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으로 학점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에 이런 법이]

홍민정 2024. 12. 1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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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우리가 자주 하고 듣는 말. 네, 그런 법은 많습니다. 변호사들이 민형사 사건 등 법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 자화상을 담아냅니다.
대학에서는 성적 이의신청 절차 외에 별도의 구제 절차를 두고 있지 않다.ⓒ시사IN 신선영

얼마 전 대학에서 받은 학점을 이유로 갈등을 겪은 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학생은 시험시간에 부정행위를 했다는 교수의 오해로 F 학점 위기에 처했다. 학생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일관되게 설명했다. 이 학생은 구제받을 수 있을까?

많은 대학에서 성적 이의신청 절차를 두고 있다. 하지만 해당 규정에서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는 사유는 명백한 오기 또는 오류의 발생 정도로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그마저도 정정 기간이 지났다면 불가능하다. 그 기간이 지났다면 명백한 오류가 있더라도 학장 또는 부총장의 결재를 받아야 정정이 가능하고, 어떤 대학에서는 경우에 따라 오류를 정정하는 교수에게 페널티를 부여하기도 한다. 대학에서는 성적 이의신청 절차 외에 별도로 최소한의 중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구에 심의를 요청하는 식의 구제 절차를 두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구제 수단은 학교를 상대로 성적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학생이 구제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헌법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헌법 제31조 제4항). 대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교수의 자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판결하기도 했다. “교수의 자유는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수 및 연구자가 자신의 학문적 연구와 성과에 따라 가르치고 강의를 할 수 있는 자유로서 교수의 내용과 방법 등에 있어 어떠한 지시나 간섭·통제를 받지 아니할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교수의 자유는 헌법 제22조 제1항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의 한 내용으로서 보호되고, 헌법 제31조 제4항도 학문적 연구와 교수의 자유의 기초가 되는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4도3923 판결 등 참조).”

학점 부여와 관련해 유사한 다툼이 있었다. 성적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한 학생인 원고 측은 대학이 내부적으로 이의 제기에 대한 절차를 마련하지 않아서 적법 절차 원칙을 위반했으며, 해당 교수가 객관적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성적을 평가하였으므로 위법하다는 이유로 성적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대학 내에 성적 오류 다루는 심의 기구가 있다면

법원은 우선 적법 절차 위반에 관해, 성적의 평가 방법과 그 절차 등 학사에 관한 내용은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므로, 학생의 성적 관련 이의신청에 대한 담당 교수의 판단이나 답변에 대해 다시 불복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학에서 학생에 대한 학점 부여는 학사의 기본으로서 대학의 자율성이 고도로 보장될 필요성이 있는 영역이므로, 학점 부여가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이상 쉽사리 학생에 대한 학점 부여가 위법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교수의 성적 평가에 위법함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와 같이 법원은 헌법상 보장되는 대학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교수의 학점 부여에 관해 고도의 재량을 인정한다. 학점 부여와 관련한 갈등이 실제 소송으로 진행되었을 때 성적에 이의제기하는 학생이 승소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성적 부여는 고도의 전문성과 재량이 요구되는 행위이자 엄정한 판단의 결과인데, 이를 비교적 용이하게 정정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회적으로 상당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법원의 판단과 성적 정정 사유를 제한적으로 정한 대학 내 규정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억울한 상황을 맞닥뜨린 20대 초반의 학생 처지에서 보면 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 험난한 것도 사실이다. 성적 부여에 명백한 오류나 현저히 부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이 문제를 심의할 수 있는 기구와 절차를 마련하면 어떨까?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학점에 울고 웃는 학생들에게 공정과 신뢰를 심어주는 계기가 만들어질 여지가 어딘가에는 있으리라 기대해볼 수 있다.

홍민정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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