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 깔아준 이재명 대권가도…계엄 정국 보면 李 ‘섀도 캐비닛’ 보인다
李 호위무사들이 ‘과속’도 조장…역풍 우려에 “완급 조절 필요” 지적도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지난 10월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집권플랜본부'라는 이름의 조직을 출범시켰다.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등 이재명표 정책을 차근차근 개발하겠다는 게 목적이었지만 사실상 이 대표의 예비 대선 캠프로 인식됐다. 이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시점에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과속 행보'란 비판이 나왔다. 특히 11월 이 대표의 1심 선고 정국과 맞물리면서 더욱 고깝다는 시선들이 이어졌다.
김칫국 같았던 '조기 대선'은 불현듯 가까운 미래가 됐다. '12·3 사태'로 불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그 순간, 이 대표의 대권 시계를 성큼 앞당긴 동시에 그 여정에 포장도로까지 깔아준 셈이 됐다. 집권을 위한 대선 플랜은 이제 '섣부른' 것이 아닌 되레 '서둘러야' 할 작업이 됐다.
현재권력이 무너지자 자연히 안팎의 스포트라이트는 '지금' 가장 유력한 미래권력 이 대표에게로 향했다. 이 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연일 수권 능력을 부각하기 위한 행보에 주력하고 있다. '민생'을 챙기겠다며 비상경제점검회의를 단독 출범시켰고, 계엄 당일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 장병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또한 주요 외신과 연쇄 인터뷰를 하며 나라 밖으로 얼굴을 알리고 있다. 12월10일(현지시간) 보도된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선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개인적 감정 표출이나 사익 증진을 위한 도구가 아닌 국가 통합에 사용해야 한다"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12월9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는 "일부 사람들은 나를 '한국의 트럼프'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자신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다. 비단 최다 의석을 가진 제1당 수장으로서만이 아닌 '차기 지도자'임을 부각하려는 발언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李 호위무사' 박찬대·김민석…계엄 퍼즐 맞추며 급부상한 김병주·박선원
과거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여러 야당 의원들이 최전방 공격수로 나서며 '스타'로 부상했듯, 현재 계엄 정국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 대표의 차기 지도자 이미지를 위한 통합 및 수습 행보에 주력하는 대신 총대를 메고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들이 사실상 대권가도에 올라탄 이 대표의 '섀도 캐비닛'(예비내각)을 채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재명 지도부의 주축으로 활동해온 박찬대 원내대표와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은 계엄 정국을 거치며 더욱 '실세' 입지를 굳히는 양상이다. 박 원내대표는 12월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에 나서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해 눈길을 끈 바 있다. 10분 가까이 이어진 박 원내대표의 호명 도중 실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다시 본회의장에 입장해 표결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8월 처음으로 계엄 시나리오를 제기한 인물이다. 그는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이 국방부 장관에 내정됐을 당시 이른바 '충암파'를 중심으로 한 계엄 가능성을 제기하며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빌드업 불장난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김 최고위원은 그동안 이 대표의 '호위무사' 역할을 자처하며 당내에서 가장 많은 강성 발언들을 쏟아내왔다. 동시에 집권플랜본부 총괄을 비롯해 '김건희 심판본부', 이번 '12·3 윤석열 내란사태 특별대책위원회' 수장까지 줄줄이 맡으며 사실상 당내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가 대권을 잡을 경우 김 최고위원이 국무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취재에 따르면, 박 원내대표와 김 최고위원은 계엄 사태 이후 사실상 귀가를 하지 않고 국회에 머무르며 24시간 비상 대응체제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 의해 폭로된 이번 '계엄 체포 대상자 명단'에도 이 대표와 함께 포함돼 있었다.
계엄 연루자들을 색출·취조하는 과정에서 한층 존재감을 키운 의원들도 있다.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의원과 국정원 1차장 출신 박선원 의원은 연일 계엄 관련 군 핵심 관계자들의 폭로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들은 12월6일 곽종근 특전사령관을 직접 찾아가 '계엄 당일 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데 이어, 이날 계엄 당시 북파공작원 부대원(HID) 20명가량이 여야 대표 등을 겨냥한 체포조로 투입되기 위해 대기했다는 사실 등을 추가로 밝혀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면에서 김병주·박선원 두 의원의 정보력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며 "특히 김 의원의 경우 이전부터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 국방부 장관 1순위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번 상황을 거치며 더 굳건해졌다"고 평가했다.
같은 국방위 소속 추미애 의원 역시 윤 대통령 탄핵에 열을 올리며 계엄 정황을 밝히는 데 앞장서고 있다. 당내 내란에 대한 진상조사단 단장을 맡은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비위와 관련해 징계를 명령했던 것처럼 윤 대통령의 숨겨온 가면을 철저히 밝혀내겠다"며 단단히 벼르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에 이은 국가 의전 서열 2위 우원식 국회의장의 대내외 역할도 한층 중요해졌다. 국회를 대표하는 우 의장은 12월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과 탄핵안 표결 등 정국의 고비마다 선두에 나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2선 후퇴 선언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공동 국정운영 방침을 밝히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하는 등 정국 수습에도 앞장서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 역시 계엄 이후 우 의장을 한국 내 접촉 1순위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다. 우 의장은 국회의장 선출 이전부터 원조 친명(親이재명)계 맏형 격으로 분류돼 왔다. 의장직을 맡으며 정치적 체급이 크게 높아진 만큼, 이 대표가 집권할 경우 가장 중추적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경기지사를 맡으며 '변방'에 머무를 적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그림자처럼 밀착 보좌해온 참모진도 조기 대선 정국이 펼쳐지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 대표가 의원실을 꾸리면서 가장 먼저 포진시킨 '성남라인' 김남준·김현지 보좌관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 대표와 함께한 시간이 긴 만큼 이 대표와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참모로 꼽히며, 이 대표가 대권에 골인할 경우 비서실장 등 요직에 최우선적으로 임명될 가능성도 가장 높다. 그 외에 지난 대선 때부터 함께한 권혁기 당대표 정무기획실장도 이 대표 섀도 캐비닛에 이름이 오르내린다.
다만 당 일각에선 계엄 정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의 대권 시계가 지나치게 빨리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을 빠르게 끌어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당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등 정무적인 판단 미스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계엄 후 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을 7000억원가량 추가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당의 탄핵 비협조와 역풍 우려로 철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통령 탄핵이 야당만의 힘으로 불가능한 만큼, 설득과 협상의 자세를 우선적으로 보여야 했다는 것이다.
"국민이 尹을 버린 거지, 아직 李를 택한 건 아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던 우상호 전 의원은 12월9일 SBS라디오에 출연해 "너무 급하게 접근하는 것보다 양심적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결단할 시간을 벌어놓을 필요가 있었다"고 민주당 지도부에 조언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지도부를 비롯해 당내 강성 성향 의원들이 윤 대통령을 빨리 끝내고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해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는 듯하다"며 "아무리 초유의 사태라지만 정무적 감각이 아쉽다는 볼멘소리가 없지 않다"고 전했다.
여러 재판을 앞두고 있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한 만큼, 자칫 조기 대선을 기대하는 모습을 과도하게 내비칠 경우 현재 정부·여당에 분노한 민심이 희석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당에서도 충분히 이러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며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조기 대선'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고, 의원들에게도 '앞서 가지 말라'는 주의를 단단히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모두가 이 대표에게 '레드카펫'이 깔렸다고 말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 국가적 비극 상황 아닌가"라며 "당이 더욱 차분하게 탄핵 후 정국의 공백을 메우며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국민이 윤석열을 버린 거지, 아직 이재명을 선택한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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