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남겨진 세 가지 상처, 그리고 희망들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한순간에 나라가 쑥대밭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초현실적이라고 해야 할지, 비현실적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괴담은 상당수가 현실이었다는 점을 간과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 비용은 어마어마 합니다. 단순히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 말입니다.
한 조사 결과를 본 적 있습니다. 군비 축소를 발표하면 벌어지는 일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지면서 10% 정도의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는 결과였습니다. 이번 사태로 보이지 않는 손실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분단국가입니다. 군대는 평화를 지키는 자산입니다. 이번 사태의 주범은 군 최고통수권자였습니다. 군 면제에 부대 ‘열중 쉬어’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논외로 하겠습니다. 별 중의 별 국방부 장관은 내란의 모든 것을 주도했고 수십 개의 별들이 내란 피의자로 낙인찍혔습니다. 그들이 국회에 끌려 나와 눈물을 짜는 광경도 전 국민이 목격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젊은 직업 군인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꿈이 빼앗긴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적군에게 치명타를 안겨야 하는 암살 부대가 국회의원들을 잡기 위해 투입됐습니다. 참수 부대장이 양심선언을 하며 공개해서는 안 될 얼굴까지 드러냈습니다. 비상시 전쟁 지휘부가 될 비밀 벙커의 위치와 구조도 까버렸습니다.
5·18 이후 계엄군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벗으려 했던 공수부대 또한 수십 년 쌓은 탑을 한꺼번에 무너뜨렸습니다. 국회에 투입된 젊은 군인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상처 난 군을 재정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투입되어야 할까.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상처입니다.
국격의 손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은 전쟁을 임시로 중단한 휴전 국가입니다. 이 이미지를 벗고 세계에서 가장 관심받는 나라가 되기까지 수십 년이 필요했습니다. 내란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세계인들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나라였습니다. 지금은 많은 나라가 여행 자제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내란으로 정부가 전복된 시리아나 아프리카 국가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강조했던 동맹 미국과의 관계는 틀어졌습니다. 그 피해가 어떻게 돌아올지도 예측하기 쉽지 않습니다. 선진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행위 자체가 후진국형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 손상된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도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입니다.
마지막 보이지 않는 손실은 한국 사회의 갈등 심화입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 탄핵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탄핵이 가결되면 가결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갈등공화국 대한민국은 더 큰 갈등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 비용도 막대합니다.
눈에 보이는 외국인 자금 이탈, 주가 하락, 환율 급등, 각종 연말 행사 취소에 따른 자영업자의 가중되는 고통 등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손실입니다.
그래도 희망도 봤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번 사태에서 엄청난 회복탄력성을 보여줬습니다. 국회 담을 넘어 들어간 국회의원들은 계엄령 선포 후 2시간 만에 계엄 해제를 의결했습니다. 시민들은 국회 안팎에서 장갑차와 계엄군을 막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MZ세대 군인들은 불합리한 지시에 태업으로 맞섰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여의도를 메운 젊은이들은 탄핵 촉구 집회에서 분노를 축제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들의 힘은 여당의 국회의원들도 움직였습니다. 외신들은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저세상으로 떨어진 국격을 끌어올린 것은 국민들이었습니다.
주식시장도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외환시장도 충격은 적었습니다. 정부가 적극 개입한 결과입니다. 정부를 포함해 한국 시장의 기초체력이 과거에 비해 좋아진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대통령이 보이지 않으니 경제팀이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한국 사회와 시장이 보여준 회복탄력성은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과 비슷한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2025년 트렌드 가운데 ‘아보하’란 단어가 있었습니다. 아무 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아주 보통의 하루. 이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될 것이라고. 내년까지 갈 것도 없이 벌써 보통의 하루를 보내고 싶은 그런 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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