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얼마나 많은 ‘타산지석’을 더 쌓아 올려야 하는가

김재태 편집위원 2024. 12. 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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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비상계엄 선포를 알리는 속보를 맨 처음 접한 순간 '꿈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지율이 시시각각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계속한 것과, 아무런 협치의 제스처도 보이지 않은 채 4대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연달아 공언하는 것도 적잖이 수상쩍었다.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충격과 상처를 입은 채로 더 독한 혹한 속에 떠밀려 들어간 국민의 삶은 또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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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비상계엄 선포를 알리는 속보를 맨 처음 접한 순간 '꿈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후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차라리 꿈이나 가짜뉴스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 꿈같은 일은 군필자들 사이에서 가장 두려운 꿈으로 회자되는 '두 번 군대 가는 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한겨울 밤의 악몽'으로 펼쳐졌다. 비상계엄 선포에 이어 포고령이 공포되었을 때 가장 크게 눈에 띈 것은 세 번째 조항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였다. 신군부 시절에 발령된 비상계엄으로 인해 당시 대학 교내 신문의 학생기자로서 서울시청의 계엄사 사무실로 가인쇄본을 들고 가 검열을 받던 참담한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서다. 불안감 속에 12월3일의 밤을 지새우는 내내 그처럼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 마음대로 규정한 반국가 세력을 겨냥하며 내놓은 계엄 선포 담화에서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를 언급했는데, 그 자신이 국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헌정질서를 짓밟고 반국가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야당의 폭거를 빌미 삼아 일으킨 이 계엄은 스스로 정치적으로는 리더십을 발휘할 능력이 없으나, 완력을 쓸 능력은 가지고 있음을 자백하고 공표한 '자폭'이나 다름없다.

온 나라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이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공개적으로 알려졌거나 드러나지 않게 의문을 자아낸 징후는 이미 있었다. 민주당 등 일각에서 이른바 '충암파' 군부 라인을 주축으로 계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경고가 일찌감치 나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에 더해 윤 대통령의 행적에서도 이상한 낌새는 엿보였다. 지지율이 시시각각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계속한 것과, 아무런 협치의 제스처도 보이지 않은 채 4대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연달아 공언하는 것도 적잖이 수상쩍었다. 개혁을 성공하려면 국회의 동의도 필요할 텐데 무슨 근거로 그처럼 무모한 자신감을 내비치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미 그때부터 그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할 엄청난 한 방을 마음에 품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담화에서 밝힌 계엄 명분과 직접 연관성이 없는 선거관리위원회 시설 점거 및 '전공의 처단' 포고령 발표와 더불어, 체포자 명단 속 인물들이 그의 개인적 분풀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점도 그가 주장한 '경고성 계엄'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

궁지에 몰린 '한 줌 권력'이 함부로 일으킨 계엄 사태는 여당이 말하는 '탄핵 트라우마'와는 차원이 다르게 끔찍한 '계엄 트라우마' '탄핵 부결 트라우마'를 국민 모두에게 안겼다. 대외적으로도 '한국은 민주주의가 불안정한 나라'라는 낙인을 찍히게 했다. 이처럼 엄청난 일을 벌이고도 대통령은 사퇴는 마다한 채 12월12일 담화를 통해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자가당착적 변명만 늘어놓으며 또다시 국민과 맞서겠다는 비열한 길을 선택했다. 우리 현대사는 그동안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정권과 그 지도자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를 또렷이 일깨워준다. 그런데도 그런 지도자가 다시 나와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리를 지킴으로써 또 하나의 나쁜 선례를 남긴다면 미래 세대에게, 또 외부 세계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충격과 상처를 입은 채로 더 독한 혹한 속에 떠밀려 들어간 국민의 삶은 또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타산지석'을 더 쌓아 올려야 하는가. 

김재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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