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0만 ‘촛불’의 힘은 강했다…환희의 국회 “민주주의가 이겼다”
《다시 만난 세계》·《그대에게》 열창도…“행복해서 눈물난다”
MZ세대, ‘집회’를 ‘축제’로…선결제 문화·응원봉·K팝 등장
(시사저널=정윤경·이태준 기자)
국가가 가장 어두울 때, 자신이 가진 가장 밝은 것을 꺼내든 국민이 결국 승리했다.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그날 밤 계엄군이 들이닥쳤던 국회 앞은 열흘 만에 기쁨과 환희의 장으로 변했다. 이제 시민들은 '서울의 밤'이 아닌 '서울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14일 오후 5시경,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200만 명(주최 측 추산·경찰 비공식 추산 20만 명)의 시민들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곳곳에선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일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역사적 순간을 남기고 싶다"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와 고(故)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흘러나오자 일제히 기립해 열창했다. 이날 국회 앞은 '축제의 장'과 다름없었다.
"민주주의가 이겼습니다". 탄핵안 가결 직후 시민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결과 발표 직후 눈물을 흘렸던 전아무개씨(55)가 말했다. "저는 5·18을 겪은 세대입니다. 또 한 번 민주주의가 이겨서 행복합니다. 역사가 어떻게 바뀌는지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겠습니다".
시민들은 춤과 노래로 들뜬 마음을 표현했다. 이순찬씨(62)는 거북이의 《빙고》에 맞춰 춤을 췄다. 체감온도가 영하권으로 뚝 떨어졌지만 이씨는 "이 기분에 추울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국민이 승리했다는 생각에 기뻐서 춤이 절로 나온다"며 "오늘은 파티를 열고 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4시간 동안 '윤석열 탄핵' 구호를 외쳤던 구아무개·김아무개양(17)은 목소리가 쉰 듯했다. 그럼에도 탄핵안 가결 직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열창한 이들은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다 난다"며 "비상계엄 이후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드디어 마음 놓고 등교할 수 있겠다"고 웃어 보였다.
이들은 역사의 한 장면을 '인증샷'으로 남겼다. 국회를 배경으로 부모님의 사진을 찍어주던 유아무개양(16)은 "이렇게 모든 시민들의 노력이 있어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며 "오늘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박아무개씨(27)는 "국회의원들이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도록 시민들이 여론을 잘 형성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결 당론'에도 소신껏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한 응원도 쏟아졌다. 중학교 2학년인 딸과 함께 왔다는 이아무개씨(49)는 "비판을 감수하고도 찬성표를 던졌던 국민의힘 의원들을 잊지 않겠다"며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데 국민과 함께해 줘서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MZ세대가 새로 쓴 '집회 역사'…'선결제' '응원봉'의 등장
이번 집회의 중심에 선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는 '응원봉'과 'K팝'으로 집회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다. 어린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켜봤던 MZ세대가 발랄하고 유쾌한 집회 문화를 선도한 것이다. 부천에서 올라왔다고 밝힌 김아무개씨(32)는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 팬클럽에서 활동할 때 사용했던 응원봉을 가지고 왔다"며 "함께 온 친구는 응원봉이 없었는데, 현장에서 무료로 응원봉을 나눠준 덕분에 손이 허전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선(先) 결제 문화'도 새롭게 등장했다. 유명 연예인 등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위해 여의도 인근 카페나 식당에 미리 결제를 해놓은 것이다. 가수 아이유가 선결제한 카페에서 커피를 수령했다고 밝힌 이아무개씨(25)는 "몇몇 네티즌들이 '선결제 지도(선결제한 식당, 카페 위치를 표시해놓은 지도)'를 만든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질서 정연한 모습도 돋보였다. 실제 국회의사당역 방면으로 향하는 지하철엔 추가 인원이 탑승 불가한 상황이 있었는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다음 열차를 타 달라" "죄송하다. 더 이상 자리가 없다"며 현장을 정리했다. 지하철 탑승을 위해 대기 중인 시민들도 이 같은 통제에 수긍하며 더 이상 탑승 시도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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