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여정이 전하는 문명 붕괴의 근심
마크 오코널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문명의 붕괴와 세상의 종말에 대비하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의 지은이가 그랬듯 집에서 인터넷 접속만 해도 관련 동영상 등을 숱하게 접할 수 있다. 이를테면 ‘프레핑’이라고 불리는 활동을 하는 사람, 일명 ‘프레퍼’들도 그렇다. 주로 미국 백인 남성인 이들은 세계가 파국 직전이라 믿으며 생존배낭 등을 준비하는 데 열심이다. 이들이 쓴 생존지침서도 있다. 지은이는 자유와 자급자족을 강조하는 그 면면이 서부 개척기 같은 시대로 돌아가려는 현실도피적 환상이자, 사회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 시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인 지은이가 종말을 파고들게 된 건, 이런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조롱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책의 초반부터 그는 기후 위기를 비롯해 새로운 파시즘의 대두, 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보면서 자신이 강박적으로 ‘종말’에 집착해왔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여러 현장을 찾아간다. 미국 노스다코타주에서는 강력한 폭발에 견딜 수 있는 군사용 시설을 정비해 ‘대피소’로 분양하는 부동산업자를 만난다. 이런 사업이 여기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홍보문구에 따르면 18홀 골프장과 DNA보관소까지 갖춘 호화 대피소도 있다.
뉴질랜드도 간다. 태평양의 물 좋고 공기 좋은 이 나라는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 사이에 대격변에 대비한 피신처로 인기가 높단다.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벤처 투자자로 널리 알려진 피터 틸도 넓은 땅을 사두었다. 지은이는 틸의 극단적 자유지상주의와 여기에 영향을 미친 주요 저서의 시각 역시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지구에서 인류의 생존이 어려워질 미래를 내다보며 화성 개발과 이주를 꿈꾸는 협회의 행사도 찾아간다. 기후 위기에 따른 파국을 피할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의 시각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홀로 자연을 접하는 캠핑 체험도 전한다. 특히 종말 이후의 세상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으로, 체르노빌 원전 참사 피해 지역을 방문하는 투어도 다녀온다.
이 책은 이런 여행기이자,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면 ‘순례기’이다. 갈수록 저널리즘보다 에세이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지은이가 종말에 집착하게 된 것은 기후 위기에 직면해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살게 해도 되냐는 의구심이 서구에서 치솟던 때와도 맞물린다. 한데 지은이는 그 사이 두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됐다. 이 책은 그런 경험과 함께 스스로의 불안이 지닌 실체를 응시하려는 여정으로도 다가온다. 그는 수전 손택의 말을 빌려 “최악의 시나리오에 치우치는 성향은 통제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다스리려는 욕구를 반영한다”고 책에 썼다. 상대적으로 문명의 혜택과 경제적 여유를 누려온 자신과 달리 지구촌의 어떤 이들은 이미 ‘종말’을 현실로 체험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다가오지 않은 종말보다, 지은이의 시각이 투영된 현재의 면면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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