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입력하면 로봇이 움직이며 캔버스에 작품을 펼친다
16일부터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특별 전시
“지금은 잠시 쉬는 시간이에요. 보세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지 않나요?”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 트라이베카의 스테파니 김 갤러리에서 만난 폴란드계 미국 현대 미술가 아그네츠카 필라트는 갤러리 한쪽에서 마치 진짜 개처럼 다리를 접고 앉아 있는 노란색 로봇을 보면서 말했다. 이 로봇개 이름은 ‘바시아(Basia)’로 필라트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협업 작가다. 필라트는 자비로 20달러(약 2억8000만원)를 들여 현대차그룹 자회사인 미국 로봇공학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에서 개발한 4족 보행 로봇을 구입해 바시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로봇 개와 함께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필라트가 처음이다.
197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필라트는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샌프란시스코의 사립 미술대인 ‘아카데미 오브 아트 대학’에서 일러스트를 배웠다. 이후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필라트는 기술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람뿐 아니라 기계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다 스페이스 X, 웨이모, 오토데스크 등과 같은 글로벌 기술 기업의 입주 작가로 활동했다. 그러던 그가 로봇 개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보스턴다이내믹스 입주 작가가 되고 나서다. 처음엔 ‘스팟’이라는 이름의 로봇개의 그림을 그리다 로봇 개를 훈련해 함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필라트는 “초상화라는 것은 사회의 권력을 반영하는 것인데 기계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로봇이 새로운 유명인, 새로운 지배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필라트와 바시아의 작품 활동은 설치 미술에 가깝다. 필라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오일 안료로 스틱을 만들어 바시아의 손에 쥐여준다. 이 스틱은 두꺼운 크레용과 비슷해서 굵고 풍부한 선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필라트는 “어린아이가 그림을 처음 배울 때 연필이나 분필 등 단순하지만 표현력이 뛰어난 도구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바시아는 필라트가 코딩을 해 입력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기계이다 보니 근육이 섬세한 사람과는 달리 팔이나 다리의 움직임에서 물리적인 한계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필라트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과 반응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바시아에게 캔버스가 아니라 유리 벽면에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스틱이 아닌 붓 등으로 칠하게 하는 등 변수를 둘 때 로봇은 스스로 그에 대응해 자율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필라트는 바시아를 ‘제자’라고 부르며 “바시아가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과정 자체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바시아의 작품 활동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다양하다. 사람이 그림을 그릴 때는 관객들이 흘깃 쳐다보지만, 바시아가 그림을 그리면 걸어가던 사람들도 멈춰 서서 주의를 기울인다. 인간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기계의 한계에 대한 질문과 불안감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필라트는 “바시아를 사용한 내 작업이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준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 작업이 생각을 자극하고 예술적 경계를 넓히는 데 중요하다는 점에서 어떤 비판도 영광의 훈장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활동하는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도 전시를 열고 있다. 필라트와 바시아는 지난해 4월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올해 5월엔 보스턴미술관에서 그림을 그리는 설치 예술을 선보였다. 2021년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 경매에서 바시아가 그런 그림이 4만 달러(약 57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세계적인 테크 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한 억만장자 유리 밀너, 부동산 개발업자 래릴 실버스타인 등이 필라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그에 대해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와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가장 선호하는 예술가”라고 했다. 필라트는 오는 16일부터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6개월 동안 바시아와 서울의 스카이라인과 문화적 랜드마크를 재해석한 작품을 그리는 특별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 기획을 맡은 김승민 큐레이터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하이브리드 시대의 세계를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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