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 셰프들]⑥송훈, 미슐랭을 뒤로 하고 한국의 돼지를 품다

이정수 기자 2024. 12.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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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일 토종 돼지 종자 ‘난축맛돈’
흑돼지, 랜드레이스종을 배합해 고소함과 촉촉함이 장점
”국내뿐 아니라 해외까지 이 맛 알리고파”
송훈 셰프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크라운돼지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송 셰프는 미국 CIA를 졸업한 후 그래머시 테이번, 일레븐 메디슨 파크 등에서 근무한 국내 최정상급 셰프 중 한명이다.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여기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던 셰프복을 벗고, 새로운 선택을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송훈. 한국을 대표하는 셰프로 주목받아 온 그는 최근 한국의 토종 돼지인 ‘난축맛돈’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그가 이제 셰프가 아닌, 기업체의 대표로 불리는 것이 더욱 익숙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돌아보면 그의 요리 인생은 화려함의 연속이었다. 세계 3대 요리 학교로 꼽히는 미국 CIA를 졸업하고,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인 ‘그래머시 테이번(Gramercy Tavern)’과 ‘마이알리노(Maialino)’를 거쳐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에서 수셰프로 활약한 것은 모든 셰프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은 파인다이닝 업계를 과감히 떠나게 된 이유는 바로 난축맛돈의 그 훌륭한 맛이다. 난축맛돈은 난지축산연구소에서 만든 맛있는 돼지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재래종 흑돼지와 랜드레이스종과의 교배를 통해서 개발됐다. 근내지방이 다른 돼지에 비해 4배 이상 높아 보다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국내 유일의 ‘종돈(種豚)’인 난축맛돈, 그는 ‘우리의 맛’이 사라져 가는 이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가 서울 신사동에 난축맛돈 전문 음식점 ‘크라운돼지’를 열게 된 계기다.

송훈은 난축맛돈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베리코 돼지나 버크셔 품종에 그 맛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여러 이점도 지닌다. 앞서 말한 근내지방 외에 ‘몸에 좋은’ 지방인 불포화 지방산도 풍부할뿐더러, 수분율도 높아 촉촉함도 남다르다. 쉽게 말해 건강과 맛, 두 가지를 다 잡은 돼지인 셈이다. 따라서 고기를 서빙하는 송훈의 얼굴엔 늘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권하는 것만큼 셰프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국내 토종 돼지 종자 '난축맛돈'. 난축맛돈은 근내지방 외에 불포화 지방산도 풍부해 고소하고 촉촉한 맛이 특징이다. /박상훈 기자

고소함과 촉촉함이 자랑인 난축맛돈은 그 부위마다 또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크라운돼지에서는 이를 극대화해 새로운 메뉴도 개발했다. 토마호크(Tomahawk·갈비살이 등심에 붙어있는 부위)에서 착안한 ‘돈(豚)마호크’, 그리고 티본스테이크(T-Bone Steak·안심과 채끝 사이에 위치한 T자 모양의 부위)와 비슷한 티돈스테이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먼저 돈마호크에는 여러 부위를 맛볼 수 있다. 등심과 가브리살, 그리고 갈빗살이다. 잘 구워낸 돈마호크를 한 줄로 잘라내면 이 세 가지 부위가 고기 한 줄에 다 담긴다. 등심의 단단함이 가브리살의 부드러움과 만나 갈비의 쫄깃함으로 이어진다. 부위 곳곳에 박힌 지방이 고소하게 터지며 돼지 특유의 구수함이 입안 안에 가득 차는 것이 특징이다. 여러 부위가 한 데 어우러져 아삭거리기도, 부드럽기도 하며 독특한 식감을 낸다.

티돈스테이크도 안심과 등심 모두 맛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별미다. 두툼한 살코기 위에 지방도 촘촘히 포진돼 있다. 특히 겨울에 먹는 것을 추천한다. 그 지방이 더욱 올라와 감칠맛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또 보통 돼지 등심은 뻑뻑하나, 난축맛돈은 다르다. 넉넉한 수분감이 육질을 촉촉하게 만들어 보들 거린다. 안심도 마찬가지다.

고기를 구워 먹고 빠질 수 없는 코스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볶음밥이다. 다만 이곳에서는 제주 느낌을 내기 위해 갈치속젓을 주 소스로 활용한다. 직접 담근 속젓을 난축맛돈 뒷다리살을 갈아 함께 볶아내 풍미를 끌어올린다. 김치 역시 한 시간 동안 약한 불에서 볶아내는 데, 즙을 졸여내고 식감을 살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크라운돼지의 볶음밥. 직접 개발한 소스와 갈치속젓을 밥과 함께 볶아 낸 것이 특징이다. /박상훈 기자

빨간 겉모양새와 다르게 첫 입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씹을수록 갈치 내장 향이 은은히 올라온다. 고기와 함께 먹어도 그 맛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살짝 매콤한 속젓에 찍어 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숙으로 익힌 계란 노른자가 윤활제처럼 한 데 맛을 조화롭게 하며 고소함도 가미해 준다. 볶음밥을 든 숟가락을 놓고 나서야 한 상을 전부 먹었다는 기분이 든다.

다만 송훈의 도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난축맛돈을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기 때문이다. 단순 셰프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로, 세계로 향한 그의 발걸음은 가볍지만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다.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크라운돼지의 대표 송훈이다. 미국 CIA를 나와 일레븐 매디슨 파크 등에서 셰프로 일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 4의 심사위원으로도 참가했다. 현재는 송훈 파크의 대표로서 서울 신사동과 제주 애월의 크라운돼지를 운영하고 있다.”

―크라운돼지는 어떤 곳인가.

“크라운돼지는 사실 거창한 철학을 지니고 있진 않다. 우리나라 토종 돼지의 명맥을 이어가는 유일한 매장이라고 생각해 주면 감사하다. 아직은 난축맛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가치를 알아줄 것이라 확신한다. 시간의 힘을 믿는다. 또 맛에 대한 자신도 있다.”

―난축맛돈은 어떤 돼지인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우리나라만의 돼지다. 스페인에 이베리코 돼지가 있다면 한국은 난축맛돈이다. 맛 또한 밀리지 않는다. 버크셔, 이베리코 등 훌륭한 돼지들과도 비교해도 말이다. 오히려 더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맛을 알리기 위해 내 이름을 딴 ‘송훈파크’를 개장했다.”

송훈 셰프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크라운돼지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상훈 기자

―그 맛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먼저 맛이 고소하고 담백하다. 돼지고기는 너무 기름지면 쉽게 물릴 수 있다. 그렇지만 난축맛돈은 다르다. 불포화 지방산도 많이 함유돼 있고, 맛을 고소하게 하는 근내지방도 다른 돼지보다 몇 배 높다. 수분율도 좋아 촉촉하다. 손님들에게 ‘이빨이 네 개뿐이어도 씹을 수 있는 고기’라고도 설명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일단 먼저 맛을 봐보시라. (웃음)”

―크라운돼지의 시그니처 메뉴는 무엇인가.

“티돈스테이크, 돈마호크, 쫄데기살 등이다. 티돈스테이크는 소고기의 티본스테이크와 비슷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등심과 안심을 모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겨울철에 드시면 더 고소하고 맛있다.

돈마호크는 등심, 가브리살, 갈비살 사이로 촘촘히 지방층이 자리 잡아 독특한 식감을 자랑한다. 그 세 부위를 나눠먹기보단 일렬로 다 맛볼 수 있게 잘라 내어드리고 있다. 어우러지는 식감을 염두에 두고 먹으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쫄데기살은 어깨 부분의 부챗살을 뜻하는데 살코기 8할, 지방이 2할 정도라 목살과도 비슷하지만 육향이 좀 더 강하다.”

―크라운돼지의 서울점과 제주점의 차이는 무엇인가.

“파인다이닝 업계에 오래 몸담으며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요리엔 ‘서사’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 서사를 잘 살리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업장이 위치한 장소의 특색을 살리는 것이다. 각 지점은 서울과 제주의 매력을 더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차이점을 뒀다. 가령 제주에서는 유채꽃과 두메부추를 구하기가 서울보다 용이한데, 이런 식재료를 이용해 밑반찬을 만드는 식이다.”

송훈 셰프가 크라운돼지에서 볶음밥을 요리하고 있는 모습. /박상훈 기자

―돼지를 좀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팁이 있다면 공유 부탁드린다.

“첫 점은 무조건 소금을 찍는 방법을 추천한다. 소금을 조금 곁들여 씹으면 고기 특유의 육향과 육질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모든 고기가 그렇다. 또 이후엔 유자 폰즈 소스와 고추냉이와 함께 먹는 방법을 권한다. 유자 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돼지의 느끼할 수 있는 부분을 잡아준다. 또 크라운돼지에서 직접 개발한 갈치 속젓과 장아찌류도 별미다.”

―파인다이닝 업계를 떠나면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크라운돼지를 열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돈을 벌기 위해서 자존심을 버렸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돈을 벌고 싶은 것은 맞다. 그러나 단순 업장을 운영하는 것보단 더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돼지 품종을 다시 알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난축맛돈을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더라. 근데 한국의 돼지라는 말을 듣고 더 놀랐다. 누군가는 이 돼지를 보존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래도 파인다이닝에 대한 미련은 없는가.

“내 궁극적인 목표는 나만의 다양한 음식점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파인다이닝 업장을 차리게 되면 그러기가 힘들다. 미슐랭 별을 받는 것은 분명 명예로운 일이다. 하지만 되묻고 싶다. 1스타, 2스타, 그리고 이어 셰프들의 꿈인 3스타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 이후는 과연 무엇인가.”

―그동안의 성과는 어떠한가.

“크게 내세울 수는 없지만 분명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1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난축맛돈을 재배하는 농가도 1곳에서 8곳으로 늘었다. 난축맛돈은 한번 출하하는데 1~2년 정도 걸리는 데, 내년에는 4곳 정도가 출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양산체계도 지금 만들어보고 있다. 앞서 말한 티돈스테이크, 돈마호크 등도 상표 등록을 마쳤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써도 괜찮다. 이름이 좀 더 알려질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돼지 외에도 관심 가는 한국의 식문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전엔 순대였지만 대중화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외에도 갈비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 중이다. 한국에는 닭갈비, 소를 이용한 물갈비 등 여러 종류가 많다. 충분히 매력적이고 맛 또한 해외에서도 통할 것으로 본다.”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계속 성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성과를 내고 싶다. 미국에서도 한국의 맛을 알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 국내 시장뿐 아닌 한 명의 ‘국가대표’로 거듭나 우리 것을 세계 곳곳으로 퍼트리고 싶다.”

☞송훈 크라운돼지 대표는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졸업 ▲그래머시 테이번(Gramercy Tavern) 前 수셰프 ▲마이알리노(Maialino) 前 수셰프 ▲일레븐 메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 前 수셰프 ▲크라운돼지 現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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