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적이고 우연한 오판? 계엄은 ‘갑툭튀’가 아니었다
입틀막·언론 탄압·집회 금지 등 쌓이고 쌓여 계엄으로 이어져
[주간경향]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위법적 소지가 다분했다. 군과 경찰이 함부로 국회를 점거하고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국가권력이 광범위하고 직접적으로 시민의 기본권, 인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박안수 계엄사령관 명의로 발령된 포고령 1호는 한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노동 3권, 직업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이를 어길 시 처단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계엄은 야당 의원 몇 명의 불법체포 문제를 넘어 일반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조치였다.
그러나 “한밤중의 해프닝이었다”(홍준표 대구시장), “고도의 통치행위였다”(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등 윤 대통령을 두둔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정말 이번 계엄은 윤 대통령의 다소 돌발적이고 우연한 오판에 불과한 것일까.
이번 사태를 겪은 시민과 전문가들은 “계엄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계엄령의 ‘조짐’과 ‘징후’는 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 논리가 이번에 반복됐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입틀막(입을 틀어막다)’으로 대표되는 기본권 침해 논란의 중심이었다. 계속된 윤석열 정부의 기본권 침해가 쌓이고 쌓여 계엄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제2의 계엄은 없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계엄 방식’의 국정운영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독재정권과 똑같은 윤석열의 계엄논리
헌법과 계엄법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있을 때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계엄을 선포하도록 돼 있고 국회가 의결로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계엄 선포가 대통령 권한이자 통치행위의 일환이지만, 국가권력이 시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국가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엄격한 요건을 둔 것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봤을 때 머리끝이 쭈뼛 서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꼈습니다. 44년 전의 그날이 생각났어요.” 지난 12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종세씨(67·부울경 5·18 민주유공자회장)가 말했다.
김씨는 1980년 5월 18일 0시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전 집에서 자고 있다가 총을 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잡혀갔다. 부산대 학생이었던 김씨는 계엄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영장은 없었지만 보안부대로 끌려가 수일간 주먹질, 발길질, 소총 개머리판 폭행 등 고문을 받았다. 무엇을 진술하라고 때린 것도 아니었다. “사람 기를 끊어놓겠다”며 때렸다.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위협한 것이다. 김씨는 계엄법 위반 혐의로 징역살이를 했다.
국가폭력의 후유증은 오랜 시간 이어진다. 김씨는 “한번 잡혀간 뒤로는 살면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국가가 나를 체포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도피자금으로 쓸 수 있게 항상 금반지를 끼고 다닐 정도였다. 이번 계엄 때 그는 바로 휴대전화를 끄고 피신했다. 추적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용카드도 쓰지 않고 현금을 빌려 인근 숙소에서 TV로 상황을 지켜봤다. 그는 계엄은 해프닝일 수가 없다고 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시기와 상황은 달랐지만 구조는 비슷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국가안보를 위해 빨갱이 척결이 필요하다’,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국정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댔다면 윤 대통령은 ‘입법 폭거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킨다’, ‘반국가 세력을 척결한다’는 명분을 댔다. 김씨는 “(피신은) 과잉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과거 경험을 가진 저로서는 공포가 심하게 느껴졌다”며 “폭력의 양상은 과거와 현재가 다를지 몰라도 포고령 내용이 44년 전과 똑같았고, 계엄의 본질도 같았다”고 했다.
1980년 5월 강원대 학생일 때 계엄 해제 요구 시위를 했다가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징역살이를 한 최윤씨(67·강원민주재단 이사장)도 “이번에 계엄이 성공했으면 과거의 일이 똑같이 반복됐을 것”이라고 했다. 최씨의 말이다. “제가 겪었던 박정희 때나 그 이후의 12·12, 5·18 때 모두 정권은 ‘안보’의 논리를 댔습니다. 북한의 침공으로부터 안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반정부 인사들을 북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몰았어요. 이번 계엄 선포를 보고 ‘또다시 끔찍한 유혈사태와 그 이후의 암흑세상을 경험하는 것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강원도청 앞에 탱크가 있다면 목숨 걸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체포된 학생, 정치인, 재야인사는 2699명에 달한다.
전북대 학생으로 계엄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다 포고령 위반 혐의로 광주 상무대에 끌려가 구금됐던 이광철씨(69·전북인권교육연구소 이사장)는 계엄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냥 일상이 폭력이었어요. 천막이 쳐있는 조사관실에 들어갈 때 하늘을 쳐다봐도 안 되고 땅을 쳐다보면서 뒷사람의 허리춤을 짚고 들어가면 ‘폭도 이광철 검치받으러 왔습니다’ 식으로 인사를 해야 했어요. 스스로 폭도임을 외치는 치욕과 모욕, 설명할 수 없는 온갖 폭력을 당했습니다. 윤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하니까 어떤 이들은 ‘탄핵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데 웃기는 소리입니다. 계엄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들의 삶은 트라우마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망가졌어요.”
이씨는 계엄이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참여한 것 때문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참여하지 않은 것 때문에 여러 가지 트라우마를 겪는다”며 “국가폭력 앞에 개인은 나약할 수밖에 없고, 그 국가폭력의 효과를 개인이 평생 짊어진다는 점에서 큰 비극”이라고 했다.
시민도, 국회의원도 ‘입틀막’한 정권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줄기차게 ‘자유’를 강조했지만, 정작 시민들이 자유롭게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귀를 막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이른바 ‘입틀막’ 사태다. 지난 1월 18일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국정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이 불행해진다”고 말하자 대통령실 경호원들이 강 의원 입을 틀어막고 팔다리를 들어 행사장 바깥으로 끌어내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월 16일엔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연구·개발(R&D) 예산 축소에 항의한 졸업생 신민기씨(27)가 대통령실 경호원들에 의해 또 ‘입틀막’ 연행을 당했다. 입틀막 때 대통령실 경호처장이 이번 계엄 핵심인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신씨는 지난 12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척하면서 시민의 기본적인 자유는 완전히 외면해왔다”며 “김 전 장관도 그것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예스맨 역할을 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인 미디어 사회학자 박권일씨는 “윤 대통령이 (보수 정권인) 박근혜·이명박 대통령과 달랐던 점은 경호실이 전면에 나선 것”이라며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경호실이 전면에 나섰다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은 안중에 없고,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려는 위헌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입장과 다르게 보도한 언론에 법적 조치를 하고, 경찰과 검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같은 기관들은 이에 동원되며 ‘윤 대통령 명예 지키기’에 나섰다. ‘바이든-날리면’ 사태가 대표적 예다.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이 2022년 9월 22일 “(미)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고 MBC가 보도했고,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MBC를 대통령 해외순방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했고 외교부는 정정보도 소송을 걸었다.
검찰은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의혹 기사를 쓴 언론사를 수사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명예가 훼손됐다는 명분으로 검찰은 언론사와 기자들 집을 압수수색했다. 최고권력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이 대대적 수사를 벌이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대통령 기조와 다른 언론 보도에 징계를 하며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윤 대통령을 풍자한 만화 ‘윤석열차’에 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경고하는 일도 벌어졌다.
노동자, 시민이 집단적 의사표현을 통해 사용자나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단체행동권, 집회·시위의 자유는 윤 대통령 취임 후 무너져내렸다. 윤 대통령은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자 “산업현장에 불법상황은 종식돼야 한다”며 경찰력 투입을 시사했다. 2023년 5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서울 도심에서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노숙집회를 열자 “과거 정부가 불법집회에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했다. 집회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이고 야간 집회·시위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은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했지만, 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경찰은 야간 집회를 금지하고 나섰다. 윤석열 정부의 기본권 침해 논란이 있을 때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비판했지만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대화와 소통보단 계엄이라는 폭력적 방식으로 국가의 시민 통제를 강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제2의 계엄은 없을 것”이라는 정부·여당 입장에 대해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윤석열이 직접 선포하는 계엄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계엄 이전에도 이미 계엄 상태나 다름없는 집회 탄압이 있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계엄 당일 밤 국회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로에 가득 찼지만 어떠한 폭력도 없었고, 촛불집회도 평화롭게 진행됐다”며 “1년 9개월간 저녁 집회시위를 금지했던 경찰은 자기들에게 화살이 돌아올까 봐 지금 시민들의 시위에 아무 말을 안 하고 있을 뿐, 윤석열이 아니더라도 반인권적이고 위헌적인 대통령이 집권하면 탄압을 똑같이 할 것”이라며 “밤에는 집회시위가 안 된다는 경찰의 황당한 논리가 얼마나 우리의 목소리를 제한해 왔는지를 열린 광장에서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취약한 정치체제, 경쟁사회 속 독재 신봉
한국사회의 어떤 토양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계엄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이끌었을까. 윤 대통령은 계엄이 정당한 권한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윤 대통령이 선출된 것이 사실이고, 여론조사 결과 계엄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 이상의 시민은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번 계엄 사태가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 체제에서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의 원수’로서 갖는 권한이 막강하다. 박권일씨는 “대통령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며 “윤석열같이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짓을 했을 경우 통제 불가능한 나선으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훈련을 받으며 정치적 사회화를 통해 대권을 잡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네트워크가 없고 정치사회적 판단력도 갖추지 못했다”며 “공부를 잘해 출세는 했고, 법조인들의 오만함과 특권의식은 갖고 있지만 판단력은 유아적 상태였기에 큰 권력을 잡았을 때 엄청난 사고를 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시스템 자체가 권력을 가진 통수권자나 그 주변 인물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목적에 따라 절차를 무시하고 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체제였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했다. 그는 “형식적으로는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나 헌법의 틀을 가져가면서도 제대로 작동한 것이 없고, (윤석열 정부는)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갔다”며 “우리의 대의민주주의가 취약성을 내재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번 계엄 사태 배경에 신자유주의 체제와 공론장의 붕괴가 있다고 분석했다. 규제 완화, 노동유연화, 공적 영역의 민영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게 됐는데 이것의 정당성을 논의하는 공론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서 국가권력까지도 극우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2022년 12월 정부·여당이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 대응하자 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한 게 그런 모습이다. 이 교수는 “윤석열 정권이 파시즘적인 탄압을 했음에도 공론장이 붕괴해 신자유주의의 탐욕이 견제되지 못했다”며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처럼 확 잡아버리면 (국회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여기서 오판을 했고 광기와 결합하면서 계엄과 같은 비상식적인 일을 벌인 것”이라고 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니까 경제적으로 부흥한 독재 시대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강화된 것 같다”며 “기득권 세력은 여전히 있고 불평등한 분배가 이뤄지고 있는데 능력주의(능력에 따라 자원이 배분된다는 주의)가 판을 치면서 오히려 어떤 독재적인 힘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위계가 형성된 것이 낫다는 심리를 불러일으킨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번 계엄 사태를 한국사회 전체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이번 일을 기화로 사회의 모든 조직 내에 침투해 있는 권위주의적인 요소를 드러내면 좋겠다”며 “행정부나 입법부의 민주화를 넘어 우리가 사는 조직 모두에 민주적으로 성숙한 의식이 확고히 뿌리내릴 때 대통령이 감히 이런 짓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도흠 교수는 “탄핵에만 몰두하면 대통령은 바뀌겠지만 체제는 바뀌지 않는다”며 “사회대개혁을 통해 기후위기 속 불평등의 극대화, 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김정희원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 세대나 진영을 넘어 사회운동 세력이 뭉치는 것을 보면서 긍정적인 희망을 준다”고 했다. 그는 “언제든지 이런 문제가 불거졌을 때, 혹은 정치권에 요구해야 하는 것들이 생겼을 때 사회운동 세력이 쉽고 빠르게 연대할 수 있는 역량을 장기적으로 길러나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그럼으로써 민중의 목소리를 모으고 폭발시킬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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