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공기처럼 여기는 청년층 전면에 등장하다 [임명묵의 MZ학 개론]
이 세대 위한 진짜 정치의 순간, 다음 정부에서 등장해야
(시사저널=임명묵 작가)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대한민국은 큰 국정 혼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탄핵을 요구하는 민주당에 맞서, 곧 있을 궤멸적 타격을 수습하기 위해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려는 국민의힘이 대치를 선택했고, 대통령의 존재가 사라지자 많은 국가 기능이 서서히 정지되고 있다. 그사이 정치적 불안정으로 국가 경제와 대외 신인도도 흔들리고 있다.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고, 그 어느 때보다 세계 속에서 문화적 위상도 높았던 대한민국에 갑작스럽게 '계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데 대해 해외 관찰자들도 충격을 숨기지 못했다.
어설프기 짝이 없던 계엄은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실패로 끝났고, 이제 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되면서 이 난동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계엄 사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태어난 대한민국의 대다수 청년층이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체제의 근간으로 내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계엄은 계획이 허술하고 동기가 황당해 실패하기도 했지만, 계엄을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라도 저지하려는 많은 국민을 분노케 했기에 어떤 형태로도 성공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계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군대의 변화가 눈에 띈다. 계엄은 평시의 국정을 정지하고 군대의 무력을 바탕으로 통치하는 비상조치다. 적국의 침공이나 재앙적인 자연재해 등 적절한 사유로 도저히 인정될 수 없는 이번 계엄령은 실질적으로 '친위 쿠데타'였다. 사실 한국은 원래 군이 정치에 등장해 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종종 있던 나라였기에, 대통령과 계엄령 주모자들은 아마 과거 시대를 재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을 획책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사실상 태업 나선 젊은 군인들
특히 계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군대의 변화가 눈에 띈다. 계엄은 평시의 국정을 정지하고 군대의 무력을 바탕으로 통치하는 비상조치다. 적국의 침공이나 재앙적인 자연재해 등 적절한 사유로 도저히 인정될 수 없는 이번 계엄령은 실질적으로 '친위 쿠데타'였다. 사실 한국은 원래 군이 정치에 등장해 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종종 있던 나라였기에, 대통령과 계엄령 주모자들은 아마 과거 시대를 재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을 획책했을 것이다.
하지만 1961년이나 1979년과 2024년은 너무나 다른 시대였다. 1961년 당시 대한민국은 제도화된 민주주의를 사실상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었고, 4·19 혁명 이후 기본적인 행정도 작동이 어려울 정도로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었다. 1979년에도 마찬가지로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사망에 국가 지도부 전체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의 참화를 대다수가 기억하고 있던 당시에, 상명하복을 철저히 훈련받았던 군인들은 그들을 이끄는 군사정변 주동자들의 명령을 따르는 데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러나 2024년은 어떤가. 북한의 위협은 여전히 상존하지만, 두 국가 중 어디도 무력으로 현 상황을 바꾸겠다는 모험을 꿈꾸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제6공화국 체제는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삐걱거리기는 해도 그럭저럭 작동하는 안정된 민주 정치를 발전시켰고, 국민은 모두 이것을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상식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12월3일 그날까지 국민 절대 다수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어떠한 불편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내려진 계엄에 그 어떤 군인들이 동조하겠는가.
2024년에 명령을 받은 계엄군은 상명하복을 따르기보다는 소극적으로 태업을 하면서 계엄령을 계속 방해했다. 선관위로 향한 방첩사 병력은 인근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주변을 배회했다. 707특임단은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진입했지만, 그들도 국회에 자신들이 왜 무장을 한 채 투입되어야 하는지 극도의 혼란을 느끼며 실질적인 태업에 나섰다. 항명을 하지 않으면서도 계엄령에 협조하지 않으며 국회의 계엄 해제를 도운 것이다.
온라인 기반 새로운 집회 문화의 등장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가 통과되고, 이후 여의도에서 국회를 넘어서는 광장의 정치가 열렸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규탄했던 광화문 집회가 이번에는 여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청년층이 대거 참여하면서 집회 문화가 바뀌는 신호탄으로 여겨진 광화문 집회의 경향이 8년 동안 더 강해졌음이 확인되었다. 원래 한국의 집회·시위 문화는 주로 386세대가 만든 학생운동 문화와 각종 사회운동 세력의 문법을 반영하고 있었다. 공격적인 문구를 쓴 깃발들과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대표되는 민중가요와 민중 의례, 입을 모아 외치는 '투쟁' 구호가 그 사례들이다. 이는 복수의 집회 주최 세력 간 연대를 가능하게 해주는 공통 언어였으나, 점점 사회 일반의 정서, 그리고 운동권 문화를 접하지 못한 청년층의 정서와는 괴리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런데 광화문 집회 때는 그간 적극적으로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청년층이 모이면서 집회 분위기가 한껏 '가벼워'졌다. 그들은 익숙하지 않은 운동권 문화보다는 자신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집단행동 문화를 집회에 접목했다. 이들은 특정 조직에 속해 있다기보다는, 단체 메신저 앱을 통해 연결된 사적 친분 모임을 통해 집회에 참여했고, 각종 재치 있는 문구를 담은 장난성 깃발을 들어올려 사적인 소속감을 공적 공간에 표했다. 어느 정도는 인터넷의 오타쿠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이 장난성 깃발 문화는 여의도에서 다시 더 크게 부활했다.
게다가 8년 사이에 기세가 더 커진, 강력하고 독자적인 집단행동 방법론을 갖춘 K팝 문화도 여의도 집회에 가세했다. 집에 잠들어 있는 아이돌 응원봉을 삼삼오오 챙겨온 청년 여성층이 여의도를 환하게 비추었고, 이들은 엄숙한 민중가요 대신 2016년 이화여대 시위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투쟁가가 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윤석열의 계엄령은 역설적으로 젊은 군인부터 아이돌 팬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세대와는 무척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태어나는 순간부터 흡입해온 공기처럼 여기는 세대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 세대를 위한 진짜 정치의 순간이 다음 정부에서 반드시 등장해야 할 것이다. 계엄령 해제와 윤석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일은 자유민주공화국으로서 대다수 국민이 요구하는 최소한도다. 이 최소한도를 넘어선 뒤에, 이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새로운 정부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의견 대립과 노선 갈등이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낸 2022년 대선은 새로운 문제의식과 정서를 표출하기 시작한 청년층 유권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양대 정당이 모두 갈팡질팡했던 선거였다.
그때로부터도 2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 세계와 한국이 그동안 겪은 엄청난 변화와, 그 변화 속에서 형성된 청년층을 어떻게 정치가 대변해야 할지를 둘러싼 논의가 더 필요하다. 청년층은 민주주의를 공기와 물처럼 알고 살아왔기에 그것을 거스르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기와 물로만 사람이 살 수는 없다. 이 충격에서 회복한 이후에 정치가 다시 기존의 이해관계를 강화하며 수구화될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물꼬가 트일 것인가. '윤석열 이후'를 지켜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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