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의 얼굴을 마주하려면 [.txt]

한겨레 2024. 12. 1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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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0)를 계기로 어린이 담론이 활발하게 구성되면서 이제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소설이나 청소년시에 나타난 청소년을 통해 현실 세계의 어른들이 덧씌운 가면 뒤의 얼굴이 문학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장면을 마주하길 바란다.

"시위하는 청소년은 멋있지 않고, 기특하지 않고, 당신의 동료일 뿐입니다." 이제 어린이에 이어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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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청소년이라는 세계
사과의 사생활 조우리 지음, 위즈덤하우스(2023)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0)를 계기로 어린이 담론이 활발하게 구성되면서 이제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오랫동안 아동청소년문학 장에서 이야기하고 염원해 온 바가 확장되어 기쁘다. 동시에 어린이 다음 시기인 청소년에 대한 담론까지 이어지길 바라게 된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저돌적인 탐색이 ‘중2병’이라는 혐오 표현으로 낙인되고, 입시 공부로 옴쭉달싹 못하며 학대당하는 청소년에게도 동료 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지위가 요청된다.

이 칼럼에서는 청소년 담론의 실마리를 청소년 문학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아동문학이 어린이 담론을 뒷받침했듯 말이다. ‘어린이라는 세계’에 이어 ‘청소년이라는 세계’를 말하고 싶다.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소설이나 청소년시에 나타난 청소년을 통해 현실 세계의 어른들이 덧씌운 가면 뒤의 얼굴이 문학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장면을 마주하길 바란다.

청소년소설집 ‘사과의 사생활’에 실린 5편의 단편에는 지금껏 청소년문학이 자주 호명하지 않았던 청소년의 얼굴이 등장한다. ‘껍데기는 하나도 없다’의 ‘K’는 외모, 공부, 경제력 어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이 남학생들의 약육강식 교실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껍데기가 상위 집단과 친해지는 일이라 여긴다. 그 노력 끝에 얻은 별명이 ‘센스 있는 K’. 대개 청소년소설이 여학생의 계급과 역학 관계에 주목한 데 비해 남학생 세계의 폭력성을 말하며 유독 여학생에게 덧씌워진 가면을 보게 한다.

표제작 ‘사과의 사생활’의 여성 청소년 주인공 ‘사과’의 맨얼굴도 또렷하다. (과일 가게를 하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김사과’이다.) 사과는, 이 사회가 유독 여성 청소년의 성적 욕망을 허용하지 않는 태도에 반기를 든다. “우리는 왜 성교육 시간조차 성욕도 없는 것처럼 취급당하는지”(141쪽) 의문스러워하며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여자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결단코 자신의 몸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137쪽)고 생각한다. 여성 청소년에게는 성인 아닌 청소년, 남성 아닌 여성에 대한 이중 억압이 작동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럴 때 사과가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일을 결국 자신을 소중히 사랑하는 일로 완성하는 과정은 억압을 벗고 나아가는 성장의 중요 지점이다.

12월7일 윤석열 퇴진 시위에 나온 청소년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 ‘시위하는 청소년은 멋있지 않고, 기특하지 않고, 당신의 동료일 뿐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엑스 화면 갈무리

할머니의 연애를 바라보며 존재와 관계성에 대해 깨닫는 효리(‘할머니의 유튜브 재생 목록’), 홀로 어른이 되었기에 누구보다 단단해져 이제 누구도 자신을 훼손시킬 수 없다고 자신하는 솔이(‘나와 함께 트와일라잇을’), 남을 따라 하지 않고 자신의 장래를 찾은 우현과, 현장 실습 중 사고로 사망한 우현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는 세라(‘에버 어게인’). 이들 또한 사회가 부여한 가면을 거부하고, 남과 비교하거나 남을 닮아가려 하지 않은 채로 성장한다.

지난 12월7일 대통령 퇴진 요구 집회의 여러 깃발과 피켓 중에 눈에 띄던 문구가 있었다. “시위하는 청소년은 멋있지 않고, 기특하지 않고, 당신의 동료일 뿐입니다.” 이제 어린이에 이어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바라볼 때다. 그들에게 덧씌운 가면 뒤의 얼굴을 마주하려면.

김유진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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