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얼어붙은 광화문...전광훈 “목숨 걸고 싸우겠다” 전면전 선포
尹 12일 담화 영향 탓? 부정선거 의혹 집중 띄운 광화문 집회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이건 무효입니다, 무효."
서울 종로구 기온이 1도까지 내려간 14일 오후 5시경. 불과 1분 전까지 광화문을 달구던 분위기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자유통일당 상임고문)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알리면서다.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 의장인 전 목사는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부정했다. 그리고는 "이건 시작일 뿐"이라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싸늘해진 공기를 의식해서인지 "대한민국의 헌법질서가 회복되는 그날까지 목숨 걸고 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냉기는 쉽게 달아오르지 못했다. 시민들은 이날 오후 12시30분부터 "탄핵 반대"를 외치며 윤 대통령에게 힘을 보탠 터였다.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오후 4시경에는 "탄핵 무효"를 외치는 함성이 광화문을 흔들었다. "우리가 이겼다"고 전 목사는 힘을 더하기도 했다. 흥분은 이들의 예상이 빗나가자마자 금세 가라앉았다. 연단과 가까운 곳에 서 있던 60대 남성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다른 시민들 역시 어떠한 반응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정지된 화면?" 움직이지 못한 시민들
시민들은 망연자실함을 숨기지 않았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온 회계사 문영식씨(가명·55)는 "아쉽고 속상하다"며 "대통령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려고 했던 것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충청북도 천안시에 사는 남숙희씨(가명·62) 역시 "비상계엄은 당연한 대통령의 권한"이라면서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함께 집회에 온 30대 부부는 태극기를 흔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날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대통령 불법탄핵 저지를 위한 광화문 국민혁명대회'에는 젊은 층도 상당했다. 전 목사가 연단에 등장한 오후 3시10분경부터 내내 앞자리를 지킨 10대와 20대도 있다. 자매로 보이는 두 여학생은 탄핵안 가결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 전 목사의 연설에 호응했다. 태극기도 연신 흔들었다. 하지만 오후 5시 이후부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경기도 평택시에서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김상희씨(가명·20)도 그 중 하나다. 김씨는 10대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하는 여의도 집회에도 다녀온 것도 그래서라고 한다. 김씨는 "평소 야권의 예산 삭감, 방탄 등 행태를 보며 분노를 갖고 있었다"며 "그런 와중 대통령의 담화문을 다 봤고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어 나오게 됐다"고 했다.
다만 일주일 전에는 집회에 나오지 않았다. 당시 국민의힘 당론은 '탄핵 반대'였다. "이번에는 탄핵 가결을 예상하고 왔다"는 김씨는, 그러면서도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꿈은 검사라고 한다.
국회의 탄핵 가결에 따라 윤 대통령의 직무는 즉각 정지됐다. 전 목사가 전면전을 선포했지만, 이로부터 10분도 채 되지 않아 시민들은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오후 5시10분경, 무대가 설치된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부터 시청역 방면까지 약 300m 길이의 양 차선에만 시민들이 채워졌다. 이후부터 의자 곳곳은 비어 있다.
7일 만에 더 많아진 '태극기'와 '피켓'
이는 일주일 전과 선명하게 대비됐다. 지난 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는 "대한민국 만세! 우리가 이겼습니다"라는 외침이 들끓었다. 윤 대통령의 첫 탄핵안이 부결된 직후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별검사(특검)법'도 국회 문턱을 못 넘게 됐을 때 이곳은 축제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전 목사는 당시 김 여사를 향해 "밤잠을 편하게 주무시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회 이전부터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정치권은 윤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안이 가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주일 사이 여러 증언이 나오면서 12·3 비상계엄의 불법성이 더욱 짙어졌기 때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 수위도 윤 대통령에게 불리했다.
이 때문인지 14일 모인 인파는 전보다 대폭 늘었다. 청계광장교차로에 집결한 시민들은 주최 측 추산 100만 명(경찰 측 추산 4만 명). 주최 측이 30만 명으로 추산한 전주 대비 세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실제로 5호선 광화문역에서 대한문 인근 시청역 1번 출구까지, 양방향 차선은 시민들로 가득했다. 한 차선에만 시민들이 운집한 일주일 전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 집회 초반부터 도로에 마련된 의자도 가득 차기 시작했다. 코리아나호텔 앞 인도에도 좌석이 마련됐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2층, 그리고 길 건너 맞은편 빌딩 등에서도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든 시민들이 보였다. 당원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들은 시민들에게 헌금을 유도했다. 집회 현장 인근에 있는 한 카페에서도 같은 장면이 목격됐다.
'이재명 구속' '주사파 척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 직전까지 집회 분위기는 고조돼 있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도 공격 대상이 됐다. 지난 4월 제22대 국회의원총선거를 승리로 이끈 당대표를, 전광훈 목사는 '종북 세력'이라고 지목해 왔다.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이재명"이라는 시민들의 답이 돌아왔다. 현장에서는 "탄핵 반대, 이재명 구속"라는 구호가 반복됐다. 국민의힘을 향해서인 듯 "윤 대통령의 탄핵을 막아내라"고도 했다.
이 대표에 대한 반감은 쉽게 느껴진다. 서울 구로구에서 온 고등학생, 차수혁(가명·18)군은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인 집회 초반부터 '이재명 구속'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차군은 "나라가 거짓 선동을 하는 이재명에게 넘어가려 한다는 생각에서 나왔다"고 했다. 일주일 전에는 기말시험 때문에 집회에 못 왔다고 한다.
"직업군인이 꿈"이라는 그는 "계엄 자체는 부정적으로 보지만 (야당의 탄핵 남발 등) 이유가 없지는 않아 보인다"고 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남성은 '주사파 척결'이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흔들어 보였다.
"22대 총선 부정선거...가짜 의원들 사퇴하라"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가 영향을 끼친 것일까. 혹은 보수 단체의 주장을 윤 대통령이 담화로 낸 것일까. 이날 광화문에는 '부정선거 의혹'이 다시금 나왔다. 보수 단체가 과거부터 주장해 온 문제다.
집회가 시작하자마자 한 당원은 시민들에게 "부정선거 의혹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한 언론사가 발행한 종이 신문도 나눠줬다. 1면에는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부정선거로 당선된 가짜 의원들은 사퇴하라"고 압박하는 사진이 실려 있다.
이와 관련한 영상도 현장에서 재생됐다. 일부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의 사전투표 조작 의혹 등이 담긴 장면이다. 시민들은 30여분 간 이어지는 영상을 관심 있게 들여다봤다. 연단에 선 이들도 이에 힘을 보탰다. 장학일 목사는 "부정선거가 맞다"라거나 국회 탄핵, 국회 해산 등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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