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국힘, 8년 전 새누리당 몰락 ‘데자뷔?’
‘탈당 땐 패배’ 관행에 분열 않고 더욱 격렬한 내전 가능성도
[주간경향]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비슷하다.”(국민의힘 A씨)
“또다시 그때의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더 심각하다.”(국민의힘 B씨)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후 탈당했던 의원 보좌진들의 회고다. 박근혜 대신 윤석열을 대입하면 비슷한 양상이라는 것이다. 당시 탄핵에 반대했던 친박계(친박근혜계)와 찬성했던 비박계(비박근혜계)가 당 내부에서 격렬하게 부딪쳐 갈라섰는데 이번에는 친윤계(친윤석열계)와 친한계(친한동훈계)가 탄핵 찬·반을 놓고 분열 직전이다.
조기 하야 대신 탄핵의 길을 택한 대통령 박근혜의 8년 전 입장과 지금 대통령 윤석열의 입장 역시 정확하게 같다. 탄핵 사태에 이른 책임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린 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적반하장식 태도다. 지난 12월 12일 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는 거대 야당에 대한 경고 성격이었고, 내란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친윤계는 윤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다시피 하며 ‘탄핵 반대’와 ‘질서 있는 후퇴’를 내세우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를 통해 “비상계엄은 통치행위”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지금의 친윤계처럼 8년 전에는 대통령 박근혜를 옹호했던 친박계가 있었다.
한 대표 물러나게 한 뒤 친윤이 당 수습 추진
그때나 지금이나 여당 주류는 원내대표직에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걸었다. 지난 12월 12일 의원총회에서 친윤계의 권성동 의원이 72표를 얻어, 34표를 얻은 비윤계(비윤석열계)의 김태호 의원을 누르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국정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분노가 들끓는 민심을 무시한 채 윤 대통령의 손을 사실상 들어준 것과 마찬가지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국민은 안중에 없는 상태”라면서 “결국 자기 이익 그것도 눈앞의 이익을 놓고 단기적으로 움직인 결과”라고 비판했다.
8년 전 새누리당에서는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는 정우택 전 의원을, 비박계는 나경원 의원을 내세웠다. 탄핵 전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10% 안팎으로 폭락할 정도로 민심은 여당을 질책했지만, 의원들의 당심은 달랐다. 친박계가 승리하고, 비박계는 패배했다. 민심을 사실상 무시한 ‘당심 선거’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지금이나 8년 전이나 원내대표직을 놓고 당내 권력을 다투는 여당 내 사정은 비슷하다”면서 “국민의 비난은 무시한 채 당내 권력 장악에만 몰두하면 할수록 민심과는 멀어지게 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당대표가 물러나게 되면 원내대표가 사실상 수장이 된다. 비상대책위가 구성되든 되지 않든 선출직 지도부로서 책임을 떠안기 때문이다. 원내대표 선거 전부터 국민의힘 내에서는 친윤계인 권 원내대표가 당선되면, 탄핵 가결 책임을 물어 한동훈 대표를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한 뒤, 실제적인 당권을 쥘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권 원내대표는 그런 계획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친한계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친윤계는 다수파이고 친한계는 소수파에 불과하다.
다수파가 탄핵 전후의 상황을 문제 삼아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친한계의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커졌다. 8년 전 탄핵소추안 통과 후 친박계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물러난 뒤 비박계 인사가 주축이 된 비대위를 구성하려 했지만, 결국 친박계 원내대표인 정우택 의원이 당 주도권을 잡았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한 대표를 물러나게 한 뒤 권 원내대표 중심으로 친윤계가 당을 수습하는 길을 선택하려는 친윤계의 구상이 하나둘씩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4명이 사퇴하면 비대위 체제로 전환된다. 친윤계 김민전 최고위원은 탄핵이 가결되면 지도부 사퇴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인요한, 김재원, 김민전 등 친윤계 최고위원 세 명에 한 명이 더 사퇴하면 한 대표체제가 무너진다. 최근 당내에서는 친한계인 장동혁 최고위원이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다.
보수정당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부정적
탄핵 가결 후에도 한 대표 체제가 유지될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김상일 평론가는 “한 대표 자신은 비상계엄에서 체포 대상이 됐고, 이후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한 대표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기에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친한계와 친윤계의 격렬한 당내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견해도 있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정치평론가)는 “탄핵 가결 후 한 대표가 대표직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다”면서 “오히려 한 대표가 물러나는 것이 조기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되는 데 더 나은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8년 전 당 외부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유력한 후보가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결국 국민의힘이 한 대표를 대선후보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홍준표 대구시장이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역 광역단체장이기 때문에 조기 대선에 쉽사리 대권후보로서 움직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엄경영 소장은 “한 대표는 어떻게든 사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는데, 조기 대선에서도 지금과 같이, 다른 차기 대선주자를 앞서는 지지율을 누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견했다. 당대표 선출 뒤 계속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당내에서 신뢰를 많이 잃었다는 것이다.
8년 전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 권성동 의원 등 비박계 인사들은 탈당해 신당을 만들었으나 보수의 중심이 되지 못한 채 나중에 복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점에서 여당의 내분은 8년 전과 다른 양상으로 갈 수도 있다. ‘탈당하면 결국 패배한다’는 보수 정당의 관행이 굳어진 만큼 당 내부에서 더욱 격렬한 내전을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엄 소장은 “당이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히 8년 전과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번째 탄핵 국면을 맞이한 보수 정당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김철현 교수는 “이미 8년 전 상황을 겪은 의원들은 야당 때도 호의호식했다는 안이한 판단을 하고 있다”면서 “영남을 비롯한 비수도권 의원들은 수도권의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주판알만 굴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엄경영 소장은 “지금 이재명 대표에 대한 거부감 하나로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조차도 향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김상일 평론가는 “8년 전 박근혜 탄핵으로 보수 정당은 수렁에 빠졌지만, 이준석 전 대표와 같은 젊은 정치인으로 겨우 정치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면서 “그걸 보수 세력 자신들의 힘으로 극복한 것으로 착각하고 다시 탄핵 사태를 초래했는데 이제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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