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타는 경찰, 우리나라엔 왜 없을까요? [김지나의 그런데 말(馬)입니다]

김지나 아마추어 승마선수 2024. 12.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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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압도감’ 큰 기마경찰, ‘통제’는 관건
국내 기마순찰대, 경주퇴역마 활용 대안으로 도입…적합성 의문

(시사저널=김지나 아마추어 승마선수)

군중 시위 통제에 동원된 미국 LA 기마경찰대 ⓒLos Angeles Times via Getty Images

'기마경찰'이란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제법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특수한 경찰대다.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아니라, 말을 타고 다니는 경찰을 뜻한다.

현대에 와서 기마경찰의 주된 역할은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거나 고전적인 격식을 차리는 행사에 동원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끔은 군중을 통제하는 엄중한 경찰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호주, 캐나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공원이나 야생보호구역처럼 경찰차가 다니기에 적절하지 않은 장소들에서 기마경찰이 순찰을 도맡곤 한다. 자동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각종 구조현장에서도 없어선 안 될 존재다.

기마경찰 훈련 모습. 말은 기마경찰로 활약하기 위해서 다양한 종류의 둔감화 훈련을 거친다. ⓒBBC Earth 유튜브

비록 제한된 분야에서만 활약하고 있지만, 기마경찰은 많은 장점이 있다. 일단 사람이 말에 타고 있음으로서 뿜어내는 시각적인 압도감이 엄청나다. 일반적으로 많이 접하는 크기의, 성장이 끝난 말은 지면에서부터 말 어깨까지 높이가 160cm 정도다. 그 등에 안장을 얹고 사람이 올라가면 2미터가 훌쩍 넘는 높이에서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기마경찰은 시야가 굉장히 넓다. 경찰차나 오토바이보다 효율적인 순찰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말에 타고 있으면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잠재적 범죄자들을 단념시키는 효과도 크다. 군중을 통제해야 하는 현장에 나설 때면 그저 덩치가 큰 동물이 가까이 다가선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영국 축구경기장에서는 기마경찰이 경비를 맡고 있는 광경을 볼 기회도 종종 있다.

기마경찰 훈련 모습. 말은 기마경찰로 활약하기 위해서 다양한 종류의 둔감화 훈련을 거친다. ⓒTogetherTV 유튜브

둔감화, 인간과 공존 위한 필수적인 훈련

하지만 기마경찰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바로 말이 사람들을 밟거나 다치게 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마경찰이 집회 현장에 나섰다가 크고 작은 사고가 났다는 해외 뉴스들이 나온다. 경중에 따라 말에 타고 있었던 경찰관이 법적 책임을 지기도 한다.

겁이 많고 예민한 습성을 가진 말이 온갖 소음, 낯선 물체들, 때로는 재난현장의 불길까지도 견뎌내며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외부 환경에 놓이게 되면 어떤 사고가 생길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기마경찰대에서 활약하는 말들은 특별한 트레이닝을 받는다. '둔감화' 훈련이라는 것으로, 갖은 종류의 소리나 자극에 노출시키며 익숙해지도록 하는 과정이다.

기마경찰이 아니더라도 말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방식의 둔감화 훈련을 거치며 성장한다. 물론 실전에 빨리 투입하려는 목적만으로 가혹한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그러나 둔감화 자체는 말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미션이다.

기마경찰 훈련 모습. 말은 기마경찰로 활약하기 위해서 다양한 종류의 둔감화 훈련을 거친다. ⓒTogetherTV 유튜브

훈련 노하우‧시민 정서 아직…'시기상조' 국내 기마순찰대

국내에서도 종종 기마순찰대가 활약한다는 뉴스를 접한다. 하지만 기마경찰의 특장점을 살린다는 취지가 아니라 경주퇴역마를 활용하기 위한 대안으로 도입됐다는 인상이다. 실제 운영현황을 보면 실질적인 '순찰'의 임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방문객들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속리산국립공원에서 경주퇴역마로 구성된 기마순찰대가 무려 25년 동안 유지되고 있지만, 실상은 중고등학생들 대상의 진로체험이나 관광용 프로그램에 동원되는 수준이다. 서울숲에서는 작년에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에만 일시적으로 기마순찰대를 운영한 적도 있다. 모두 기마경찰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속리산국립공원 기마순찰대는 1999년 한국마사회에서 기증한 9마리의 경주퇴역마로 시작됐다. 경주퇴역마를 재훈련시켜 기용한 좋은 사례 같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은 듯 했다. 퇴역 후 순찰대로 온 말들을 다시 훈련시키는 데 짧게는 6개월에서 1년 넘게 걸리기도 했으며, 적응이 잘된 단 몇 마리만 순찰에 나서고 있다는 사정들이었다. 오로지 빠르게 달리기 위한 목적으로만 개량돼 오면서 성격이며 건강에 많은 문제를 안게 된 '서러브레드' 종의 경주퇴역마가 기마경찰에 적합한지도 의문이 남았다.

해외 기마경찰대는 18세기부터 그 역사가 시작됐으며, 말들의 기질 또한 오랜 세월에 거쳐 경찰 임무에 적합하게 형성돼 왔다. 훈련 노하우도 우리보다 훨씬 앞선다. 기마경찰을 대하는 시민들의 정서나 의식은 말할 것도 없다. 단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이벤트 출연진으로만 '기마순찰대'가 존재한다면 아주 소수의, 이런 프로그램에 적합한 성격의 퇴역마들만 제2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기마순찰대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우리나라에 도입하기엔 많은 부분에서 시기상조이자, 맞지 않는 옷이다. 새로운 직업 훈련을 빌미로 경주퇴역마들에게 들이대는 또 다른 잣대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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