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과 세금 줄이기 경쟁[김유찬의 실용재정](49)

2024. 12. 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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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뒤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2월 3일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그리고 수 시간 후의 국무회의 계엄 해제 의결은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많은 이들에게 계엄의 기억은 50년 가까이 묵은 오래된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계엄 선포 장본인의 개인적 위기의식과 국민 대다수가 삶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은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내용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계엄은 해제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지난 12월 7일 무산됐다. 그러나 여야는 모두 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경제에 남긴 후유증은 심각하다. 국제 경제의 분업체계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한국이 정치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을 대통령이 나서서 세계에 알렸다. 예민한 금융시장부터 빠르게 반응했다. 환율이 뛰고 외화 크레디트(신용) 라인이 불안하다. 계엄과 정치적 불안정을 결제 리스크(위험)로 보기 때문이다. 해외 금융기관들의 태도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때까지는 피해가 누적될 것이다.

민주당, 감세에 일정 부분 책임져야

윤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를 보면 계엄 선포의 이유를 더불어민주당 잘못으로 돌렸는데 감액 예산안과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 강행으로 민주당이 국가기능을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기 초반부터 큰 폭의 감세를 통해 세입 기반을 허약하게 만들고, 세출의 증가 폭을 최소한으로 제한해 국가가 고유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한 것이야말로 정작 윤석열 정부였는데 말이다.

민주당은 지난 12월 10일 국회에서 본회의를 열어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애초 제출한 677조원에서 4조1000억원가량을 삭감한 것이다. 삭감된 분야는 정부 예비비로 4조8000억원 중 절반인 2조4000억원이 감액됐다. 검찰 특정업무경비(507억원)와 특별활동비(80억원), 경찰 특활비(32억원),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특활비(83억원) 등은 전액 삭감됐다.

민주당은 특활비를 삭감해도 국정이 마비되지 않고,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불요불급한 예산은 삭감하되 민생 회복과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은 증액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여당과 합의 불발로,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예산을 감액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또 감액 예산안이 사실상 증액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법 제57조에 “국회는 정부의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그 때문에 야당이 민생 예산을 확보할 방법은 감액을 통해 여지를 마련한 뒤, 정부·여당과 물밑 거래에 나서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산 축소(혹은 충분하지 못한 수준의 예산 증가)로 인한 국가 기능 마비 문제는 전적으로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책임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능을 제대로 한 것이 없으며 부동산 이슈와 반도체 산업을 제외하고는 민생을 포함해 중요한 경제 문제에 관심조차 크게 가지지 않는 듯하다.

반면 세 수입 부족을 감수하면서 (부자와 대기업들에 대한) 감세에 대해서만은 진심이었다. 윤석열 정부 내내 큰 규모의 감세가 이어졌으며, 2024년에도 금융투자소득세와 상속세 등 커다란 감세 제안이 있었다. 세금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정부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파괴하고 소멸시키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고 판단된다.

감세는 윤석열 정부가 시작했지만, 2024년에 세금을 줄이는 것에 민주당도 동참해 책임을 같이 나누게 됐다. 금융투자소득세와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폐지·유예하고,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까지 고려했다. 다행히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와 상속세 감세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제동을 걸었다. 여하튼 감세에는 민주당도 일정 부분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어느 정도 발전한 지구상의 나라들은 현재 두 가지 거대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데, 기후위기와 불평등이 그것이다. 생존을 위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전환에서 도피할 수 없다. 생태적이고 공정한 세상으로의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세제개혁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 수십 년간 거시경제정책은 통화정책이 주도했다. 필요한 재정지출과 정부투자를 억제하는 대신 양적 완화를 통해 민간부문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경제위기마다 공급되는 유동성의 규모는 차원을 갱신했다. 결과적으로 실물투자보다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투자로 자원이 쏠리고 계층 간 자산의 심각한 양극화를 일으키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미래 경제정책의 핵심은 조세정책

위기 극복을 위한 대전환의 과정에서는 국가만이 할 수 있는, 국가가 해야 하는 혁신적인 역할이 있다. 그리고 이는 큰 규모의 재정지출을 수반한다. 그러기에 큰 규모의 재원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에너지전환을 위한 프레임을 결정하고 국가가 먼저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전환기 비용을 지원하고 동시에 공정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교육, 주거, 일자리, 디지털화 등의 영역에서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

이 분야의 사회적 투자는 피할 수 없기에 미래에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은 국가부채와 세금을 어떠한 규모와 비율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세 수입을 선행적 조처로 줄여놓고 재정 건전성을 주장하며 지출을 줄이려고 한다. 시대착오적이며 경제·사회적 상황에 부적합하다. 필요하고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투자의 내용과 규모를 확인한 후 단기적인 재정 건전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 세금과 국가부채 사이에서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세수 규모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제개혁의 구체적 내용에 기후 중립적 요구와 불평등 해소에 유효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세금을 어느 분야에서 확보하느냐가 사회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재원 조달과정에서의 부와 소득의 격차 해소도 사회발전에 중요한 관건이다. 특히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래 경제정책의 핵심은 조세정책에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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