한다. 이른바 '친박 돌격대'들은 박근혜의 말이 떨어진지 13일만에 유승민을 선출된 원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무소불위 대통령의 시행령 통치를 견제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에 합의해 줬다는 이유로 '위헌'이니 하는 험한 말들이 친박 가신들 사이에서 어지럽게 난무했다. 지금 친윤들의 궤변들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유승민을 끌어내린 '친박 돌격대'들, 지금 박근혜를 감옥에 집어 넣은 윤석열 씨와 친분을 과시해 한 자리 차지한 자들 많다. 어떤 사람은 광역자치단체장까지 꿰찼다. 그들은 '배신자'가 아닌가?

2016년 국회는 박근혜를 탄핵했다.(탄핵이 완성된 건 2017년 3월) 유승민은 새누리당 내 '탄핵 찬성파'들과 '바른정당'의 깃발을 들고 허허벌판에 섰다. 탄핵 후 친박계를 흡수한 자유한국당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민주당이 아니라 보수 표를 갉아먹을 유승민과 바른정당이었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이 더 잔인한 법이다. 그들은 유승민을 위시한 이들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웠다. 주도한 이들은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TK 지역의 토호 정치인들과 망가진 보수 정당을 유지해 권력의 부산물을 놓지 않으려 하는 몇몇 '이익공동체'들이었다.

궁지에 몰린 가짜 보수주의자들이 살기 위해 유승민을 배신자로 몰았다. 앞으로는 고상한 대의를 챙기는 척 하면서 탄핵의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에겐 뒤에서 독이 든 침을 뱉었다. 똑같이 박근혜 탄핵에 앞장선 사람들 중 새로운 주류에 편입된 사람들은 '배신 감별사'들에 의해 면죄부를 받았다.

배신하지 않는 방법은 쉽다. 투항하면 된다. 박근혜 탄핵소추위원이던 '배신자' 권성동(한때 바른정당 소속)이 '친윤계'의 거두로 윤석열 정권에서 원내대표를 두 번이나 한 이유는 이렇게 설명된다. 박근혜로부터 공천장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한때 친박계' 추경호와 윤재옥이 윤석열 정권에서 당내 선출직을 휩쓴 이유도 그렇다. 그들은 '배신자 프레임'을 즐기면서 박근혜 탄핵이 없었다면 생기지도 않았을 윤석열 정권에 TK의 상징성을 팔아 주류로 부상했다.

'강약약강'의 비겁한 무기가 배신자 프레임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들은 배신자가 되지 않는다. 추경호, 윤재옥 같은 낡은 정치인들이 TK 정치판에서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서 '배신의 정치'라는 고약한 독극물이 필요했다. '배신자 프레임'의 기원은 이토록 천박하고 허약한 데서 시작한다. 대통령이 된 박근혜 수사 검사와 술잔을 기울이던 추경호는 지금 윤석열 씨의 내란에 동조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대체 누가 배신자인가.

바른정당을 위한 변호를 하자면 한국 정치사에서 3당이 독자적으로 성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점을 짚고 싶다. 자민련은 제2당과 연합을 했고, 자유선진당은 보수정당에 흡수됐으며, 국민의당은 형체조차 없이 공중분해된 역사가 있다. 바른정당의 실패는 그들이 '배신자 정당'이어서가 아니라, 오랜 기간 독재 통치의 트라우마에 시달린 유권자들의 '양당제 선호'와 (윤석열의 '상상 계엄'이 초래한 거대한 재앙으로 입증된) 제왕적 대통령제가 결합한, 한국인들의 정서 기저에 흐르는 강력한 집단 무의식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 크다.

또한 유승민이 저지른 단 하나의 잘못이 있다면 탄핵 직후 지역구 대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만약 그가 미련없이 대구를 떠나 수도권에 출마해 '내가 박근혜 탄핵에 앞장섰다'고 밝히며 선거에 임했으면 무소속으로라도 살아 남아 지금 보수 정당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뒤늦게 경기도지사에 도전했지만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정치판의 잔인한 속성상 패배가 거듭될수록 '배신자 프레임'은 더 강화되는 법이다. 유승민은 아직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다.

한때 박근혜를 '누나'로 불렀다는 '원조 친박' 윤상현 의원은 '친윤계'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배신자 프레임'의 최대 수혜자인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 반대했다.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며) 그다음에 무소속 가도 다 찍어줬다", "내일, 모레, 1년 후에 국민은 또 달라진다"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 김재섭 의원이 "형, 나 지역에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은데 대한 답변이다. (대화 내용은 윤상현 의원 본인이 재구성한 것이다.)

인천 동구·미추홀구을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두 번이나 당선된 그에게는 선거를 다루는 신묘한 능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2019년도 원내대표 경선에서 동료들의 지지를 못 얻어 중도 하차했고, 지난 7월 23일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서는 민망하게도 고작 3.7%를 얻어 꼴찌를 기록했다. 의리파 윤상현이 배신자 유승민보다 낫다면 윤상현은 왜 당내 경선에서 이런 처참한 성적표만 붙들고 있을까? 그가 '배신자 프레임' 속에서 '셀프 면죄부'를 획득했을진 모르겠으나, 다른 의미에서 그는 '기회주의자'로 낙인 찍혔기 때문일 터다. 아무리 발버둥처도 국민의힘 당원들은 윤상현을 믿지 못한다. 지역구에선 인기가 좋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그릇은 보수 정당 내에서 3.7%다. 탄탄한 지역구를 둔 정몽준 같은 정치인도 7선이나 했지만 서울시장도, 국회의장도 한번 못했다. 평생 눈치나 보던 정치인의 말로다. 앞으로도 무소속으로 많이 당선되시길 바란다.

윤상현류의 '간신 정치'에 지쳐갈 무렵 전해진 '탄핵 찬성' 국민의힘 의원들 이름을 보며, 쉽지 않은 투쟁의 길을 선택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배신자라고 말하는 자들이 바로 배신자다.

시대는 바뀌고 있다. '배신의 정치' 프레임에 이용당하는 TK는 더이상 보수 본류가 아니다. 시민들이 총든 계엄군의 국회 난입을 전 세계에 실시간 생중계하고, K팝 아이돌 응원봉 들고 탄핵 촉구 시위에 나서는 시대에 50년 전 박정희 정서를 붙들고 야비한 프레임을 생성하는 자들이 TK 정치를 망치고 있다. 이제 보수 정당 재건은 수도권에서 시작해야 한다. 배신자 프레임이라는 낡은 유령과 TK 정치라는 후진적 지역구도를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보수 세력을 위해서라도 이번 탄핵이 그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유승민, 한동훈은 이제 정치를 시작하면 된다. 민심의 바다는 수도권이다. 특히 73년생 서울 압구정 샌님 한동훈이 박근혜에 머리를 조아리고 대구 서문시장을 찾고, 부산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봤다며 구애하는 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유승민 역시 마찬가지다. TK가 보수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구가 '보수의 본류'라는 생각에 갖혀있다면 확장성을 스스로 옭아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입증된 바, 유권자 지형은 이미 변하고 있다. 호남과는 다르다. 호남이 여전히 민주당의 지주 역할을 하는 건 박근혜, 윤석열 같은 '혼군'이 여전히 실존하는 시대가 끝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에서 광주의 민주적 상징성을 오롯이 인정하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그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호남의 외곬 정서는 자연스레 무너지게 돼 있다.

일부 기회주의자들의 추악한 의도로 만들어진 더러운 프레임은 깨져야 마땅하다. 그게 탄핵을 맞이하는 보수주의자에게 2025년의 첫 걸음이 되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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