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고 나쁜 사건이란 없다, 그저 해결해야 할 사건뿐 [.txt]

한겨레 2024. 12. 1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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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초상ㅣ119 안전센터 구급대원 최현진씨
최유안 작가가 생성형 인공지능(AI) ‘달리3’에게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 두 사람이 10살 정도인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이다.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보람과 긍지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들었습니다.

최유안 | 월급사실주의 동인.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보통 맛’, 장편소설 ‘백 오피스’, ‘새벽의 그림자’ 등을 썼으며, 노근리평화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위급할 때 옆에 있는 친구 정도라면 좋겠는데…… 광고 카피 같아서 낯 뜨겁네요.”

구급대원이 어떻게 기억되면 좋겠냐고 묻는 질문에 최현진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씨는 119안전센터의 구급대원이다.

‘소방’의 사전적 의미는 ‘화재를 진압하고 예방함’이다. 그런데 소방공무원의 업무가 화재 진압만은 아니다. 각종 구조, 응급의료 관련 업무도 소방공무원의 영역이라, 화재진압대원·구조대원·구급대원 모두 소방공무원이다. 최씨가 소속된 안전센터는 팀을 셋으로 구분해 팀제로 근무한다. 한 팀은 7, 8명 정도의 대원으로 꾸려진다. 그의 팀에는 화재진압대원이 다섯 명, 구급대원이 세 명 있다. 구급대원의 일손이 부족한 경우에는 화재진압대원도 응급 구조에 손을 보탠다.

최씨는 꼬박 10년을 소방공무원으로 일했다. 그의 근무복에는 조그만 별처럼 생긴 육각수가 4개 달려 있다. 평생 간호사로 일한 어머니를 보고 자랐고, 부모님 권유로 응급구조학을 공부했다. 공부하다 보니 적성에도 제법 잘 맞아, 대학을 졸업한 후에 곧바로 일터로 나왔다. 30대 중반인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한다. 이 일이 천상 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에게 오래 일한 비결을 물었다.

“한 곳에 붙어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신 덕분인 것 같아요.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도 없을 정도니까요.”

그의 일과는 오전 8시40분에 시작한다. 출근하면 지난밤 있었던 사안들을 인계받고, 휴무 동안 살피지 못한 각종 공문과 필요한 공지 사항을 챙겨 본 후에 장비를 점검하러 간다. 오전에 한두 시간의 소방 훈련을 받는다. 점심 식사는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팀원들과 함께 먹는다. 오후에 한 차례 더 훈련한 후 오후 5시40분에 맞춰 다시 장비를 점검한다. 그는 그것을 밤 근무 전에 하는 준비 운동 같은 것이라고 했다.

구급대원 최현진씨의 주 업무는 출동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명령이 떨어지면 하던 일을 제쳐두고 출동한다. 남는 시간이 있을 때 현진씨는 2층 힐링 쉼터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고, 마사지기로 전신 마사지를 할 수도 있다. 컴퓨터를 쓰거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방대에 있는 시설들을 한 번도 마음 놓고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동료 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안전센터 곳곳에 놓인 스피커들은 광역시 소방본부의 종합상황실과 연결되어 대원들에게 수시로 말을 건다. 낮이건 밤이건, 새벽이건 가리지 않는다. 어떤 일도 마다할 수 없다.

10년 전 새내기 구급대원이었던 최씨의 일터는 한 바닷가 소도시의 안전센터였다.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떠올리자니 그때로 거슬러 간다.

“신입 때 첫 근무지에서 출근하는 3일 동안 바닷가에 떠오른 익사자를 연속으로 봤어요. 그중에 덤프트럭 한 대가 싣고 온 모래를 내리려다 잘못 기울어 차가 바다로 빠져버린 사건이 있었어요. 앞유리창을 깨고 구조 활동을 했는데요. 사건이 벌어진 지 이미 한두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고, 운전기사는 심정지 상태였어요. 차 안에서 운전자를 꺼내고 대원들이 수습 작업을 하는데, 가족사진 한 장이 수면 위로 떠올랐어요. 바다 위에 덩그렇게 뜬 그 가족사진이 제 눈 속으로 잠식되듯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아주 젊은 사람이었거든요. 그 후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휴가 때도 바닷가에 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웃더니, 이런 정도의 트라우마는 이제 별것 아니라는 듯 큰 눈을 끔뻑였다. 이제는 시신을 워낙 많이 봐서 무뎌졌다는 말이 뒤이어 따라 나왔다.

지금 그가 소속된 센터는 출동이 아주 잦지는 않다. 지역 내에 출동량이 많기로 정평 난 곳에서 근무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탓이다. 그는 광역시 내 유명한 기피 지역에서 1년을 지냈다. 무엇보다 고독사와 자살자가 많은 지역이었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이런저런 사고도 있었지만, 어린아이 사고가 단연 마음 아팠다.

“심정지 상태인 사람을 보는 게 일반인들로서는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많아요. 저도 그걸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알았어요.”

위급한 심정지 환자의 생명을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이나 심장 제세동기로 살렸을 때 받는 상징 하트세이버. 최현진씨는 3개의 하트세이버를 받았다. 최현진씨 제공

그에게 자신의 직업을 드러낼 수 있는 사물을 하나 꼽아달라고 했더니, 심장 박동이 표시된 하트와 파란 별이 새겨진 ‘하트세이버’ 배지를 내밀었다.

“위급한 심정지 환자의 생명을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이나 심장 제세동기로 살렸을 때 받는 상징이에요. 저에게는 훈장 같은 거죠.”

최씨는 지금까지 하트세이버를 3개 받았다. 3명의 생명이 그의 손끝에서 살았다. 그것은 그에게 이 일에 대한 직업적 긍지이며 사명감이 되었다. 몇 마디 나누지 못했을 때 출동 무전이 울렸다. 음량이 크지 않았고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들었는데, 사무실에 있던 모두가 뜻을 이해하고 구급대원들만 즉각 움직였다. 사무실의 공기도 일순간 급박해졌다. 그도 즉각 채비하고 나섰다. 그가 자리를 비운 새, 그가 속한 팀장이 말을 보탰다.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소방대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 모르겠네요. 처음에는 대부분 안정적인 일자리만 보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다 보면 사명감도 생기고 긍지도 느끼죠.”

팀장은 28년째 소방대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올겨울 정년을 앞두었다. 소방서에서 근무하며 가장 보람 있었을 때를 묻자 그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센터로 다시 돌아와 몸에 묻은 분진을 닦아내며 샤워할 때, 세상에 기여를 한 것 같아 큰 보람을 느낍니다.”

팀장의 이야기를 듣던 대원들이 저마다 말했다. “고생한다고 말씀해주실 때도 힘이 나고, 어린 친구들이 ‘소방차다’ 하고 알아봐 줄 때도 힘이 납니다.”

구급대원들은 쓰러진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을 응급 이송하고 40분 후에 돌아왔다. 보고를 마친 후에야 사무실에 온기가 돌았다. 책상 위에는 근처 상인회에서 고생한다며 소방대에 전해준 호두과자와 음료가 올려져 있었다.

가장 빈번한 출동 원인으로 대원들은 교통사고를 골랐다. 구체적인 통계치는 없지만, 1년 내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사건의 대다수를 길 위에서 난 사고로 기억했다. 음주로 생기는 사건도 잦은데, 센터 부근에 식당과 술집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겨울로 가는 지금 계절에는 좀 줄고, 여름에는 출동이 훨씬 잦았다. 기후 변화로 온열 환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해결하기 좋은 사건, 나쁜 사건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저 해결해야 할 사건만 있다는 현진 씨는, 하루에도 파도처럼 몰려드는 작고 큰 사건들 틈에서 그저 일하는 직장인이다.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그는 주저 없이 아이들을 떠올린다. 그는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고 싶다. 현진 씨는 2살 된 아들이 하나 있고, 두 달 뒤에는 아들, 딸 쌍둥이의 아버지가 된다.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느낌을 물었더니, 그는 아직 별 감정이 없다고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에게 잘하고, 또 다음 아이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들에게도 잘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는 답이 이어졌다. 좋은 일, 나쁜 일 없이 우선 눈앞의 일에 책임을 지는 구급대원의 모습다웠다. 곧 태어날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는 재밌는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산부인과에서 성별을 알려주던 날에요. 선둥이의 성별이 남자라고 해서 정말 긴장했어요. 다음 아이가 남자아이면, 남아만 셋이네, 싶은 거예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후둥이가 여자아이라고 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현진 씨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 어째서 사고를 당한 사람의 가족사진을 이야기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결혼식을 11월9일에 했다. 아내의 아이디어였다. 소방의 날이 결혼기념일인 건 그뿐만이 아니다. 팀에는 올해 11월9일에 결혼식을 올린 대원이 또 있다.

최현진씨의 근무 일정은 매번 똑같다. 하루를 일하면 이틀을 쉰다. 그가 속한 팀이 쉬는 동안 다른 두 팀이 출근하는 구조다. 팀제로 꾸려진 이 일정표가 변할 일이 없는 이유다. 다만 대원들에게 일하는 하루란 오전 9시부터 그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꼬박 24시간을 이른다.

“지금은 하루 일하고 이틀 쉬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근무 시스템이 달랐어요. 그때는 저녁 6시에 시작해서 아침 9시에 퇴근하고, 다음 날 오후 6시에 출근했어요.”

일하는 사람들이 이 일정표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먼 곳으로 가는 긴 여행은 꿈같지만, 다행히 연차 제도가 잘 되어 있다. 휴가도 쓰고 싶을 때 가능한 쓸 수 있다. 가장 길게 가본 여행은 신혼여행이었다. 9박10일 일정으로 미국에 다녀왔다. 팀원들이 서로 도운 덕분이라고 했다. 근무연수에 따라 휴가일은 조금씩 다르고, 가장 많게는 1년에 22일의 휴가가 주어진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시스템이 아주 좋아진 거라고, 현진 씨는 웃으며 말했다.

“놀랍지만 대원들의 불편 사항을 접수하는 스마트폰 앱도 활발히 운영되어요.”

일하며 생긴 고충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진 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해진 공무원 월급에 만족했고 자신이 배운 일로 남들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다고 했다.

“일이라는 게, 모두에게 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는 이 일에 엄청난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주황색 근무복을 입는 순간에 마음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응급구조를 전공했고 비장한 얼굴로 매 순간 출동을 나가는 일로 10년을 보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버티기 힘들 정도로 거대하게 여기지 않았다. 직업을 대하는 다짐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주어진 일상을 그저 담담히 보낸다.

최현진씨의 제복. 최현진씨 제공

사무실 앞에 대형 소방차와 중형 소방차, 구급차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센터 밖으로 나오는 길에 초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사무실과 소방차 사이에 비치된 행거를 빽빽하게 채운 화재진압복이 든든해 보였다. 차들 뒤편으로 스피커에 바짝 귀를 세운 대원들 모습이, 이름 모를 당신을 위해 언제든 대기 중이라는 신호로 읽혔다. 거친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깊은 사람의 온기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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