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시국’ 환율 고공행진…기업 수입비용·외화빚 늘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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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외화부채 : 약 33억달러, 환율 10원 변동 시 약 330억원의 외화평가손익 발생.”
대한항공의 올해 3분기 보고서를 보면 급격한 환율변동이 기업에 미칠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3분기 평균 원-달러 환율이 1358.3원이었는데 이보다 10원이 오를 경우 약 330억원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항공업계는 항공기 도입 등을 위한 외화 차입금과 외화 금융리스 등이 많아 환율에 민감한 업종이다.
12·3 내란사태 여파로 환율이 연일 고공 행진을 하자, 환율 급등이 실적을 직접 타격하는 기업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당장 기업들의 원자재 수입과 달러 빚 상환 부담이 커지고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 등 부정적인 파급 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환율은 수출 기업에 호재’라는 말도 수출 제품의 특성과 공급망 변화 등으로 빛이 바랜 까닭에 경제 전반의 부담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한겨레 취재 결과,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 추이에 부쩍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나타난 ‘강달러-원화 약세’ 흐름에 국내 정국 불안이 기름을 끼얹은 탓이다. 2022년 상반기 1233.9원이었던 평균 원-달러 환율은 올 상반기 1350.2원으로 점진적으로 오른 추세였지만, 내란사태 뒤 1424.6원(4일 이후 평균)으로 급격히 오른 상황이다.
비상이 걸린 건 주로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기업들이다. 달러값이 비싸지면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수입 비용이 불어나지만, 이를 판매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밀가루나 카카오 등 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대통령이 계엄 사태를 일으켜 환율 상승 이슈까지 겹치게 됐다”고 말했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도 “해외 수입 가격이 올라도 고객사 판매가격에 인상분을 고스란히 반영할 순 없다. 기업이 환율 상승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씨제이(CJ)제일제당의 올해 3분기 보고서를 보면 환율이 10% 오르면 세후 이익이 141억원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던 기업들도 내란사태 후폭풍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화학·유통 등 주력 사업이 부진을 겪고 있는 롯데그룹은 환율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롯데 쪽은 “환율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식품·화학·관광 등 사업 분야에서 환율 변화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고환율이) 장기화했을 때의 대응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달 19일 롯데케미칼이 회사채 2조450억원어치의 조기 상환을 막기 위한 사채권자 집회를 예정한 상황에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기로 한 정부가 내란사태에 휘말린 것은 투자자들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고환율이 수출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기존 공식도 달라졌다. 주요 수출 품목이 단순 가격보다 품질·디자인 등을 중시하는 제품 위주로 바뀐 데다, 국외 생산 증가 등 교역 구조의 다변화·복잡화 등으로 원화 약세의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반도체의 경우 환율 상승에 따라 해외 판매가격을 무조건 낮추기보다 국제시장에서 정해진 시세에 따라 적정 가격을 매기는 구조”라며 “환율 상승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만큼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삼성·에스케이(SK)·엘지(LG)그룹의 반도체·배터리 업체 등은 미국 현지 투자를 대거 늘려, 환율 상승때 현지 비용 부담이 커지는 측면도 있다.
문정희 케이비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한국무역협회가 연 통상전망 세미나에서 “현재 원화는 저평가 상태가 심화하고 있지만, 내년에도 저평가 해소는 점진적일 것”이라며 “수출기업은 선물환 거래와 통화 다변화, 결제 시점 조정 등을 통해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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