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84] 왕관의 무게

백영옥 소설가 2024. 12. 1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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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

판촉용으로 나누어주던 연두색 때수건에 새겨진 문구를 봤다. 사람에겐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때’가 있다. 하나는 시간, 다른 하나는 더러움을 의미하는 때다. 삶을 시간 여행으로 정의하면 우리는 이 두 가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후회막심의 순간도 있지만 나라는 존재는 이전에 선택한 모든 것의 총합이며, 어른은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가 있다. 하지만 ‘때’를 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좋은 때에 좋은 사람이 되긴 쉽다. 본성은 고난에 빠졌을 때, 고스란히 드러난다. 워런 버핏이 “물이 빠지고 나서야 누가 발가벗고 수영했는지 알게 된다”고 말한 이유다. 이혼 숙려 기간에 재결합한 부부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이혼을 요구한 아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양육권이나 재산 분배 등 많은 걸 양보하려는 남편의 진심에 마음을 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시시비비가 아닌 책임져야 할 ‘아이들’에게 온전히 관점이 맞춰졌기에 가능한 결론이었다.

아이들을 국민이라 바꿔 부르면 어떨까.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충격과 불안 속에 던져진 국민들이란 걸 다시 한번 기억하는 것 말이다. 2022년에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선물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말은 사실 트루먼 대통령의 책상 앞에 써 있던 것이다.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루스벨트의 죽음으로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되어 전쟁과 대립의 시대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야 했다.

왕이 되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트루먼은 루스벨트 시절 극비리에 진행됐던 핵 개발(맨해튼 프로젝트)이라는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온전히 책임져야 했다. 자신이 한 일은 물론이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것, 그것이 왕관의 무게다. 리더는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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