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 보고 놀란 가슴 설현 보고 흐느끼게 되는 '조명가게'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여자는 기묘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이 여자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하필 옷은 소복이고, 머리카락도 공포 영화에서 자주 보는 그 길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치면 누구라도 놀라 달아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한 남자가 그런 여자를 보고 흠칫 놀란다. 그러다 용기 내 "여기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말을 건다. 남자의 알은체에 여자는 "기다려요"라고 말한다.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이 설핏 아련하다. 그 눈빛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남자는 여자에게 핸드폰을 빌려주겠다며 호의를 베푼다. 그때 여자가 말한다. "나 모르겠어요?". 다음날에도 남자는 같은 장소에서 여자와 마주친다. 하필 비가 내린다. 마음 약한 남자는 여자에게 우산을 씌워 준다. 여자는 "나 알아요?"라고 재차 묻는다. 그러면서 "내일도 볼까요?"라고 말을 보탠다. 남자의 호의는 더욱 커져 비 맞지 않게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남자를 뒤따르는 여자의 모습에서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는 디즈니+ 시리즈 '조명가게'(작가 강풀, 감독 김희원)의 처음을 장식하는 장면이다. 김희원 감독은 '조명가게'의 편마다 장르를 달리하려고 했다. 이 장면이 나오는 1회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장르 값을 부여했다. 그의 의도대로 1회는 묘하게 오싹하면서 긴장감 있다. 감독의 의도를 잘 표현한 이 장면 속 음산한 여자는 지영(김설현)이고, 어딘가 어수룩한 남자의 이름은 현민(엄태구)이다. 그중에서도 분위기를 미스터리하게 끌고 가는 주역은 바로 여자, 지영이다.

현민은 지영을 모른다고 했으나, 둘은 아는 사이다. 이 사실을 지영은 알고 현민은 알지 못한다. 둘은 연인이었고, 그 사이는 꽤 애틋했다. 그것을 여자만 알고 있는 까닭은, 공포스러웠던 그의 첫인상과 달리 가슴 아픈 사연으로 점철됐다. 여자는 죽었다. 남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조명가게'에서 죽은 자는 기억이 있고, 그 경계에 있는 자는 애매한 처지만큼 기억을 어설프게 갖고 있다. 혼자만 아는 사연은 지영의 얼굴에 더 복잡한 감정을 실어넣는다. 불가사의한 세계에 놓여 있는 '조명가게' 이야기 안에서 지영의 존재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조명가게'는 미스터리와 공포, 또 반전과 감동을 넘나드는 복합 장르물이다. 그리고, 지영을 연기한 설현은 이 모든 변주를 따라가며 자신의 몫을 정확하게 해낸다.
설현에게 어떤 생각(기대)을 가졌건 '조명가게'에서는 그 이상이 보인다. 이 작품에서 그는 다시 보이고 달리 보인다. 분위기 속에 사연을 실어넣은 그의 연기는 많은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애환을 풍긴다.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2022), '살인자의 쇼핑목록'(2022), '낮과 밤'(2020~2021), '나의 나라'(2019), '오렌지 마말레이드'(2015), '못난이 주의보'(2013), '내 딸 서영이'(2012~2013), 영화 '안시성'(2018), '살인자의 기억법'(2017), '강남 1970'(2015) 등. 데뷔한 지 12년이 넘었고, 연기한 지도 딱 그만큼 됐다.

하지만 연기자 설현에게 갖는 기대는 오랜 기간 연기력이 아니었다. 걸그룹 출신인 설현은 얼굴과 몸매로 조명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과거 그의 광고 판넬은 도난 사고가 잇따랐을 만큼 인기가 엄청났다. 설현의 연기 활동에 거는 기대는 시대의 아이콘에게 갖는 '스타성'이었고, 그 인기는 서서히 가라앉으며 어느 순간부터 경계가 애매해졌다.
설현은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않고, 내년이면 어느덧 서른이다. 배우로 노선을 확실히 한 듯 보였지만, 연기자로서 평가는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온갖 사연으로 점철된 '조명가게' 지영은 확실한 변환이다.
그가 연기한 지영은 살아생전에 농인이었고, 그 때문에 사랑도 쉽지 않았다. 현민의 부모는 반대가 극심했고, 현민이 사고가 나자 그 어미는 "너 때문에 죽었어"라는 거짓된 모진 문자를 보낸다. 그것을 본 지영은 목을 매지만, 숨이 붙어있을 때 현민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에 보여주는 설현의 표정은 소름 돋을 만큼 지영의 상황에 체화됐다. 공중에 떠 있는 그가 손톱이 다 빠지도록 살아보려 몸부림치는 모습은 그 행위의 충격만큼이나 현실감이 설현을 달리 보이게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갇힌 현민을 살리려 애쓰는 모습에서도 그렇다.
설현은 이제 "연기라는 건 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한 예술이라 생각한다"(<씨네21>)라고 말할 줄 아는, 연기자로서 관념을 사유하기에 이르렀다. 그 사유가 닿은 '조명가게'는 확실히 연기자 설현의 분투가 보인다. 앞으로 설현을 향한 시선은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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