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유승민·이재명’ 트라우마…탄핵을 대하는 보수의 3가지 속내 [최병천의 인사이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2024. 12. 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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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조기 대선=이재명 당선=적폐 청산·정치보복’ 인식 작동

(시사저널=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서 해제를 의결하던 밤, 야권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한 정치인은 우원식 국회의장이었다. 여권의 경우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였다. 계엄 선포 직후 한 대표의 선명한 반대 표명은 박수받을 일이었다. 국회가 빠른 시간에 계엄 해제를 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 한 대표는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한다. 

다음 날인 12월4일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결정한다. 한 대표는 '탄핵 반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계엄은 위헌적이고 위법하다고 지적하면서 탄핵 반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은 매우 모순되는 이야기다. 

윤 대통령 탄핵 표결을 하루 앞둔 12월6일 아침에는 다시 입장을 바꾼다. 윤 대통령의 '즉각적인 직무정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계엄 선포 당일 저녁 주요 인물에 대한 '체포조'가 가동됐고 한 대표가 포함됐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체포 대상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우원식 의장, 한 대표, 권순일 전 대법관, 김명수 전 대법원장 등이었다. 이들을 체포할 경우 과천에 있는 방첩사의 B-1 벙커에 구금할 계획이었다는 것도 알려진다. 

한 대표의 '즉각적인 직무정지' 필요성 제기 이후 용산이 한 대표에게 독대를 제안한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본 회담이 진행됐다. 하지만 탄핵을 앞둔 12월6일 저녁까지도 큰 진전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12월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실패가 예견됐던 '한동훈·한덕수' 공동체제

탄핵 표결이 있던 12월7일 토요일 오전 상황이 반전된다. 오전 10시에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발표됐다. 주요 내용은 대국민 사과, 법적·정치적 책임, 제2의 계엄은 없고, 임기를 포함한 향후 정국 운용은 여당에 일임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는 말인가'라는 기존의 태도에 비해서는 전향적인 입장이었지만, 전 국민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위헌적 계엄에 걸맞은 담화는 아니었다. 대다수 국민은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국민의힘 '찬성 8표'를 막기 위한 임시방편의 담화라는 뒷말이 나왔다. 

대통령 담화 직후 한 대표는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다. 하루가 지나 12월8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 대표가 공동으로 대국민 담화를 진행한다. '질서 있는 퇴진'을 명분으로 내걸며, 소위 한·한(한덕수·한동훈) 공동체제가 등장한다. 

한 대표가 '질서 있는 퇴진'을 추진한 이유에는 '보수의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엔 3개의 트라우마가 작동하고 있다. 바로 적폐 청산 트라우마, 유승민 트라우마, 이재명 트라우마다. 적폐 청산 트라우마는 민주당 정부가 등장할 경우 수사와 기소를 통해 공격받을 것이라는 공포다. 유승민 트라우마는 탄핵에 찬성하면 '배신자 프레임'이 작동해 이후에 정치적 불이익을 받게 될 거라는 공포다. 이재명 트라우마는 '정치보복'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다. 이 3대 트라우마로 인해 여당 의원들에게는 '탄핵=조기 대선=이재명 당선=적폐 청산 및 정치보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먼저 '선거의 의미'를 지나치게 유불리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탄핵이 불가피한 사안이다. 여당은 계엄 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탄핵은 막을 수 없는 사안이다. 헌재의 탄핵 인용 이후 치러지는 조기 대선은 주권자의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정당한 절차다. 국민의힘은 승리하든 패배하든 그 절차를 인정해야 한다. 이후 대선 국면이 열리면 여당은 반성과 혁신을 통해 승리할 생각을 해야 한다. 반성과 혁신을 통해 승리하는 게 아니라, '내란죄'를 방조하는 것은 퇴행적인 행태라고 국민에게 지적받을 수 있다. 

질서 있는 퇴진론은 왜 문제인가?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왜 성공할 수 없는가? 한 대표의 문제의식을 선의로 이해하면, 국민 눈높이와 당내 눈높이의 줄타기로 해석할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정치 자체의 속성이 그렇다. 

美 대사가 "헌법에 부합하는 조치인가" 물은 이유

'질서 있는 퇴진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적 질서'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작동은 세 가지 층위에서 볼 수 있다. ①정치 내부의 역학관계 ②국민과의 관계 ③외국과의 관계다. 12월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핵심 중 핵심은 '임기를 포함한 향후 정국은 당에 일임한다'였다. '위임 통치'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후 한 대표가 한덕수 국무총리와 공동으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위임의 주체가 당대표임을 분명히 했다. 

'위임 통치'는 ①정치 내부의 역학관계만 고려하면 작동될 수도 있다. 그러나 ②국민의 입장에서는 수용 불가하다.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고,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윤석열의 주머니' 속에 있어서 양도 가능한 게 아니라 국민 마음속의 내면적 동의를 통해 작동한다. 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선출됐다. 한 총리도, 한 대표도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사람이 아니다. 민주적 정당성을 갖출 수 없다. 

③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도 '질서 있는 퇴진론'은 작동이 불가능했다. 국가가 국가로서 작동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이 국가로 인정해 줬기 때문이다. 대만의 지위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만'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가 제한적이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국가'로서 인정받는 지점이 매우 제한적이다. 한·한 체제를 외국 입장에서는 인정해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역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12월10일 중앙일보 1면 기사는 한·한 체제를 외국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한 체제'를 설명했다. 이에 대한 골드버그 대사의 반응은 한·한 체제가 "한국 헌법에 부합한 조치인가?"라는 물음이었다. 당연히 헌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체제다. 

한국은 GDP(국내총생산)의 약 45%가 수출로 이뤄지는 수출 중심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다. 한미동맹은 1945년 이후 한국을 떠받쳐온 국제 질서의 핵심 축이었다. K팝을 포함한 각종 K문화 자체가 국제적 인정을 통해서만 작동한다. 

정치 질서는 정치권의 역학관계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국민의 내면적 동의, 국제사회의 공식적 인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질서 있는 퇴진'은 오직 탄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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